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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 May 25. 202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영화 ‘이수(1961)-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나와 같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대부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누가 내게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한 내 견해는 양가적이다. 우선 플롯은 동명의 한국 드라마 이상으로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요즘 세상에는 흔해 빠진 삼각관계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분명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는데, 주인공을 (60년대 치고는) 독립적이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여성으로 설정한 것, 젊은 남성과 중년 여성의 로맨스를 다룬 것, 결혼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 등에서 60년대 서구에서 싹트기 시작한 페미니즘 사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그러했다.


‘브람스’라는 테마를 등장시킨 것 역시 재미있는 요소였다. 필립이 ‘작업 멘트’로서 “드뷔시를 좋아하세요?” 또는 “드가를 좋아하세요?”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브람스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멘토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평생 짝사랑했다. 클라라와 요하네스 브람스의 나이차는 14살로, 극 중 남녀 주인공의 나이차인 15살과 거의 같다. 폴라는 이토록 간단한 질문에도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오랜 연인인 로제를 사랑하기는 하는지 등 자신의 취향 또는 선호에 대해 생각해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폴라가 자신의 취향에 대해 평소 많은 고민을 해봤을지라도 프랑스인인 폴라에게 있어 이 질문은 분명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인이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브람스를 좋아한다고 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싫어한다고 하자니 교양이 없어 보일 것이라는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 팬들 사이의 유행어 중 “가을에는 브람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브람스의 많은 곡들 중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반복하여 변주/편곡되어 등장하는 교향곡 3번의 3악장이 가을의 쓸쓸함과 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이 영화에서 교향곡 3번 3악장 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브람스의 곡은 21년의 시간에 걸쳐 작곡된 교향곡 1번의 4악장뿐이다. 두 주인공이 연주회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에서 이 악장의 가장 유명한 부분인 ‘브람스의 환희의 송가’가 등장하는데, 브람스가 이 선율의 초고를 클라라에게 보내 클라라의 응원과 찬사, 그리고 조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의 첫 데이트에서 등장하는 ‘브람스 환희의 송가’의 희망참은 이 장면 이전과 이후에 반복되는 교향곡 3번 3악장의 우수(憂愁)와 크게 대비된다. 나는 이러한 배경음악의 구성이 주인공 폴라의 심경 및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필립과 교제하기 시작하며 폴라는 오랜만에 떨림과 희망을 느끼지만, 필립의 유치함과 무책임함, 그리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자신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반복되자 곧 처음의 설렘은 희미해져 가고, 다시 외로움이 그 자리를 채운다. 결국 전 연인 로제에게 돌아가 혼인신고까지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과 같이 그녀는 다시 홀로 남겨진다. 이렇게 수미상관의 기법을 사용하여 새드엔딩의 허무함을 증폭시킨 것 역시 맘에 드는 부분 중 하나였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같은 연도에 나왔지만 훨씬 큰 상업적인 성공을 얻은 작품인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 비해 크게 작품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강력하게 추천할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한 번쯤 봐도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이야기해두겠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역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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