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브런치로부터 축하 메일을 받고 두 손 들어 만세를 외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날짜를 확인해보니 벌써 5년 전이었다. 솔직히 좀 충격 받았다. 언젠가는 꼭 시작할 거라고 마음 먹었고, 틈틈이 구경도 했고,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했다. 내적 친밀감을 열심히 쌓아두었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줄은 몰랐는데, 정작 들여다보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미줄만 가득했다. 세상에!
사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긴 했는데, 그게 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였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었을 땐 세계와 우리 인류의 기원이 너무나 궁금해졌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는 모순으로 점철된 인간사에 대한 관심이 솟아났고, 대런 애쓰모글루가 쓴 『권력과 진보』를 읽었더니 자본 권력의 독단을 두고 볼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든 분야에 의견을 더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관뒀다. 흔히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들 하는데,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하나만 아는’ 사람은… 그냥 말을 말자.
쓰지 않는 독서 생활 5년차에 접어들면서 불현듯 책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희미했던 느낌을 다듬어보니,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랫동안 우울증의 문을 (타의에 의해) 여닫아오면서 사람 마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사람의 행동 전반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모여서 그들이 어떻게 사회를 이루게 되는지 스케치가 그려졌다. 특히 뇌과학과 심리학, 진화생물학 분야의 책들이 큰 도움이 됐는데, 나도 모르던 내 마음과 행동을 관찰과 논증을 통해 명료하게 정리해둔 덕분이었다.
이쯤 되니 정리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게임기 속 두더지처럼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그 아이디어들을 모든 걸 가지런히 펼쳐보니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직장생활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형편없었던 건지, 우리 마음을 이렇게까지 흔들어대는 건 무엇인지, 나와 당신의 마음은 어떻게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등등. 뇌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나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과 감상을 버무려 써보기로 했다. ‘책판다’였던 프로필 닉네임도 ‘마음판다’로 바꿨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을 참 많이 해봤지만, 그중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누가 뭐래도 ‘꾸준함’이었다. 특히 꾸준한 글쓰기는 뭐랄까, 바짝 마른 수건에서 물기를 짜내야 하는 느낌이랄까. 하도 쥐어짜는 바람에 장기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잦았다. 그렇게 내 글쓰기는 의욕 충만한 ‘애’에서 시작해 빛의 속도로 ‘증’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언어학자이자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김진해 님은 『쓰는 몸으로 살기』에서 글을 쓸 때마다 ‘지랄발광’을 한다고 하니, 이게 나만 어려웠던 건 아닌 것 같아 남몰래 안심하기도 했다.
이런 고통(?)을 무릅쓰고 또 글을 써보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어떤 일에서도 글쓰기만큼의 ‘몰입’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고(몰입은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 다른 하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에서 꺼낼 때마다 한여름에 땀이 가득한 이마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 같은 후련함 때문이다. 짧게나마 책스타그램에 독후감을 쓰면서 느낀 감정이었는데, 그나마 2년 가까이 꾸준히 했다는 게 아직까지 (그리고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굳이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다. 일단 내 이야기부터 좀 해보려고 하는데, 아주 많이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동안 겪어온 굴곡들, 그 굴곡을 지나면서 소용돌이쳤던 내 마음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했던 우리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부디 브런치를 채우는 시간이 함께 치유하는 첫 걸음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