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다은 변호사 Jun 19. 2024

2024 대법원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최신 판례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과 관련하여 2018년에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판결을 설시한 바 있습니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등 참조




이후 성범죄 사건에 관하여 법원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 있으면 유죄로 판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지 논란도 적지 않았지요.


피해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의무도 있으나, 억울한 피고인을 양산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하나의 사건에서 그 두 가지 주장을 균형있게 살펴야만 하는 것이지요. 


사실 형사법의 기본 원칙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죠.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나,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건들에 비해 피해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무너뜨릴만한 사정이 없다면 믿어주는 것이 옳다는 추세로 판결이 많이 기울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성범죄 사건을 맡아서 진행해 본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은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곤 하였지요.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면 안 된다면서, 애매한 경우에 유죄라고 하는 거 아닌가?


성범죄 사건의 경우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개별적ㆍ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등 참조),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하여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 보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ㆍ타당성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추어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도 하나의 객관적 사실 중 서로 다른 측면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분에 한정하여 진술하게 되고, 여기에는 자신의 주관적 평가나 의견까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만을 진술하더라도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 즉,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없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객관적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만을 부인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물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ㆍ타당성, 객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이러한 우려에 화답하듯 대법원은 형사법의 일반론에 가까운 판결을 2024. 1.경 내놓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피고인이 일관되게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 함부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최근 성범죄 사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여 왔고,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권리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그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너무 지나치면 길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고소인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무고하는 자의 이야기를 미처 걸러내지 못해, 잘못없는 자에게 처벌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례가 사법기관의 정도를 제시하는 하나의 지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