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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Jun 22. 2023

D+2. 새벽의 나짱

나짱을 둘러싼 모험 ep3. 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나짱을 둘러싼 모험 ep1. 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실감할 수 있었다.

     

짐을 찾으러 가는 길,

고무벨트 바로 뒤에 유심을 파는 직원들이 쭉 서 있다.     


유심엘티이팔딸라~     


좌우로 서너 군데의 가게에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새벽 2시에 대단.     


사실 우리에겐 잔돈이 필요했다.

베나자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31달러를 준비하라는 신신당부성 공지를 본 지라,

새벽에 이국에 도착한 우린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었다.

(근데 왜 31달러냐. 30달러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이유가 있겠지.)     


베트남 돈을 찾아오긴 했지만,

달러는 50달러 짜리라 깨야했다.     


원래 유심은 나짱 시내 한인 가게에서 구입하려고 했다.

마사지도 받고 유심도 받으면 좋잖아,라는 생각.

그런데 한인 가게 유심 광고 문구가 좀 치사해 보였다.

현지에서 구매한 유심은 불량이 많다는?

물론 확실한 게 좋겠지만설마 싶었다.

무슨 암거래 시장에서 거래하는 물건도 아니고,

공항 유심이 불량이라고?

(나는 기본적으로 남이 시키는 일에 삐딱한 성격이다)     


결국 잔돈을 향한 니즈와 삐딱한 나의 심성이 맞물려 공항에서 유심을 구매하기로 했다.

그리고 불량이라도 고작 8달러잖아!    

 

M에게 짐을 기다려달라고 하고유심 가게로 향했다.

호객 행위를 하던 직원들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엘티이빨라~ 8달러~     


나의 시선은 1루에 출루해서 기회를 엿보는 주자의 시선처럼 유심 판매소를 훑었다.


대체로 유심을 팔면서 환전까지 해주는 모양이었다.     

우선 가격은 8달러로 동일한 것 같았다.

하긴 옆 가게끼리 가격 출혈 경쟁을 하긴 좀 그럴 테니.

이런 한정된 시장에선 담합이 효과적일 게다.    

 

한번 시선을 던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중앙보다는 구석으로 향했다.     


특히 가장 끝 가게에선 베트남 정통 의상인 치파오를 입은 여성들이 호소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의상까지 갖춰 입고 뭔가 준비가 돼 있잖아이유를 대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기왕이면 칙칙한 아저씨들보단 젊은 아가씨에게 구매하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유심에 관심을 가지자판매원 아가씨는 바로 손을 내밀어 나에게 폰을 요구했다.

검사하려는 건가.


하지만 그녀는 바로 능숙한 손길로 클립을 들더니 내 폰의 유심을 제거했다.

어어그냥 바로 하는 거야?

그녀는 시크한 표정으로 나에게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손으로는 유심 작업을 하면서 입으로는 다른 손님들에게 유심 8딸라를 외치고 있었다.

이어서 내 폰의 유심을 바꿔 끼우더니 데이터가 되는 걸 확인했다.

실로 손 빠른 솜씨였다!     


어느새 내 뒤에 다가온 M도 관심을 보였다.

보름간을 와이파이로 버티겠다는 M을 설득해 결국 유심 두 개를 구입했다.     


우리 뒤에 나온 다른 승객들도 슬금슬금 우리가 구입한 판매소로 몰렸다.

본의 아니게 바람잡이를 한 셈이다.     

유심을 끼우니 마음이 편해졌다거스름돈도 손에 쥐었고.

그래도 한정된 데이터가 있다고 하니 아껴 써야지.

인터넷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멈췄다.

 

고무벨트가 돌기 시작하고 우리 체크무늬 가방도 보였다.

드디어 가방을 들고 게이트 통과.     


새벽의 나짱 공항은 한산했다.

몇몇 현지인들이 종이에 찾는 사람의 이름을 써서 들고 있었다.

설마 우리 이름은 없으려나기대했지만 당연히 우리 이름은 없었다.     


안내를 받았던 걸 떠올렸다.     

이번 여행에서 자주 등장할 베나자는 위대하다.

특히 카톡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점이 든든하다.

이번 픽업 서비스도 카톡으로 안내를 받았다.

덕분에 바로 카톡을 열고 안내 메시지를 열었다.     


공항 게이트를 나와서오른쪽을 보고조금 걸어가면 베나자라고 쓴 간판이


있었다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국에서 수없이 봤던 바로 그 로고다.

이국의 공항에서 느끼던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막상 간판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간 걸까그래도 도착 시간이 있을 텐데.


그때 시간이 새벽 2시 30.

M과 별은 바로 앞 벤치에 서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도착한 사람 중 일부가 택시기사와 흥정을 시작했다.     

보안은 내 담당이다.

결국 그 앞에서 5분 정도 기다리다 카톡을 보내고 말았다.     


