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그림: 마지막 퍼즐 조각 끼워넣기

늦깎이 ADHD의 브레인 튜닝로그 #1-3

by 책판다

연재일을 일요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너른 양해를 부탁드리며,

앞으로 늦깎이 ADHD의 브레인 튜닝로그’는 일요일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 )



몰랐던 알리바이: 실패의 정체를 찾아서

어렵사리 진단을 받은 나는 궁금했다. ADHD가 대체 뭐하는 녀석이지? 일단 내 뇌가 내 것이 아니란 건 잘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날 괴롭혀온 걸까? 이 친구가 사람이었다면 뒷통수에다 대고 “그렇게 내 멱살을 잡아 흔들어야 했냐?” 다그치기라도 할 텐데. 그땐 그 정도로 화가 많이 났더랬다.

집에 돌아온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여두고, 일단 실체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내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몇 안되는 물건, 책으로 공부하자고 마음을 먹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검색창에 무작정 ‘ADHD’를 입력했고 앉은 자리에서 몇 권을 골라 책을 당장 주문했다. 업무 시간엔 아무리 노력해도 끌어올리지 못했던 추진력이 물탱크가 물을 퍼올리듯 솟아났다.

하지만 검색 결과를 확인한 나는 조금 난감했다. 일단 많은 ADHD 관련 서적이 아동을 위한 책이었기 때문이고, 나머지 책 중에서도 이런저런 기획이 많이 더해진 탓에, ADHD를 깊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책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정확한 정보를 원했던 나는 밤 늦게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 날 네 권의 ADHD 관련 서적을 주문했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두 가지였다. 내 머릿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뇌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대체 무슨 일을 못하게 된 걸까?(본격적으로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은 책이 도착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때였지만. 회사 일이 많이 바쁜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ADHD의 한 특성이었다고 한다. ADHD인들은 이래저래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스위치 고장: 일 잘하는 천사와 딴생각 악마의 동거 1)


내가 먼저 파고든 것은 ‘나와 같은 ADHD인들의 뇌에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였다. 여러 심리학/뇌과학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행동이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좌우된다는 걸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ADHD와 관련해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어서 가슴의 한껏 열 오른 압력밥솥처럼 답답했던 차였다. 일단 내 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싶었다.

우리가 설거지와 같은 주방일이나 이메일 쓰기와 같은 업무 등을 하게 되면, 우리 뇌 안의 뉴런(뇌신경 세포)에 ‘불이 켜지면서’ 함께 작동한다고 한다. 이 같은 뉴런들의 연결망을 ‘커넥톰’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커넥톰은 보통 두 가지로 분류하게 되는데, 하나는 업무 시 불이 켜지는 ‘작업집중네트워크(Task-Positive Network, TPN)’, 다른 하나는 작업을 끝냈을 때 불이 켜지는 ‘기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이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작업집중네트워크(TPN)가 작동될 때에는 작업 긍정 커넥톰이 우리를 이끌게 되는데, 이 때에는 일에 불만을 느끼거나 낙담하는 순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게 마련이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행복한지 아닌지 여부를 의식하지 못한다. 작업에 집중하느라 자기 평가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순간을 행복한 것만큼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우리 안의 천사가 우리를 전적으로 이끄는 순간이다.

한편 작업집중네트워크(TPN)가 멈추고 기본모드네트워크(DMN)가 작동될 때에는 공상이나 여러 개념을 흥미롭게 연결하는 일 등이 일어난다. 특히 내가 주목한 부분은 기본모드네트워크(DMN)가 ‘풍부한 상상력’과 ‘과거 회상’과 연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뇌 안에선 작업집중네트워크(TPN)가 켜지면 기본모드네트워크(DMN)가 끼어들지 않는다. 작업에 집중하느라 공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같은 ADHD인들이 남달라지는 대목인데, 이들의 머릿속에선 작업집중네트워크(TPN)가 켜진 상태에서도 기본모드네트워크(DMN)에 함께 켜져 있다. 앞서 말했듯 기본모드네트워크(DMN)는 상상력 또는 과거 회상과 연관이 있는데, 이런 속성 때문에 작업 중에 자주 상상을 펼치는 동시에 그 상상을 과거를 회상하며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상상은 대부분 매우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진다(‘전에도 망했잖아.’ ‘이번에도 별로였다는 평가나 듣겠지.’). 악마가 내면을 지배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기본모드네트워크(DMN)가 작업집중네트워크(TPN)를 방해하다 보니 일을 시작하기 어렵거나 자주 포기하게 되고(이번엔 완성도가 좋아야 할 텐데 엄두가 나질 않아), 혹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당연히 결과물 퀄리티 또한 좋아질 리가 없고, 절망의 나락으로 자주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되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 딴 생각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ADHD인들이 그 일을 마음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너무 많이 강조해서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지만 한번 더 강조하겠다.“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구요.”


나를 망치러 온 녀석들: 일곱 악마의 이력서

ADHD인의 뇌 작동 메커니즘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나니, 열리지 않았던 미스터리가 한번에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의지력이 이렇게 약한 거지?’ ‘게으름은 해결 불가능한 거야?’ 청소년기 즈음부터 ADHD 진단을 받기 전까지 스스로를 비난하기에 바빴는데, 사실은 뇌가 조금 다르게 작동해왔던 거다.

ADHD란 녀석을 알아가면서 나를 망쳐왔던 녀석들의 이름을 적어보았다.

▷ 실행 기능 장애

▷ 주의력 조절 문제

▷ 작업 기억 문제

▷ 시간 맹

▷ 충동성/감정 조절 실패

▷ 거절 민감성

▷ 도파민 추구 성향

▷ 낮은 자존감/만성적 자책 성향

하나 같이 처음 알게 된 말들이 왜 이렇게 친숙했던 걸까? 찬찬히 곱씹어보며 이 친숙함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고, 이내 답을 찾았다. 이 증상들에 내 실패가 꾹꾹 담겨 있었던 탓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과거의 실패가 나를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낯선 이가 현관을 두드릴 때 놀람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느꼈다. 게다가 이 모든 걸 죽기 전까지 떠안고 가야 한다고? 갑자기 눈 앞에 선글라스 다섯 개를 씌워놓은 기분이 들었다. 여름 볕도 뚫지 못할 어둠이 펼쳐졌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ADHD에 대해 알아갈수록 막막함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런 성향 또한 뒤집어 생각하면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차라리 이런저런 이름이 붙어 있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전에는 상대방을 너무 몰랐던 탓에 의지만 불태우다 대책 없이 실패했는데, 이제는 상대방의 공략 포인트를 찾은 느낌이랄까.

수확은 더 있었다. 꽁꽁 감춰두려고만 했던 내 마음 속 상처들을 이제는 마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샛눈 뜨고 힐끔힐끔 엿보는 수준이지만, 첫 걸음을 뗐다는 게 중요한 일 아니겠나. 전에는 생각날 때마다 이불킥만 날렸는데.

그래서 다음 연재부터는 그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이러다 이불킥 여러 번 날릴 것 같긴 하지만, 마음 속 상처들과 차례로 만나 억지로 손을 잡고 흔들다 보면 언젠가 이 상처와 마주해도 무덤덤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1) 에드워드 할로웰·존 레이티, 『ADHD 2.0』, 녹색지팡이, 2022 설명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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