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 창고

성희롱, 그 불편한 관계

by Lagom


상처에 대한 정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쉬운 것들이 쉽지 않게 되는 것이 어른인 걸까.

세상이 복잡해지고 시간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망각하는 것 같다.

남이 내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을 나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역지사지 마인드를 갖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사람이 유일하게 준 것을 기억 못 하는 것, 바로 상처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평생을 안고 살아가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정작 '내가 그랬던가?'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애초에 자신의 행동이 상처가 될 것이라고 인지했다면, 하지도 않았을 테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이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의도가 어찌 됐든 '그건 나에게 상처야'가 된다.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어리석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나 상대가 상처를 받았다면 응당 사과를 해야 한다. 세상 사람 모두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에 내가 괜찮다고 해서 타인도 괜찮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늘 어려운 부분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일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일이다. 대체로 상대가 싫어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최근 불거지는 여럿 성희롱, 미투 문제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곤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성희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남자가 사회에서 성물의를 일으키면 '여자가 가만있는 남자를 꼬드겨서 그런 거지' 혹은 '얼마나 행동 처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길래 이런 일이 생기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나는 경악스럽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괴롭힘을 당하다 용기 내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왜 이제야 밝히는 거지?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문을 먼저 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입을 해도,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다들 그렇게 생업과 무관하게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 말이다.



성희롱인가요?


20대 초반, 한 무역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나는 성희롱을 당했다. 회식 자리에서 노래방을 갔었는데, 한 과장님이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며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우리 oo이랑~ 하하하' 하고 말했다. 그땐 나도 멋모르고 웃었다. 치마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손길이 불쾌했지만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명백히 직장 내 성희롱이다. 왜 나는 그때 손을 탁 - 치우거나 슬며시 옆으로 자리를 빠지면서 '과장님 조금 불쾌합니다'는 말을 못 했을까? 내가 멍청해서?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을 실제로 겪으면 먼저 이것이 성희롱인가? 그냥 직장 상사가 할 수 있는 조금 지나친 '농'이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그리고 그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내가 이것을 문제 삼았을 때 혹시나 나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이것이 '권력형 성희롱'의 문제인 것이다.

성희롱은 비단 여성/남성의 젠더 문제가 아니다. 성희롱 문제는 늘 '권력'과 함께 우리 주위에 맴돈다. 학교 선배, 직장 상사 등 사회생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나보다 '윗사람'이 하는 성희롱은 대단한 깜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입밖에 내는 것을 고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문제가 터지면 사회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여론을 악용하는 일들도 있고, 불륜이거나 그땐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등을 돌린 남성에게 '성희롱' 족쇄를 채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일수록 더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피해자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자극적인 단어와 상황에 따라 요리조리 말을 붙이는 기사를 멀리 해야 한다. 그리고 제기된 성희롱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수사하고 밝혀내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나 가해자 입장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 억울한 가해자가 있다면 밝혀낼 수 있고, 상처 받은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 벌의 멍에는 벗을 수 없다. 죄와 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이 나라 법 체제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


평생을 젠더와의 싸움 앞에 있었고 대권 후보로 유력했던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우선인지를 정하는 게 '권력'이라면 그 '권력'은 부패한 것이다. 망자의 명예와 피해자의 명예는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다.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실수를 한다. 절대 우리 남편은 그럴 일 없어, 했지만 바람을 피우고 절대 그 사람은 그럴 일 없어, 했지만 횡령을 하기도 한다. 정치인을 떠나서 한 사람으로 본다면 조금 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까.


시대가 많이 변했다. 10년 간 변한 사회의 모습보다 최근 2-3년 안에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이젠 모든 것이 '드러나는 시대'다. 정의를 내세우던 곳에 정의가 사라졌다. 어떤 식으로든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여성성을 이용한 성희롱 언론 플레이인지, 권력형 성희롱 문제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극적으로 밝혀지길 바란다. 그래야 여성적인 직업, 남성적인 직업에 대한 인식도 사라지고 직업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도 좀 변하지 않을까.


우리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역할 구분이 아닌, 성에 상관없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남성이라도 가사일이나 섬세한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다면 그 역할을 하면 되고, 여성이라도 사업과 비즈니스 면에 더 뛰어나다면 돈을 벌면 된다. 이런 이분법적인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하루빨리 변화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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