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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 Apr 15. 2022

행복한 가정은 관심 없고, 불행한 가정은 돈이 된다

“결혼 이야기(2019)”를 보고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너무 자주 인용되어 클리셰가 되어 버린 일명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그러나 “결혼 이야기(2019)” 속의 이혼 변호사들에게는 그 어떤 가족의 불행도 별로 각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하다. 그들에게 “불행의 이유”란 단지 상대편을 물어뜯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득을 가져오는 데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파탄난 한 가정을 앞에 두고, 그들은 법정 공방에서 조금 더 우위를 점한 것을 곧 “이겼다”라고 표현한다.


찰리는 뉴욕에서 아내, 아들과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에 만족한다. 어느새 뉴욕에서 인정받는 연극 감독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나 니콜은 그저 그런 연극배우로서 남편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고, 더 많은 커리어적 기회가 있는 LA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니콜은 찰리가 자기중심적이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울분을 토하고, 찰리는 니콜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품고 자기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며 한탄한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오는 첨예한 갈등 속에서 찰리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은 어느새 뒷전이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을 맞이한 두 사람이 심리 상담의 일환으로 서로를 왜 사랑했는지에 대해 쓴 편지를 내레이션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까지 보면 “결혼 이야기”를 제목으로 하는 이 영화가 역설적이게도 이혼이라는 주제를 다룰 것이라고 꿈에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니콜과 찰리가 겪는 갈등은 곧 어느 오래된 커플이든 결국 겪게 되는 ‘결혼 이야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호르몬은 한 풀 꺾이고, 처음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어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관계의 불평등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 고비에서 두 사람은 진솔한 대화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심리 상담 등 관계 회복을 위한 절차를 거치는 대신 (사랑했던 이유에 대해 쓴 편지를 상대방에게 읽어주라는 상담사의 말에 니콜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서로 더 내로라하는 변호사를 대동해서 진흙탕 싸움을 하여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그 과정이 1%의 양육권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펼칠 만큼 두 사람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찰리는 우연히 니콜이 자신에 대해서  편지를 읽게 된다. 이혼한   시간이 지난 뒤임에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는 그의 모습은 법정 공방을 가장한 자존심 싸움에 사용한 돈과 에너지를 차라리 상담에 썼다면  사람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비단 부부 사이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갈등에 적용되는 안타까움이다. 찰리와 니콜의 사례를 보면 몰이해, 또는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가 그토록 증오하는 배신보다도  관계를 파멸시킨다. 배신은 용서할  있을지 몰라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함께 살아갈  없다. 서로를 헐뜯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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