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 창고

하늘에 부치는 배추전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by Lagom




무슨 배추를 부쳐먹어?


서울 친구들에게 배추전 이야기를 하면 늘 의아한 표정과 함께 돌아오는 질문이었다. 무슨 맛으로 먹냐부터 해서 해물이나 고기 같은 것들을 같이 넣어 반죽을 해서 부쳐먹는 것이냐 등등. 배추전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배추전의 비주얼이란 김치전이나 파전같은 그런 것이었나보다.


딸 둘에 늦둥이 아들까지 삼남매인 우리집은 그 흔한 라면, 햄버거, 피자 등을 1년에 1번 먹을까 말까 했다.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는 엄마의 철학도 있었거니와 지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시골마을은 30분이면 온 동네 구경을 다 할 수 있었다. 곳곳에 누구네 집, 누구네 할머니 집으로 꿰뚫고 있는 이 작은 동네에서 맥도날드 햄버거 하나 먹을라치면 차를 타고 1시간을 운전해서 시내로 나가야 했다. 덕분에 우리는 항상 건강한 간식을 먹었다. 그 중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간식이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먹던 '배추전'이다.


특별한 레시피는 없었다. 약간 소금에 절인 배추를 부침가루에 휘휘 묻혀 식용유를 두른 후라이팬에 앞뒤로 딱 한 번씩 부쳐내면 끝이다. 그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간장에 살짝 찍어먹는다. 처음 배추전을 봤을 때, 그 비주얼이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우리 삼남매 모두 '음? 엄마, 김치를 씻은거가? '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둘째는 젓가락을 들고 머뭇머뭇 했고, 막내는 배가 고팠는지 한입 먼저 거들었다. 뒤따라 젓가락질을 한 나는 배추전의 그 오묘한 맛에 빠졌다.

그 어떤 재료도 없이 오직 배추만으로 부쳐낸 전이었다. 겉은 바삭했고 속은 배추의 수분이 약간 남아 있어 아삭아삭하면서 고소했다. 새로운 간식 앞에 호기심을 갖고 머뭇거리던 삼남매의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배추전 3판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잘 먹는 자식의 모습만 봐도 부모는 배부르다고 했던가. 엄마는 뿌듯한 미소로 우리를 보시며 '하나 더 구워주까? 맛있나? 입에 맞나? ' 라고 연신 질문을 퍼부으셨다.


5판 째를 비워갈 때쯤, 나는 물었다.

" 엄마, 이거 어디 요리책에 나온거야? "

씩 웃으며 엄마는 대답했다.

" 엄마의 엄마가 해준거야"


나는 얼굴을 모르는, 엄마의 엄마. 바로 외할머니가 엄마와 이모들에게 자주 해주셨던 음식이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6남매의 엄마였던 외할머니는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를 많이 그리워하시다가 1년 후에 하늘나라로 따라 가셨다. 우리 엄마는 6남매 중 가장 막내딸이었기 때문에 이쁨을 많이 받으셨다고 했다. 엄마의 엄마는 소녀 시절의 엄마를 두고 그렇게 먼저 하늘로 가셨다.


가난했던 시절, 먹을게 없었던 옛날에 배추잎을 서걱서걱 따서 밀가루 반죽에 살짝 담근 다음 부쳐낸 배추전이

엄마는 항상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추전 음식이 기억에 남았다기 보다 엄마는 배추전을 생각하면 외할머니가 떠오르셨던 것 같다. 갑작스레 가셨기 때문에 더 그리움이 크셨을 것 같다. 그리고 큰 딸인 내가 어른이 되서야 나에게 가끔 속내를 털어 놓으시곤 했는데, '친정 엄마가 안계시다'는 것에 대해 상처가 꽤 깊으셨던 것 같았다. 첫 아이 (큰 딸인 나)를 낳고 난 후 제대로 된 조리 없이 바로 집안일을 하셔야만 했던 일이라던가, 아빠와 다투는 일이 생길 때 위로 받을 내 편이 없다는 것은 엄마를 더 외롭게 만들었을 것 같다.


'아,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엄마는 나에게 슈퍼우먼같은 존재셨다. 삼남매 옷을 철마다 만들어 입힐 정도로 바느질 실력이 좋으셨고, 코바늘로 만든 레이스 덮개는 피아노, 쇼파, 테이블 위에 늘 예쁘게 올려져 있었다. 우리는 문제집을 풀다가도 모르는게 있으면 엄마에게 달려갔고, 책을 읽다가 이해 안되는 문장이 있어도 엄마에게 달려갔다. 언제나 답을 갖고 있으셨던 엄마. 이처럼 늘 현명하고 힘든 내색 전혀 하지 않으시는 강하신 분이었기에 나는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선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다.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작은 숙모는 친정을 찾아가는데 엄마는 갈 친정이 없으셔서 시댁 손님 대접을 계속 하셨다. 늘 음식을 이것 저것 내오시며 명랑한 며느리 표정으로 어른들을 모셨던 엄마. 철없던 어린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셔서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만들게 되면서 '엄마가 참 외로웠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한다. 최근 몇 차례 크고 작은 수술을 겪으시고 부쩍 여윈 엄마의 모습을 보면 더욱 내 마음이 좋지 않다.

나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버티는 삶을 살아올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나를 믿어주고 독려해주던 엄마가 계시지 않은 상상은 감히 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엄마의 소녀 시절은 투정부릴 곳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왔을 때 등을 가만히 쓸어주는 손길이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혼자 늙어 죽을 것 같아 아빠랑 결혼 했다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엄마는, 한 집의 큰며느리가 된 이후의 삶을 온 힘을 다해 버텨내셨다. 힘들면 기댈 친정 없이 오롯이 혼자서 감당했어야 할 무게를 지고, 서러움을 속으로 삼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엄마의 쓸쓸한 미소를 이젠 알 것만 같다.


아마 배추전을 만드실 때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추억하신 모양이다. 못다한 이야기를 편지에 꾹꾹 눌러 써서 하늘에 부치듯, 배추전을 꾹꾹 눌러 부치며 외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혼자서 풀어내신 것 아닐까. 엄마가 하늘에 부치던 배추전은 우리 삼남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며칠 전 비오는 날 문득, 신랑이랑 함께 -전이나 부쳐먹을까 - 하는 생각에 엄마가 해주시던 배추전을 만들며 혼잣말을 했다.


'나도 언젠간 엄마가 되는 날이 오겠지. 내 아이가 나의 엄마를 만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엄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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