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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 Jun 16. 2021

살아 있는다는 것

영화 ‘인생(To live, 活着, 1994)’을 보고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고,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되고,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된다.”


1950년대 후반, 중국 공산당 치하의 중국에서는 대약진 운동이 한창이었다. 생산성을 최대화한다는 명목 하에 곡식을 쪼아 먹는 주범인 참새 약 2억 마리를 잡아 죽였고, 집집마다 프라이팬, 냄비 등 식기를 포함하여 가지고 있는 철물이 있다면 모조리 모아서 국민당을 무찌르기 위한 무기를 만드는 데에 사용했다. 영화 ‘인생’에서 주인공 ‘푸구이’의 가족 역시 집에 있는 웍을 모조리 정부에 기증한다. 이렇게 푸구이의 마을에서 모아진 철물로 만들어진 ‘강철’은 어찌 된 일인지 모양도 삐뚤빼뚤하고 크기도 작은 것이 영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 촌장은 이것으로 대만을 장계석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하며 철 제련 프로젝트가 ‘대성공’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철 제련 과정을 실습하도록 하고, 이를 구역의 대표인 ‘구장’이 직접 참관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행여나 자신의 아들이 이러한 사회에서 뒤처질까 하는 마음에 푸구이는 아내 ‘자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날 늦게 잠에 들어 낮잠을 자고 있던 아들 ‘유칭’을 깨워 학교에 보낸다. 잠이 덜 깬 아들을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주며 푸구이는 첫 문단에서 인용된 말을 한다. 자신의 가족은 아직 병아리에 불과하지만, 노력하다 보면 소가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이 그토록 외치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중국에 그런 미래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유칭은 그러한 미래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 한 채 그 당일 날 죽음을 맞이한다. 구장의 실수로 그가 운전하던 차가 학교 울타리를 들이받았고, 부실한 울타리가 그대로 무너져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 뒷마당에서 자고 있던 유칭을 덮친 것이다. 실수로 유칭을 죽인 구장의 정체는 알고 보니 다름 아닌 푸구이의 전우 춘생이었다.




중국의 1960-70년대는 문화대혁명의 시대였다.  시기에는 문학가, 대학 교수, 예술인  ‘지식분자라고 여겨지는 계층의 모든 사람은 ‘ 사회주의자 규정되었다. 붉은 것을 수호하는 병사라는 의미에서 자신들을 ‘홍위병이라고 부르는 어린 학생들은 지식분자를 색출하여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고문하고, 이들을 ‘외양간(수용소)’ 가두어 두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 현대사상 가장 뛰어난 작가   명인 ‘라오서 문화대혁명  자신의 제자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인 모욕을 당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유명하다. 1968, 라오서는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뻔하였지만, 망자에게는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노벨상의 원칙에 의해 자살  수상이 취소되었다. 결국 2012년에 ‘모옌이라는 작가가 중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그는 친정부 성향이 강한 작가로 유명하다. 중국의  다른 유력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영화의 원작 소설의 작가인 ‘위화이다.


푸구이의 딸 ‘펑샤’가 아이를 낳기 위해 입원한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간호학교에 재학 중인 홍위병들이 의사 행세를 하고 있었다. 기존의 의사들은 모두 ‘소 우리’에 갇힌 뒤였다. 푸구이와 자전은 어린 의사들이 영 못 미더운 것인지 사위에게 연륜이 좀 있는 의사를 데려와달라고 부탁한다. 공산당 간부급인 사위는 ‘소 우리’에서 문화대혁명 전까지만 해도 유명한 산부인과 교수였던 ‘왕빈’을 몰래 빼온다. 그러나 왕 교수는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한 상태인지라 펑샤를 진료하기는 무리여 보였고, 이런 왕 교수를 위해 푸구이는 찐빵을 사다 준다. 왕 교수의 도움 없이도 펑샤는 별 탈 없이 아이를 출산한 것 같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과다출혈로 쇼크 상태에 빠진다. 어린 홍위병 의사들은 자신들은 학생이라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당황하였고, 푸구이는 그런 그들에게 왕 교수를 데려와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자 왕 교수를 ‘반혁명주의자’라며 병원에서 내쫓은 홍위병들은 이렇게 소리친다.


“네, 왕 교수님은 분명히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왕 교수님은 교수님이시니까요!”


