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ADHD: 이름 찾아 떠난 7년 유랑기

(수정) 늦깎이 ADHD의 브레인 튜닝로그 #1-2

by 책판다

운명처럼 만난 나의 파괴자, ADHD


하지만 마음 속 다른 구석에선 이런 속삭임이 들려왔다. 언제까지 이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걸까? 시니어가 되면 척척 제안서를 써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왠지 금붕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어항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입만 뻐끔댈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산을 오르던 어느 날이었다. 사무실에서 인터넷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내게, 이 모든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쳤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몰입이 이어졌다. 우울증 너머 이 모든 실패를 설명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점차 굳어갔다.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해 산만하고 과다활동과 충동성을 보이는 질환. 성인은 성장기 아동에 비해 발견이 쉽지 않지만, 주의력 결핍이 남보다 두드러지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는 이야기였다. 손에 땀을 쥔 채로 기사를 정독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자가보고척도(ASRS) 항목을 하나씩 체크해 내려갔다.


ADHD 간이 테스트.jpg 표. 성인 ADHD 자가보고척도(ASRS) 1)


결과는 충격적일 만큼 명확했다. ‘어려운 일 미루기’, ‘체계적인 진행 불가’, ‘약속 망각’…. 6개 중 5개 항목이 오른쪽 끝에 있는 ‘매우 자주 그렇다’ 칸을 뚫고 나갈 기세였다. 단 하나, 5번 항목인 "손발을 꼼지락거리는가?"에만 ‘전혀 그렇지 않다’였다. 그랬다. 내 집중력은 노력이 아닌, 내 뇌의 문제였던 것이다!

결과를 확인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 내가 ADHD가 아닐 리가 없어.’ 그동안 기회만 있으면 과몰입에 몰두해왔던 나는 ‘ADHD’에 대해 특유의 과몰입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관련 기사를 모두 찾아 읽으면서 내가 ADHD라는 확신은 설악산의 암벽 봉우리처럼 단단해져갔다. 첫 우울증 치료 이후 7년이 지난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페라리처럼 달려나간 확신, 급브레이크를 밟은 의심

그러나 빠르게 분비된 도파민이 순식간에 휘발되는 것처럼 강렬한 확신은 강력한 의심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오랜 심리 상담 경험에 비춰볼 때, 오랜 지레짐작은 거의 대부분 ‘오답’인 경우가 많았고, 선뜻 병원에 들러 “제가 ADHD입니다” 외칠 수가 없었다.

이 의심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던 것은 동생과 나눈 대화였다. 일말의 객관성이라도 확보해보고자 검사지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답안을 작성해보라”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동생에게 온 답장은 이랬다.


“형은 너무 걱정이 많아.”

잡생각 생산량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질 자신이 없던 나는 이 대답을 듣고는 앞서가는 생각의 꼬리를 덥석 물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오면서 나름 우울 전문가 행세를 하던 나는 걱정과 불안이 우울증의 ‘증상이자 원인’이라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난데없는 걱정과 불안에 휩싸일 때마다 그 실체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거듭하던 나는 걱정과 불안의 실체가 없을 때마다, ‘이제는 괜찮다’라다며 내 마음을 푹신한 방석 위에 살포시 놓아주었다.


문제는 내 평생을 따라다닌 걱정 습관이 우울증의 증상인 동시에 ADHD의 증상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전문가들은 ADHD인들이 비판에 대한 민감도는 높으면서 성취도는 낮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한다.1)

ADHD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우울증은 나름 ‘빠삭했다’고 자부한 나는 내 걱정 습관을 잘 알고 있던 동생의 답장 이후 한동안 ‘진단 불가’ 상태에 빠졌고, 다른 걱정 거리를 하나 더 키워버렸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괜히 까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망설임에 망설임을 반복하게 됐는데, 아는 건 힘, 어설프게 아는 건 병이라는 걸 명백하게 증명한 사례가 되겠다.


보류된 ADHD, 네버 엔딩 우울증 치료

그 망설임을 겨우겨우 제쳐두고 병원에 갔던 날, 나는 ‘근거 있는 망설임’이었음을 확인하고 말았다. 우울증 치료가 끝난 후 반복되는 업무 효율 저하 때문에 끝내 A 선생님 앞에서 ADHD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당시 A 선생님께 돌아온 답은 이랬다.

“아무래도 ADHD보다는 우울증 같아 보이는데요.”

