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망상』을 읽고 남기는 반성문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스타그램을 열심히 굴리던 시절 이야기다. 나는 책 협찬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마음에 자물쇠 10개를 채웠다. 좋은 책을 받는 건 좋은데, 읽고 싶은 책을 못 읽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협찬 서평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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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브런치와 책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저건 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 눈에 띄었다. 그중 『집단 망상』은 정말이지 내 돈을 주고 사서라도 읽고 싶은 책이었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였는데, 알다시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대체 왜 저런 걸 믿는 걸까’ 궁금한 걸 넘어 체한 것처럼 답답했고(예를 들면 ‘부정 선거’라든지…), 이 책이 나만의 사이다가 되어줄것 같아 얼른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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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으로 책을 받아 열심히 읽었던 소감은 ‘일단 나부터 잘 하자’였다는 이야기…. 이런 반전은 대체 왜, 어떻게 일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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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소개한 사람들이 망상에 빠지는 경로를 내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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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모든 정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1~3장에서 소개한 인지 편향은 누구에게나 있다(‘나는 예외!’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자신감조차 인지 편향의 예시로 소개된다는 걸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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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함께 망상을 뒷받침할 정보가 넘쳐나게 됐다. 이제는 누구나 자기 망상의 근거를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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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 유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 통해 금전과 권력을 노리려는 이들이 나타났다(극우 유튜버들의 수입을 듣고 놀란 경험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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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사실 재미없음), 이렇게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바보’ 나아가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온갖 기발한(?) 욕설로 상대방에게 모욕을 퍼붓고 있으며, 정당들은 ‘정권 획득’ 외에 ‘상대 정파의 궤멸’이란 목표를 추가했다. 여기저기에서 상대방을 제거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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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끌끌 혀를 차면서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그럴까?’ 생각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방심은 금물. 저자는 이렇듯 ‘나는 예외야!’라는 전형적인 편향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한다(자신을 ‘평균적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평균 이상 효과’ 또는 ‘우월성 환상’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정강이가 아파왔다. 우쭐해하다가 각목으로 뼈를 맞은 것 같아서). 게다가 ‘나는 언제나 합리적이며, 내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는 사람이 많을수록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모르긴 해도 주말마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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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갈등은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증명하는 요인이었겠지만, 이대로 두면 민주주의가 정말 무너질 것 같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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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해결책 몇 가지를 제시했고, 그중 몇 가지는 나도 두 팔을 번쩍 들어 동의할 수 있었다(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게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다만 이 서평에선 저자의 해법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보다는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함께 생각해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함께 생각해주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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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조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분석적 사고’를 제안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인용문을 참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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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적 사고는 고정불변의 능력이 아니라 학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 능력은 망상 또는 그 비슷한 믿음과 관련된 ‘성급한 결론 내리기’ 식의 직감적인 사고에 제동을 거는 것만으로도 기를 수 있다. 일단 그렇게 사고의 속도를 늦추면 우리는 자신에게 ‘이게 사실일까?’, ‘내가 맞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믿는 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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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만 있다면 200% 300% 동의한다. 그리고 분석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갈등이 줄어든다는 것도 잘 알겠다. 문제는 이 사고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겠냐는 거다. 특히나 주의력을 노리는 늑대들(테크 기업과 개인 미디어 사업자들)이 사방을 둘러싼 요즘이기에, 어쩔 수 없이 회의하게 된다. 그렇다고 분석적 사고 때려 치우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이걸 어쩌나’ 생각하던 참에, 어설픈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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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이를 지탱하는 분석적 사고는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받게 됐을까? 사람들이 세상을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객관성’과 ‘정확성’은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과학자의 분석적 사고 덕분에? 당연히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결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아 얼른 말하자면, ‘합의를 제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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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팩트’들은 어느 날 천재 과학자 한 명이 “내가 발견했어!”라고 소리치며 주장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후속 연구를 통해 재현되거나 다양한 방식의 검증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팩트’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과학계에는 인정 받지 못한 주장이 셀 수 없을 정도이며, 대중서에서조차 같은 내용을 다르게 설명하는 책들이 정말 많다. 그러니 과학의 권위는 과학자 개개인의 분석적 사고력 보다는 검증 과정을 제도화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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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은 과학계가 그랬듯 사회에도 분석적 사고를 제도화하는 것이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가짜 뉴스, 나아가 망상적 사고를 방치하는 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근거로 활용한다면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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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화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책을 가능한 많은 분들이 함께 읽고 아이디어를 모아보면 좋겠다 싶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렇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일수록 머리를 모아야 해낼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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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참고로 지금 이야기하는 ‘제도’가 정부의 일방적 규제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참고할 것.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판정하는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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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2. 나는 책의 9장에서 다룬 ‘정체성 정치’가 갈등의 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글이 너무나 길어졌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중에 다뤄보려고 한다. 마침 옛날에 읽고 서평 작성은 무기한 연기했던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두 책을 엮어서 쓰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