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쟁이랍니다~
버즈의 겁쟁이라는 노래 가사이다. 이 가사처럼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다. 어두움을 무서워했고, 자주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혼자 어두운 방에서 잠을 청할 땐, 용기가 생기도록 내가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상상을 했다. 1층과 2층 계단 사이의 빈 공간을 보며 계단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을 할 땐, 건축가를 믿으려고 노력하거나 떨어져도 고통스럽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 가스 밸브 확인하기나, 현관문 이중 잠금 장치하기처럼 직접 할 수 있는 건 하고 잠에 들었다. 최대한 위험하거나 무서운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수련회에 가서 집라인을 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약 15년이 지나서야 첫 집라인을 타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겁도 많지만 멀미도 많이 하는 체질이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여행 갈 때마다 날 안고 있으면 부모님의 상의가 멀쩡한 날이 없었다고 하고, 거문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을 때 절정이었다고 들었다. 그날의 그 배에는 모든 사람들이 멀미를 하고 있었다지만, 특히 더 심했던 건 분명하다. 버스나 자동차는 자주 타고 다녀서 이젠 전정기관이 조금 적응한 듯하지만, 여전히 쥐포처럼 자극적인 향이 멀리 퍼지는 음식을 가지고 탄 사람이 있을 거나, 배를 탈 땐 속이 울렁거린다.
겁과 멀미 인간에게 상극인 게 놀이기구다. 저 높은 꼭대기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질 때 괜찮은가 하는 불안함과 멀미에 대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놀이기구를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모든 놀이기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최애 놀이기구를 소개하자면 ‘회전목마’ 되시겠다. 하늘도 날 것 같은 말부터 아기도 탈 수 있는 마차까지 다양한 탈 것들이 예상되는 속도로 조심히 돌아갈 때의 그 평안한 마음이란. 나름 말에 오르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움직임이 꽤나 격해서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그러다 친구들이 탄다고 해서 도전한 놀이기구가 있으니, ‘후룸라이드’이다. 더운 여름날에 잘 어울리는 놀이기구였다. 물을 촤아악하고 맞을 때 그 시원함이 좋았다. 낙하할 때 엉덩이가 의자에서 뜨는, 아니 몸 전체가 날아갈 거 같은 그 느낌은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지만 한두 번쯤이야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딜 가나 이야기했다. “내 놀이기구 스릴 최대치는 후룸라이드야.” 다행히 무서운 놀이기구를 즐기지 않는 친구들도 주변에 있어서 지킬 수 있었던 말인 것 같다.
하지만 후룸라이드의 기록을 깨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올해 여름 일본 여행, 유니버설 스튜디오였다. 애인도 겁이 많아, 에버랜드에 함께 갔다가 릴리댄스라는 회전 컵 놀이기구만 타고 돌아온 전적이 있다. 그래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갈 때도 놀이기구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는 해리포터 덕후였고, 다른 건 몰라도 해리포터 놀이기구는 꼭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실감 난다, 그렇게 무섭진 않지만 재미있다는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 놀이기구 줄을 섰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서 있는데, 앞에 마리오 빨강, 초록 커플룩을 입고 연인으로 보이는 분 중 여자분이 직원에게 가서 이거 많이 무섭냐고 물어보셨다. 직원은
“노, 노 드롭”
이라며 손으로 큰 엑스를 만들며 대답하셨고, 여자분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돌아가 남자분에게
“노 드롭”
이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남자분은 “륄리?”하시며 되물었고,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남자분의 표정 변화를 보아 여자분이 저 사람에게 물어봤다며 계속 안심시켜 주신 것 같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덩달아 안심하며 기다렸다. 해리포터 기숙사를 놀이기구에 탑승했는데, 먼저 출발한 놀이기구 의자가 저 앞에서 뒤로 넘어가는 걸 봤다. 너무 놀랐다. 아니 그런 말은 없었잖아. 이미 앉은 걸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뒤로 넘어갈 때 느낌이 생각보다 부드러워서 괜찮았다. 놀이기구 내용은 해리포터를 따라 마법 빗자루를 타고 골든 스니치를 잡는 것이었는데, 그 와중에 괴물들이 나오고 동굴에선 진짜 물이 떨어졌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3d 안경 없이도 화면을 너무 잘 만든 나머지 정말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느낌이 났고, 중간에 몇 번 눈을 감을 정도로 스릴 있었다. 총평을 하자면 후룸라이드보다는 무서웠던 것이 확실하지만 실제로 속도가 빠르고 낙차가 큰 놀이기구와는 확연히 다르리라 예상해 본다. 무엇보다 영화에 기반한 설정이나 화면 구현력이 뛰어나 해리포터 덕후라면 정말 좋아할 놀이기구였다.
그리고 몇 주 뒤 웬만한 놀이기구쯤은 가볍게 타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제안으로 새로운 종류의 놀이기구에 도전하게 된다. 캐리비안베이의 ‘메가스톰’이다. 오전 9시에 문이 열리자마자 락커를 찾아 짐을 넣고 메가스톰으로 향했는데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물에 홀딱 젖어 튜브를 타고 아래에 도착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올라가니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순간 심장이 쿵쿵 뛰고,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싶었지만 이거 하나만 타보자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따라 올라갔다. 드디어 순서가 되어 튜브에 앉는데, 차례대로 타다 보니 마침 남는 자리가 앞을 볼 수 없는 자리라서 더 무서웠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앉아서 떨다가 튜브가 커다란 관 속으로 떨어졌다. 후룸라이드의 느낌과 비슷했다. 공중에 부웅 뜨는 느낌이 들 때마다 다들 소리를 지르길래 같이 “꺄” 외쳤다. 혼자 있었으면 더 무서웠을 것 같은데 이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두려움을 덜어주었다. 조금 진정하려 하면 다시 뚝 떨어지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홀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내려와서 한 첫마디, “와, 재밌어. 또 타고 싶다.” 이렇게 세상의 짜릿한 재미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전부터 놀이기구를 보면 드는 생각은 ‘왜 돈을 내고 소리를 지르며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인가?’였다. 하지만 올해의 해리포터 놀이기구와 메가스톰 경험으로 조금은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뚝 떨어지는 정도의 난이도는 되어야 이 사람들은 짜릿하고 즐거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아직은 더 도전하고 싶은 놀이기구는 없다. 한 달 만에 커다란 도전을 두 개나 해치워버려서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한동안은 이미 도전해 본 해리포터와 메가스톰 정도의 난이도로 놀이기구를 다양하게 즐겨보고 싶다. 그러다 한 단계씩 높여보고 싶은 때가 온다면, 그때 한계치를 더 높여보려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 얼만큼 더 한계를 부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