비단 내 ‘걱정 습관’뿐 아니라 내가 겪어온 많은 일들이 우울증에서 자주 보고된 사례이기에 우울증 치료를 먼저 해보는 게 맞다는 말씀이었다. 병원 방문 전 이런저런 자료를 주워 읽었던 나는 ADHD가 우울을 유발한 사례에 대해서도 (나름 강력하게) 말씀드려보았고, A 선생님은 보고된 사례가 많지 않다는 답변과 함께 나를 간단히 제압했다. 특히 내가 앓아온 만성 우울증은 A 선생님의 확신을 더하는 근거가 되었다.

진단을 받을 땐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근거 없는 오진’ 취급하는 것도 무리인 게 실제로 ADHD는 기분과 불안 장애, 물질사용장애, 성격장애를 포함해 적어도 하나의 동반 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2) 앞서 길게 이야기한 ‘습관적 걱정 불안’뿐 아니라 건망증, 업무 효율 저하 같은 증상이 두 질환에서 함께 관찰된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우울증일 수도, ADHD일 수도 있는’ 그 애매한 지대에서 몇 년을 방황해야만 했다.

결국 다시 1년 가까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달라진 건 많지 않았다. 결국 퇴사 후 다시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역시나 ‘관심 직원’이 되어 있었다. 끝내 다른 병원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그 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1초 전의 일’처럼 생생하다. 누군가 벽돌로 짓누르듯 가슴이 ‘물리적으로’ 답답해지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내일이 온다는 게 이렇게까지 두려울 일이었나. 당장 무슨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이대로 끝날 것만 같은 기분. 회사 주변 정신과에 전화를 돌려 당장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는데, 예약이 적어도 2~3주는 차 있는 바람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대로 끝날 것만 같은 그때, 전화를 걸었던 마지막 병원으로부터 당일 진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생 많으셨어요. 고군분투는 끝났습니다”

병원에서 한 시간 가까이 B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갔다.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B 선생님은 ADHD 진단에 필요한 항목을 하나하나 물어보셨고, 나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침 조회 시간에 끊임없이 꼼지락대다가 조회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 불려가 지적을 받았던 기억, 학년이 올라가도 같은 선생님이 적은 것마냥 반복되던 ‘산만하다’는 코멘트, 직장에 다니면서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고 그러다 마감을 끼니보다 더 자주 넘기던 나, 제안서 결과물 때문에 날아오던 질책, 그 모든 기억에 압도되어 우울의 수렁에 반복해 빠지던 모습까지. 긴 답변을 모두 듣고 정리한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복용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시죠”

“아, 정말로요?”

B 선생님에게 그 말을 들었던 그때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ADHD라는 이름을 기다려왔던 것 같기도 하고, 막상 진단을 받으니 그동안 나를 무너뜨렸던 무수한 실패가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이렇게 돌아 올 필요가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전까지 나는 내가 저질러 왔던 산더미 같은 실수들을 ‘노력 부족’ 때문이라 여겨왔고, 그만큼 자신을 비난해왔다. 부적절한 진단과 처방에 대한 책임을 혼자 져 왔던 셈인데, ‘ADHD’ 진단과 함께 지지 않아도 될 책임을 떠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뒤엉킨 와중에, 내 마음의 소리를 엿듣기라도 한 듯 B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동안 혼자서 고생 많으셨을텐데, 이제 같이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 ADHD 진단을 받아낸(?) 나에게, 어떤 사람들은 ‘결론은 정해진 거 아니었어?’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실패를 합리화할 알리바이가 필요했던 게 아니냐며 말이다. 솔직히 그 물음에 ‘됐거든?’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큼 스스로에게 던져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기야 전문가들마저 ADHD에 대해 아직까지 논쟁을 이어가는데, 비전문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여기까지 걸어온 그 길을 다시 걷게 될 것 같다. 아니, 꼭 다시 걷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내 실패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일단 이 이름과 함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역량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무능한 인간’으로 간주했고,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다. 퇴사 후 다시 입사할 때마다 ‘언젠가는 드러날 거짓말’을 숨긴 기분이었고, 퇴사할 때마다 ‘그럴 줄 알았다’라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거짓말’ 대신 ‘솔루션’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이 길을 걷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해보니 이제는 방 하나쯤은 거뜬히 터뜨릴 만한 데시벨로 우렁차게 대답할 자신감이 생겼다.

“응 핑계 아니고,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어라.”

B 선생님의 진단 그리고 격려와 함께 나는 드디어(?) ADHD 극복의 첫걸음을 (나름) 힘차게 내딛었다.




1) 에드워드 할로웰·존 레이티, 『ADHD 2.0』, 녹색지팡이, 2022

2) 신소정 외, 젊은 성인 남성 우울증 환자에서 ADHD 경향성에 따른 인지기능의 특징, 생물치료정신의학

제27권 제1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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