그러나 왕 교수는 많은 양의 찐빵을 너무 급히 먹은 나머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펑샤는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이렇게 황당하고도 비극적이게 두 자식을 떠나보내기 전, 신중국 성립 전의 푸구이는 지극히 평범한 한 남성에 불과했다. 젊은 시절 그는 도박을 즐기다 전 재산을 날린 몰락한 ‘도련님’이었고, 나중에는 철이 들어서 “처자식만큼 좋은 건 없다”라고 말하는 가장이었다. 재산을 잃은 뒤 그는 전통 그림자극 공연을 통해 삶을 영위해나갔지만, 어느 날 돌연 국민당의 군인들이 칼로 그림자극에 사용되는 장막을 찢어 버리며 그의 삶이 뒤바뀐다. 장막이 찢어지며 푸구이의 눈 앞에 총칼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이는 바로 전 장면까지 전통적이기만 하였던 중국의 모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암시일 것이다. 푸구이는 그 자리에서 군인으로 징집되어 강제로 집을 떠나게 되고, 국공내전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인형극 도구가 든 궤짝만큼은 자신의 밥줄이라며 꼭 챙겨 다닌다. 그러나 신중국 성립 후 공산주의 사회가 된 중국에서 그의 ‘밥줄’은 무용지물이다. 이후 문화대혁명 때 인형극 도구들은 모두 ‘반혁명적’인 것으로 여겨져 태워졌고, 그에게는 빈 궤짝만이 남는다.


도박판에서 푸구이의 재산을 빼앗아 간 룽얼은 새로운시대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지주’라고 못 박혀 총살당하지만, 푸구이는 전화위복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인정받아 살아남는다. 룽얼의 죽음을 목격한 푸구이는 사색이 되어 자전에게 말한다. “만약에 우리 집이 룽얼한테 넘어가지 않았으면, 총알 다섯 발은 룽얼이 아닌 내가 맞았을 것 아니야? 우리 집의 신분은 뭐지? 지주는 아니겠지? 빨리 생각해봐!”


푸구이와 자전에게 그들이 지주인지, 자본가인지, 프롤레타리아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처형당하지 않고, 딸, 아들을 키우며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펑샤의 결혼식 날 펑샤가 군복을 입고 결혼했다는 사실도, 가족 모두가 모택동 어록을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는 사실도, 마을 사람들이 축가로 모택동 찬양가를 불러주었다는 사실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펑샤의 결혼을 축하해주었고, 펑샤가 고생 끝에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격동의 시대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나갈’ 여지는 없다. 잠이 부족한 아이를 학교에 보낼지 집에서 쉬게 둘지, 출산을 앞둔 딸이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도록 할지, 심지어는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자신들의 삶에 관련해서 손을 쓸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이 영화와 동명 소설의 중국어 원제 ‘活着(huozhe, To Live)’는 한국어로 ‘인생’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에서는 ‘살아 있는 것’이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다. 영화의 배경인 194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의 중국인들에게 인생이란 주체적으로 살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지는 그런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말미에서 푸구이와 자전은 외손자 ‘만토우(중국어로 찐빵)’와 함께 아들, 딸의 묘소를 찾는다.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조른 것인지 만토우는 병아리 여러 마리가 담긴 박스를 조심스레 들고 있다. 병아리를 어디서 키우는 게 좋겠냐는 아이의 물음에 푸구이는 박스보다는 이것이 더 크다며 자신이 인형극 도구들을 넣고 다니던 궤짝을 내준다. 아이가 묻는다.


“할아버지, 병아리가 크면 뭐가 돼요?”


푸구이가 답한다.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지.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된단다.”


아이는 또 묻는다.


“그럼 소가 자라면요?”


이번에는 자전이 답한다.


“소가 자랄 때가 되면, 우리 만토우도 다 자라서 소를 타고 다니겠네.”


그러자 푸구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니지. 우리 만토우가 다 클 때쯤이면, 더 이상 소를 타고 다니지 않을 거야. 만토우는 기차랑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될 거야.”


이 영화가 제작된 1994년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지 약 20년 뒤이다. 영화가 끝날 때 즈음 모택동의 초상화는 모두 빛을 바란 것으로 연출되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또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국인들은 푸구이가 말한 것처럼 더 이상 소를 타고 다니지 않고 기차와 비행기를 탄다. 심지어는 우주선을 띄워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칸 영화제에서까지 인정을 받은 이 영화가 중국의 극장에서는 단 한 번도 상영된 적이 없는 현재의 중국의 모습이 푸구이가 만토우를 위해 그리던 중국의 미래였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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