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일의 위안과 즐거움
일 때문에 디자인 자료를 뒤지다가 고무 판화로 이미지를 만들고, 그걸 토대로 만든 패키지 디자인을 보았다. 디자인도 인상적이었지만,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에 시선이 더 빨려 들어갔다. 넓은 창으로 한가득 빛이 들어오는 작업실. 앞치마를 두른 작업자가 조각도로 고무판을 파내고 있다. 오직 그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이 떠오르며 향수를 자극했다.
코로나를 피해 저마다의 동굴에서 웅크리고 있는 요즘. 나는 무언가 몸을 움직일 일이 필요했다. 더구나 집에는 학교 안 가는 학생이 셋이나 있다. 둘째와 막내를 꼬드겼다. 중학생은 No, 초등생은 Yes.
다용도로 쓸 수 있는 고무도장 만들기.
- 가장 먼저 허드레 나무를 자르고 깎고, 구멍을 내고 이어 붙여 손아귀에 쥘 수 있는 도장 모양을 만들었다. 도장의 지름은 약 5cm. 천연 오일도 덤으로 발랐다.
- 자기 이름 영문 이니셜 도안하기. 도안을 스캔하고, 이미지를 뒤집어 프린트해서 리놀륨 판화에 풀칠해서 붙이면 조각 준비 끝.
- 조각도로 조각하기. 가장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시간. 막내와 나 둘이서 초집중해서 조각했다. 멈춘 듯하면서도 흘러가는 신비로운 시간.
- EVA폼을 나무에 먼저 붙이고, 그 위에 판화를 붙여서 완성. 가죽·천용 본드를 썼더니 나무와 EVA폼, 리놀륨 판 등 서로 다른 재질도 잘 붙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잉크 부어서 쓰는 인주에 탁탁 두드려 잉크를 묻힌 다음 지그시 눌러 찍는다. 막내 것 MK가 역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결이 살아 있다. 도안은 내가 도와준 것이지만, 조각의 자연스러움은 막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으로 주말이 저물어 간다. 곧 저녁 준비할 시간. 우리 가족의 최애 주말 메뉴 ‘삼겹살 두루치기’ 요리는 내 몫이다. 조각칼을 내려놓고, 부엌칼을 들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