채채캘리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
하루 종일 내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잠시 빼고,
한 쪽에 돌담을 끼고 길을 걸으면
고즈넉한 풍경과 자박자박 거리는 내 발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사랑하는
연인들이 걸으면 헤어진다니.
왜일까?
덕수궁은 1907년 고종의 퇴위 전까지는
경운궁으로 불렸다. 아관파천 사건 이후 고종이
경운궁을 거처로 선택하면서 크게 확장되었고
돌담길도 더 길고 넓어졌다.
그 후 일제 강점기 시절 덕수궁을 세로로
가로 지르는 영성문 고갯길이 생겼는데,
길의 양옆에 돌담이 세워져 있어 운치있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었고
때문에 이 길은 '사랑의 언덕길'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돌담길이
왜 헤어짐을 뜻하게 되었을까?
바로 지금의 서울 시립 미술관 자리에 있던
대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이 덕수궁 돌담길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이 길을 걸어가야 했으니,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젠, 대법원도 서울가정법원도 여기엔 없다
그리고 애초에 길 하나 걸었는데 헤어지게 될
운명이라면 차라리 빠르게 헤어지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가 거닐었던 덕수궁 돌담길은 일부에 불과했다. 영국대사관과 맞닿아 있어 지난 1959년 이후 폐쇄돼 있던 구간 총 170m가 있기 때문인데,
서울시는 영국대사관과 협의를 통해 시 소유 100m 구간을 올해 8월30일 개방했다.
서울시에서 시간이 깃든 장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렇게나마 조금씩 회복해가려는 노력들이
참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길을, 더 예쁘고 찾고 싶은
공간으로 지키고 가꾸어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 길을 다 걸으면 사랑에 빠진다는 속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