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기록 30.
<해외법인 사업전략 업무를 제대로 하고 싶다, 리더십 역량을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브라질 주재원 생활은 꽉 찬 39주의 여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39주는 짧은 시간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한 생명을 잉태해 세상으로 내어놓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채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뭘 제대로 해보기나 했겠어,라고 가볍게 얘기하지만 객관적 지표를 기준으로 나는 지난 9개월 간 아래 3가지 부문에서 법인의 시스템을 정립하기 위해 초기 기획 단계부터 TFT 리드까지 주도적으로 추진하여 안정화까지 이끌었다.
1. 영업-생산-구매 3개 핵심 부서의 연간 포캐스트 수립/관리 시스템 정착
: 이를 통해 포캐스트 양식 구축부터 3개 부서 간 정기 회의를 통한 관리까지 A to Z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2. 구매 PO 발행 정기화 통한 적시 안전 재고 확보 및 내부 전결규정 수립
: 수시 PO 발행 문화로 적시 원부자재 확보는 물론 계획 생산 및 영업에도 난항이 있었던 법인의 기존 매입 체제를 분기 단위로 정기화 하여 안정화시켰다. 또한, 매입 프로세스에 대한 내부 전결규정 세팅을 제안 및 추진하여 PO 발행 시 빈번하게 발생하던 오류를 0% 대로 수렴시켰다.
3. 악성 재고자산의 영업 전략적 처분 시스템 정립
: 기존의 악성 재고 자산관리는 비정기적으로 드물게 진행되어 실제 악성 재고 감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를 월 단위로 정기화하고, 잔여 유효기간 10개월 미만의 모든 원부자재, 반제품, 완제품에 대한 관리로 확대하여 악성 재고 자산의 규모가 폐기 없이 기존 대비 30% 감소하였다.
물론 영업 디렉터로써도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유행성 질환 제품 매출에 의존적인 영업부 마인드 셋을 전환하기 위해 1분기를 오롯이 투자한 결과, 비유행성 질환 제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2% 성장하였다. 물론 이것이 감염성 질환 유행 급감으로 인한 전체 매출액 감소를 완전히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영업부 구성원들이 예전처럼 ‘신의 뜻대로’ 스탠스로 시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고객 수요에 대한 이해와 전략적 접근방식으로 자신의 역량을 실적에 적극 녹여내는 계기가 되었다.
리더십 역량 개발의 경우 인상적인 경험과 성과가 기억에 남는다. 팀 리드 역할을 할 때도 많아야 2-3명의 팀원을 관리/감독한 게 다였던 터라 마흔 명이 넘는 커머셜 조직을 책임지는 디렉터가 되었을 때 걱정이 많았다. 특히 타인에 대한 감정적 이해와 공감능력 부족으로 이미 한국에서 리더로서 실패를 경험했던 나로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브라질 구성원들을 어떻게 하면 오해 없이 잘 이해하고 자연스레 그들 속에 녹아들어 가 조직을 이끌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평균 연령대는 40대 중후반, 총 업력 또한 디렉터를 웃도는 케이스가 많은 직원들로 구성된 영업부는 그만큼 신규 디렉터, 신규 체제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전략은 “경청, 그리고 해결사 되기”였다.
어차피 브라질 시장에 대해 내가 실무자들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면, 잘 아는 사람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그룹 차원의 전지적 시각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전방위적 해결책을 찾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고, 법인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역량이었다. 직원들이 전해주는 시장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는 철저히 데이터 기반으로 하되, 수시로 현지 법인장과 논의하면서 정확한 정보 흡수에 도움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본사에 요구할 건 하고, 법인의 고질 문제였던 shortage issue를 해결하면서 영업부에 실적을 푸쉬하기도 하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틈새시장의 경우 맞춤형 기획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구성원들이 거부감 없이 디렉터의 의도를 수용하고 한 뜻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였는데, 실무에 다양한 코칭 대화 모델을 적용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브라질 파견이 결정되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전문 코치님과 함께 하는 개인 리더십 코칭 세션이었던 것만큼, 코칭형 리더가 되는 것에 진심이었던 나는 코칭 대화를 통해 실무자들이 변화를 꺼리지 않고 발전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구성원들을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고 개개인의 유니크한 잠재력이 있다는 전제로 바라보고, 그것을 개발하여 업무에 긍정적 방향으로 녹여내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대하니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고 기꺼이 함께 움직여줬다. 이 인상적인 경험이 내게 직장 생활의 두 번째 챕터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근무일을 앞두니 나를 디렉터로 인정하고 빠르게 받아들여준 구성원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스스로 리더 역할에 맞지 않고 역량도 되지 않는다고 자평했던 내게, 브라질법인 구성원들과 동고동락하며 형성한 깊은 유대감과 신의는 나도 어쩌면 괜찮은 리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이 감정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어떤 시작점이 되었다.
헬스케어 산업에 몸 담은지 14년.
그중에서도 의료기기 시장에서의 업력이 꽉 채운 만 10년이 되는 2025년 5월 마지막 날, 나는 직장 생활의 첫 번째 챕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모든 여정에서 나의 의도가 아닌 것은 없었지만, 내게 주어진 기회들은 내 실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게 희로애락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6월부터 시작될 두 번째 챕터에서는 또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약간은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이지만, 지금 이 새로운 시작은 분명 다음 10년을 결정지을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 또 다른 Scene에서 만날 그날까지, So 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