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서 변호인이 필요한 이유
형사/수사
사기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중인 피고인을 만났던 날이 생각납니다.
처음 만난 날, 피고인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가방에서 30페이지가 넘는 종이뭉치를 꺼내보였습니다. 억울함에 밤잠 못자고 공부하며 자신이 직접 쓴 서면이라며 '변호사님이 이 서면을 참고해서 변론요지서를 제출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전문직 종사자였습니다. 저는 처음 그분이 작성하였다는 서면의 목차와 큰 틀을 보고는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인데다, 소송을 직접 겪게 되면서 법률 지식을 많이 쌓게 되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사실관계는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피고인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는데, 지인이 소개해준 어떤 사람(이 사안의 피해자)에게 거액의 투자를 받은 후, 불과 1달 후에 회사가 파산하여 투자금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의 억울한 사연을 듣느라 피고인과 헤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서면을 찬찬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왜 그렇게 간단한 사건에 수십장에 걸친 긴 서면이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언뜻 봤을 때 변호인이 썼을 법해 보였던 그의 서면은 미안하게도 법원에 제출하기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때에 성립합니다. 따라서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속여서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편취의 고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는 '피해자로부터 투자를 받을 당시, 회사가 파산하게 되리라는 사정에 대해 전혀 예견할 수 없었고, 따라서 약속한 일자에 투자금을 변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여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고 그래서 투자금을 당장 변제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나는 투자금을 받을 당시에 피해자를 편취하려는 고의가 전혀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의 서면에는 피해자를 소개해준 사람이 누구이며, 그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피해자를 만난 날 운전은 누가 했었는지, 밥값은 누가 냈으며 그날의 점심 메뉴는 무엇이었는지 등등 피고인의 기억 속에 피해자와 함께한 순간들이 사진처럼 묘사가 되어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내용은 페이지 곳곳에 중언부언으로 적혀있어서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고, 도저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이런 말은 대체 왜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의문만 가중시키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있었습니다.
사건에는 각각의 쟁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법리적으로 꼭 다퉈야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루지 않고 수십장에 걸쳐 변죽만 울리고 있으면 재판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억울하다는 심정으로만 첨철되어 있는 서면은 법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종이에 불과합니다.
변호인은 법률 전문가로서 사건마다 다뤄야하는 쟁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인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달해줄 판사에게 '피고인이 무죄인 이유', 혹은 '검사가 기소한 것보다 경한 처벌을 받아야 하거나 그것이 유예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법률가의 정제된 언어와 표현방식으로서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변호인이 피고인보다 사실관계를 더 많이, 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변호인은 '그날의 점심 메뉴'를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 전혀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며 오히려 읽는 이에게 피로만 가중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관계 하나하나를 눈 앞에 선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에는 변호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되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반드시 전해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집중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작업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아무리 자신의 영역에서 높은 지식 수준을 갖추고 있으며 순간순간의 사실을 선명한 기억으로 간직한 피고인에게도, 반드시 변호인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고 카카오 채널을 통해 상담 예약이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