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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채홍 Jun 14. 2020

매실 씻고, 통마늘 다듬으며 중2 아들과 나누는 대화



토요일 아침, 둘째 녀석과 마당에서 매실을 씻는다. 대야 두 개에 매실을 나누어 담고 호스를 끌어와 물을 붓는다. 매실이 물에 잠기면서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신선한 매실 냄새가 확 다가온다. 


- 아, 매실 냄새. 내내 모니터만 들여다보다가 이걸 보니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야. 

- 아빠, 이것 좀 봐.

- 오, 신기하다.


물과 매실이 서로를 밀어내면서 얇은 막을 만들어 냈다. 둘째는 재빨리 사진을 하나 찍고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열심히 손을 휘저어 매실을 씻고 소쿠리에 옮겨 담아 물을 뺀다. 그다음 다시 매실을 대야에 옮기고 물을 붓는다. 이렇게 세 번을 씻고 소쿠리에 담아 말렸다. 다 마르고 나면 이후 매실청 담그기 과정은 아내 몫이다. 



두 번째 일이 아직 남았다. 통마늘장아찌를 담그기 위한 첫 단계 작업. 마늘 다듬기다. 마당 그늘 쪽에 테이블을 펼치고 아빠와 중2 아들이 마주 앉아 마늘을 다듬는다. 자주색 껍질을 한 두 겹 남기면서 깨끗하게 벗겨내야 하므로 제법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통마늘 중 일부가 썩고 짓무른 녀석들 처리가 까다롭다. 둘째는 초등 6학년 정도부터 이런 유의 일손을 불평 없이 잘 도왔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런저런 집안일을 같이 해보면 일머리가 있고 재빠르다. 막내와 티격태격 싸울 때 보면 저 놈이 아직 어리구나 느끼지만 이럴 때 보면 든든하다. 깔끔하게 잘 벗겨낸 통마늘이 소쿠리에 가지런히 쌓이면서 반짝반짝 빛난다.



- 아빠, 오늘도 회사 나가?

- 응. 이따 엄마 오면 점심 먹고 나가려고.

- 오늘은 언제쯤 와?

- 아마 어제처럼. 10시쯤?

- …….

- (약간 조심스럽게) 왜, 아빠한테 무슨 할 말 있어?

- 아니, 그냥.

- 아빠가 일찍 들어왔으면 해?

- (멋쩍은 듯 웃으며) 아마도.

- (흐흐, 자식….)

- 내일도 나가?

- 응. 아빠가 일이 좀 밀렸어. 표지 2가지를 빨리 해결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 

- …….

- (뭔가 있군.) 아빠한테 혹시 부탁할 일 있어?

- 어···. 과제가 하나 있는데 아빠가 도와주면 빨리 할 수 있을 거 같아.

- 어, 그래? 어떤 건데?


그렇게 나중에 같이 과제를 살펴보기로 하고 마늘을 마저 다듬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다리를 다쳐 반깁스를 하고 소파에서 유유자적 유튜브를 시청하던 막내를 업어와 일을 시켰으나, 세 개 다듬고 투덜대더니 가버렸다. 결국 마당 뒷정리까지 둘째와 내가 다했다. 마당 정리를 마치자 운동발달센터에 갔던 아내와 딸이 돌아왔다.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다.


-아빠! 라면에 딴 거 넣지 말고, 스프만 넣고 끓이면 안 돼?


거실 소파에서 막내가 소리친다. 

안 된다. 아빠는 멸치 다시마 육수에 야채 곁들이지 않으면 라면이 식사가 되지 않는 사람이란다. 막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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