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게 꼭 나쁜것은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근대 생명 과학의 뿌리다. 진화론은 사회에 대한 인간의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켰다. '종의 기원'을 읽고 난 후에 사람들은 사람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생존 경쟁, 자연 선택의 원칙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든다.
생존 투쟁에서는 유리한 유기체만이 살아남는다. 약육 강식은 과학의 원리이고, 생존경쟁에 적합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의 불평등이나 계급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다윈의 또 다른 책 '인간의 계보(1871)'에 의하면, 다윈은 문명화가 진척된 상황에서는 자연선택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사회적 선택이 있는 공간에서는 자연선택, 자연도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명화가 충분히 이루어지게 되면 인간의 '사회적 본능'은 이타주의적 사고나 행동을 일반화시킨다. 이런 역설적 효과를 과학사학자 파트릭 토르(Patrick Tort)는 '진화의 역전효과'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인류사가 진화의 역전효과를 보기 어려웠다는 것은 인간의 문명화가 그 경지까지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1].
우리는 과연 그러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타적인 사회를 꿈꾼다면 먼저 인간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생존 경쟁에 적합한 것만 살아남는 '자연선택'의 논리는 생존에 필요한 '유리한 본능'들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리한 본능 중에는 '사회적 본능'도 포함된다. 앞서 다윈의 '인간의 계보'에 따르면 문명화가 진척된 사회에서 인간의 '사회적 본능'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즉 문명화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연선택은 사회적 본능을 토대로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원리, 법률, 평등, 도덕 등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본능은 이타주의적 사고 양식을 제도화시킨다. 사회적 본능을 선택하게 만드는 행위의 원인이 바로 인간의 이기심인 것이다.
이기적인 존재인 동시에 이타적인 존재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순수하게 '이타적'이기는 어렵다. 나는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은 항상 공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언뜻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유전자의 이기성의 발현일 수 있다. 개인적 이익, 혹은 상호 이익에 대한 전략적 계산과 관련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으며 동시에 이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이기적 행동과 이타적 행동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하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임과 동시에 주위에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지 혹은 그러한 행위를 함으로써 얻게되는 자기만족이라는 내재적 이기심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간과한 채, 특정 집단 혹은 특정인에게 무한한 '순수한 이타심'을 요구한다. 대가없는 순수한 이타심의 요구는 인간의 저항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숱한 사회문제들을 보며 겪어왔다.
앞으로 인간사회의 진화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이기적인 것은 나쁘고, 이타적인 것이 좋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지양하고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모색해보자.
[1] 고종석, 코드훔치기, 2000
[2] 정재승, 도덕성이 어떻게 이기심을 물리쳤을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