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 창고

식사를 합시다

요리에 빠지다

by Lagom


자취라이프 13년 인생



나는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어쭙잖은 개똥철학을 품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 때부터 시작된 나의 자취 라이프는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채웠다. 독립해서 산다는 것은 처음엔 꽤 쿨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매달 내야 하는 공과금과 월세 그리고 동시에 똑 떨어지는 생필품들을 미리미리 채워두어야 하는 약간 귀찮은 일을 제외하곤 말이다.

나의 첫 자취집은 나름 분리형 원룸으로 현관문을 열면 오른쪽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왼쪽에는 욕실이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의 작은 공간이 펼쳐졌다. 작은 매트리스, 옷장 한 칸, 책상 그리고 작은 냉장고. '자취방 인테리어'를 검색해가며 나름 아기자기한테 꾸몄던 나의 첫 집(사실은 남의 집)이었다. 독립이라는 설렘에 부풀어 한 동안 매일 아침과 저녁을 직접 요리해서 먹었다.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등 찌개란 찌개는 다 만들었고 천원샵에서 싸게 들여온 그릇으로 플레이팅하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갖가지 반찬과 찌개, 볶음요리로 채워졌던 나의 밥상은 점점 밥과 참치캔 또는 마른반찬 등으로 대충 차려졌고 결국엔 밥상도 책상이 대신했다. 노트북으로 미드를 틀어놓고 밥그릇에 밥과 계란, 햄 등을 한번에 다 담아놓고선 먹는 일도 잦았다. 반찬을 여러 그릇에 담았을 때 설겆이가 많이 나오는 일을 줄이고 싶었다. 기분이 내키면 가끔 요리를 하기도 했으나 이내 나는 '원플레이트(하나의 접시에 모든 음식 담아먹기)' 삶으로 돌아갔다.


이런 오랜 자취 생활 덕분에 나에게는 '집 밥'이라는 향수병이 생겼다. 명절 때마다 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한가득 싸주시는 갖가지 반찬과 김치 덕분에 며칠은 '밥다운 밥'을 먹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사먹지 말고 해먹어라는 잔소리를 늘 하셨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그 때만해도 나는 '귀찮아서' 혹은 '재료비가 더 나가서' 집에서 해먹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작년에 결혼을 하고 신혼살림을 살아보니,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후, 나는 ‘집에서 요리하기’에 빠졌다.



결국, 사람이었다



자취방에서는 나와 같이 먹는 사람이 없었다.

맛있게 요리를 하고 예쁘게 플레이팅을 해도 결국 먹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 간은 맞는지, 입맛에는 맞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혼자 요리를 하고 혼자 먹는다는 것은 약간의 공허함이 있다. 마치 예능을 보며 혼자 낄낄낄 웃다가 웃음을 멈추면 고요한 적막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매일 저녁을 같이 먹거나 요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는데 바로 [주말은 집에서 요리 해먹기]였다. 다행히 내가 만든 요리를 신랑은 맛있어한다. 가끔은 나도 내가 했지만 너무 맛있어!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주책을 부리기도 한다.



옷이나 화장품 쇼핑보단 레시피를 검색하고 ‘오늘 뭐 해먹지’를 고민하며 마트 쇼핑 시간이 늘었다.

물론 요리는 힘들다. 만드는건 한 세월인데 먹는건 순식간이다. 뒤처리는 더더욱 귀찮다. 엄마들이 왜 그렇게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 이라고 했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집 밥을 만든다. 한 끼 먹을 음식을 요리한다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을 요리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살기 너무 바쁜 현실에서 같은 밥상에서 함께 젓가락을 부딪쳐가며 밥먹는 이 시간만큼은 앞으로도 지켜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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