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유럽 자동차 여행 1
7월 초에서 8월 초까지 한 달 동안 유럽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 셋. 이렇게 다섯 식구. 여행하는 동안 페북에 몇 차례 소식을 올리게 되겠지 했는데, 그럴 여가가 별로 없었다. 저녁에 다음날 일정을 짜고, 다음날 여기저기 다니다 돌아오면 저녁 지어먹고 쓰러져 자기 바빴다. 그리고 엄청난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고국의 친구들에게 나는 낮에는 아름다운 풍경 만끽하고, 밤에는 서늘해서 이불 꼭 덮고 잔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타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머나먼 이역만리에서의 한 달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모험이었다. 우리 가족의 여행 반경(거리)은 언제나 첫째인 딸아이에게 달려 있었다. 장애를 갖고 있는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체력이 아주 약했기 때문에 자동차로나 비행기로나 1시간 이내로만 다녔다. 명절에 고향 갈 때도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비싼 비행기만 탔다. 다행히 건강이 차차 좋아지면서 여행 거리도 따라서 늘어났다. 작년엔 4~5시간 자동차 여행도 거뜬하게 해냈다. 그러자 아내가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던 카드를 꺼냈다.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을 ‘한 달 유럽 자동차 여행으로!’
그랬다. “그래, 언젠가 꼭 가자고” 여러 해 전 아내의 제안에 그 ‘언제’를 아무런 청사진도 없이 덤덤히 말했었는데 그게 생생한 현실로 벌어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내겐 여전히 여행의 생생함이 살아남아 있다. 앞으로 몇 차례일지 모르나 짧게라도 우리 얘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 있던 날. 그러니까 여행 5일째 되던 날 우리는 뜻밖에 여행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전날까지 우리는 가이드 북에 소개된 성당, 광장, 시가지, 박물관, 성(castle) 등을 찾아다녔다. 관광지에 가까운 주차시설에 차를 대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걸어서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는 식이었다. 아내와 나는 썩 나쁘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달랐다. 아이스크림 사 먹을 때나 잠시 얼굴이 밝아질 뿐 “왜 이리 멀어” “다리 아파” “배고파” “목말라” “이제 집에 가자” 끝없이 툴툴거렸다. 아이들을 달래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기대와 달리 별 볼 일 없거나, 지도 앱이 가까운 길을 두고 먼길을 돌아가게 하거나 하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나는 폭발 일보직전에 다다랐다. 교통 환경이 다른 낯선 나라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게 커다란 스트레스였던 데다가 매일 저녁 다음날 일정을 짜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으니 급기야 아무 잘못도 없는 아내에게 버럭 화까지 내고 말았으니···.
이대로 여행을 지속하면 안 되겠기에 아내와 나는 오늘은 그냥 공원 한 군데 가서 편안히 쉬다 오자 의견을 모았고, 아이들도 좋다고 했다. 비스바덴(Wiesbaden)에 있는 네로탈 공원(Nerotal-Anlagen)에 갔다. 우리가 머무는 마인츠 숙소에서 자동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였다. 부담 없었다.
“아빠, 7시에 경기 시작이니까 그전에 꼭 돌아와야 해! 꼭.”
“알았어. 빨리 갔다 와서 밥 먹고 느긋하게 결승전 보자고. 근데 아무래도 프랑스가 이기겠지?”
한참 축구에 푹 빠져 사는 둘째 녀석과 이런 대화를 나누며 집을 나섰다.
공원은 우리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주택가 근처에 잘 가꾸어진 너른 공원이었다. 공원 바깥을 따라 고풍스럽고 멋진 집들이 주욱 이어져 있는 것도 근사했다. 넓은 잔디밭에 다양한 수종의 크고 높은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개울과 큰 연못도 군데군데 있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관광객은 우리뿐인 듯했고, 사람들은 뛰거나 산책하거나 편안히 드러누워 있거나 했다. 둘째 녀석은 당장 축구공(엊그제 시내에서 산)을 꺼내 여기저기 뻥뻥 내지르며 뛰어다녔다. 막내도 개울물을 헤집거나 오리를 따라다니거나 하며 호기심 가는 대로 돌아다녔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공원 끝자락에 있는 네로산 정상에서였다. 네로반(Nerobergbahn)이라는 등반열차를 타고 3~4분 만에 올라갔다. 이 곳에서 비로소 여러 나라 관광객을 만났다. 야트막한 산 정상에 신기한 시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 북에도 인터넷 검색으로도 본 적이 없는···. 높은 나무 위에 줄사다리, 징검다리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고,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몸에 안전장비를 두르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쌔앵 지나가기도 했다.
‘아니, 이게 뭐지? 오호라, 잡지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기도···.’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나무 위에 나만의 비밀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인 장면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주변을 빠르게 살피고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1. 난이도가 다른 여러 개의 코스가 있다.
2. 10여 명 단위로 안전요원에게 교육을 받는다.
3. 간단한 실습을 거친 뒤 각자 원하는 코스로 가서(?) 모험을 즐긴다.
대충 이 정도였다. 그런데 참가자가 대부분 독일 사람들 같았다. 안전교육도 독일어로 했다. 이곳에 여러 나라 관광객이 와 있건만 외국인, 더구나 동양인은 보이지 않았다. 망설여졌다. 막내는 해보고 싶다 하고, 둘째는 하기 싫다 한다(둘째는 누구보다 신체활동에 적극적이고 운동신경도 탁월하지만 이런 낯선 환경에서 자주 관망할 때가 많다). 딸아이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나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언어소통 문제가 걱정스럽고···.
하지만 어쩐지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둘째를 꼬드겨 셋이서 도전했다. 다행히 안전요원은 독일어, 영어를 번갈아 쓰며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안전요원에게 몇 마디 물었다. 둘째와 막내 나이를 언급하며 코스마다 나이에 맞는 난이도를 어떻게 찾고 구별하느냐, 그리고 코스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서툰 영어였기 때문에 안전요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난감했다. 안전요원은 난감한 표정의 내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나한테 한 번 더 천천히 얘기해주세요. 내가 어떤 뜻인지 최대한 새겨 들어 볼게요.”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안전요원은 고등학생이거나 아무리 많이 봐도 스무 살이 안 돼 보였다. 그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중년의 동양 남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놀라웠다. 나는 조금 다른 표현으로 다시 물었고 안전요원은 최선을 다해 내 말에 집중했다. 지구 상 모든 언어를 새겨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아!” 그는 밝게 웃었다.
‘코스 시작 지점 표지판에 파랑-> 빨강-> 회색 -> 검정 순으로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으며 막내 나이는 빨강 난이도까지만 가능하다. 처음이니 이쪽 파란색 코스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즐겼다. 4시간 가까운 시간이었다. 우리가 나무 위에서 스릴을 즐기는 동안 아래서 사진도 찍어주고 이리저리 산책을 하며 기다려준 아내와 딸에게 고맙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땀에 젖은 옷을 입고도 기분이 상쾌했다. 이미 월드컵 결승전은 시작되었고 둘째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이날 나는 내가 가고 싶었던 대부분의 미술관·박물관 리스트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우리만의 새로운 여행을 해야겠구나.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