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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채홍 Jul 06. 2021

인포그래픽에 감성을 담으려면

컬러링 북 + 세밀화 도감, 특이한 조합의 웰컴 키트 디자인하기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자라는 나무들이 담긴 컬러링 북. 

아파트 단지에 심은 12종의 나무 세밀화가 담겨 있고, 그대로 따라 색칠할 수 있는 스케치가 포함돼 있다. 왼쪽 페이지는 달력처럼 만들어 다이어리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컬러링 북은 왜 만들었을까?


이 컬러링 북은 건설사에서 새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전하는 선물이다. 일종의 웰컴 키트라고 해야 할까? 건설사는 ‘우리는 이러이러한 좋은 나무들을 이러저러한 조경 원칙에 따라 친환경적으로 단지를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색연필로 그린 정감 있는 나무 세밀화로 대신했다. 다 자란 나무 모습을 그린 나무 수형樹形과 함께 생태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곁들여 나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나무가 아파트 단지 어디쯤에 사는지 위치를 표시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입주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제부터 내가 살 곳에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 어디쯤에 있는지 세밀화를 보며 자연스레 알 수 있다. 꽃과 열매 그림을 보며 계절에 따라 이곳 풍경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감성적인 정보 전달이다. 그림을 따라 그려볼 수 있고, 나무에 얽힌 이야기와 생태적 특징도 깨알 같이 담겼으니 컬러링 북에 세밀화 도감을 더한 격이다. ‘이 컬러링 북을 받는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으면 좋을까?’를 거듭 생각했다. 여러가지 정보가 도감처럼 구성된 디자인은 그런 상상을 통해서 나온 셈이다. 모르긴 해도 기획하고, 그림 그리고, 편집하고, 디자인 한 사람들의 애쓴 흔적을 받은 분들이 어떻게든 느끼지 않았을까.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있다. 이 디자인 작업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12종 나무를 한눈에 보고, 지도와 함께 찾아볼 수 있는 한 장의 리플릿’을 추가로 만들게 되었다. 나는 이 리플릿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 나무를 찾아보는 이가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헤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건설사에서 전해준 도면을 보며 나무와 그루 수 하나하나 정확히 표시하려 애썼다. ‘모름지기 인포그래픽이란 사실에 입각해야 하고, 정확하고 알기 쉬운 표현이어야 하는 법’ 이렇게 마음에 새기며 리플릿을 만들어 작업을 마무리했다.



*조금 긴 사족: 이 리플릿의 인포그래픽엔 디자이너의 비애가 하나 담겨 있다. 12종 나무에 12가지 색을 할당하고 지도에 12가지 색상을 크기가 다른 원으로 표시했다. 보는 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이며,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도 간편하고 깔끔하게 구성할 수 있다. 다만, 한 지도 안에서 12가지 색상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남성 5.9%, 여성 0.44% 정도가 하나 이상의 색각 이상(색맹, 색약 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의 6% 정도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결정적으로 우리 집 막내가 색약이다). 그리고 곧잘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색각 이상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빨강/녹색, 파랑/노랑과 같은 보색이 나란히 놓이면 시각적 잔상효과 때문에 재빨리 식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력이 나빠져 색이나 문자를 식별하는 능력도 점점 떨어진다. 공공영역의 정보나 사인을 디자인을 할 때는 반드시 이 지점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인포그래픽과 관련된 핵심적인 내용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포그래픽 가이드>를 참조하라. 디자이너와 편집자 모두에게 유용하다. 음. 어쨌든 완성된 리플릿을 우리 집 막내에게 보여주었더니 연한 색상에서 두 가지 정도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내 나름으로는 최대한 구별이 쉽도록 색상 선택과 명도 구분에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말이다. 


instagram.com/chaehong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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