저기지금 간판 앞인데 아무도 안 계신데요.     


새벽에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게 미안했다.

그 또한 밥벌이를 하는 누군가 일 텐데.     

그리고 거짓말처럼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현지 직원이 나타났다.


좀 기다리시면 금방 옵니다.


이어서 카톡의 답도 왔다.

로고 앞에서 기다리라는 메시지.     

새벽에 괜히 보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뭐정말 사람이 없었으니까.     


잠시 후 차가 도착했다.

승용차보단 조금 커다란 크기의 차였다.

투싼 보다는 쏘렌토 정도의 크기일까.

  

운전사 옆에 아까 로고 앞에서 있던 직원도 앉았다.

아마 우리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한 50분 정도 걸린다는 안내문이 생각났다.


직원에게 다시 한번 우리 목적지를 말했다.

참파 아일랜드.

직원은 오케이하더니 곧 우리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운전사와 대화를 시작했다.     


새벽의 나짱은 한산했다.

이렇게 한산해도 되는 거야설마 별 일은 안 생기겠지.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베나자라는 익숙한 브랜드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창 밖으로 리조트가 나타났다.

두호모 리조트도 보였다풀보드 서비스

숙박을 하면 음식과 술까지 무료러시안들이 많다고 들은 곳.

좀 일찍 알았다면 예약을 고민했을 곳이다.


공항과 가까운 곳에 몰려 있는 리조트촌을 지나자 다시 어두운 도로로 이어졌다.

구불구불 차가 해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차선이지만 중앙선을 밟고 달렸다.


옆에선 이미 별이 잠들었고, M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팔자도 좋네.


난 잠들 수 없었다.

불안감도 있었고새벽의 나짱을 눈에 담고 싶었다.     


한참 달리니 앞에 다른 차가 들어왔다.

그렇게 앞 차를 쫓는 형상이 됐다.

앞 차는 꽤 천천히 달렸다추월하긴 아슬아슬했다.

설마 심야의 드리프트를 하진 않겠지.

다행히 드라이버도 추월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요좀 늦더라도 안전하게 가요.     


그렇게 달리다 보니 드디어 시내가 나타났다.

차가 많아지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현지인들이 나타났다.     

안심이 되면서흥분됐다.

이 새벽에조금 감동도 느꼈다.


시계는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떤 아줌마가 오토바이 뒤에 커다란 짐을 싣고 무표정하게 달리고 있었다.

장사를 준비하러 가는지도 모르겠다.     


네온사인들을 보면서 위치를 가늠하려고 했다.

이미 구글 맵을 통해서 수없이 봤던 거리를 기억하려고 했다.

여기가 거긴가.

폰을 꺼내진 않고 대충 위치를 짐작했다. 

    

드디어 멀리 참파 아일랜드 리조트 앤 스파의 간판이 보였다.     


누군가의 평가처럼 정말 커다란 리조트였다섬 전체가 리조트다.


메인 로비에서 내렸다.

비로소 잠에서 깬 M이 봉투에서 돈을 꺼내 건넸다.

팁을 못 드려 미안했지만픽업  직원과 운전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출발했다.

아주 늦은 시간의 퇴근.

집에서 편히 쉬시길.    

 

메인로비에 들어서니 꾸벅꾸벅 졸던 직원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새벽 4시를 넘은 시간직원에게 미안했다.

우리 여권을 요구하더니 복사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묵을 곳은 다른 건물이라며 잠시 기다리라더니 버기카를 끌고 왔다.

버기카에 짐을 싣고 앉았다.

출발하니 바람이 머리를 흩날렸다.

별이 가장 좋아하던 버기카 첫 탑승이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쿠베라.

참파에서 가장 평이 좋은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쿠베라 로비에서 잠이 덜 깬 직원이 부스럭 일어났다.

우리 여권을 받더니 방키를 건네줬다.

짐을 끌어주려고 하길래노 땡스.

직원도 알겠다면서 사라졌다.     


우리가 묵을 곳은 4.

키를 넣고 문을 열었다.

방이 두 개네.

버기카를 탈 때부터 잠이 깨있던 별이 갑자기 신이 난지 침대에서 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M과 각방을 쓰게 됐다.


피로가 밀려왔다.     

대충 정리를 하고 혼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정신이 몽롱해졌다여기가 정말 베트남인가실감이 나지 않았다.     

창 밖을 보니 바로 앞은 강인 것 같았다.

부지런한 배 몇 척이 통통거리면서 새벽을 열고 있었다.


시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의 오늘은 이제 끝인데다른 누군가는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결됐다는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 마산으로 출장을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한잔 걸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새벽의 어시장,

하지만 부지런한 상인들은 이미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시간.

그 모습은 좀 거룩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물론 그들에겐 일상이었겠지만.     


잠시 배 소리를 듣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졌다.


우리 방에서 보이는 참파 아일랜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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