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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 Oct 26. 2023

아...피오나...T발 C야?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를 읽고

벼르고 벼르던 이안 매큐언을  드디어 만났다. 그가 작품으로 내게 남긴 첫인상은 고급스러움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상태를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묘사한 점이 특히 그렇다. 여유가 좀 있었더라면 한곡 한곡 찾아 들으며 작품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넷플릭스에 영화 있다던데 음악까지 녹였을지 모르니 '문학살롱의 밤'이 오기 전에 그거라도 꼭 봐야지.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뭣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동법(1989) 제1조 (a)항


표지를 들추자마자 위 법조항을 본 난 이 작품이 아동 복지에 연관된 특정 재판 중심으로 경과를 따라가는 구성일 거라 짐작했다. 이언 매큐언이 그렇게 뻔한 작가일 리 없건만.


작품은 성공한 판사인 주인공 피오나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개 축이 있다. 하나는 법이 아이들의 복지를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작용한 여러 사례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이라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소년 애덤 사건 포함)이고,  다른 하나는 35년간의 결혼생활에 위기를 맞이한 피오나와 남편 잭인데 난 후자에 많이 몰입했었다.


이야기는 쉰아홉 살의 남편 잭이  "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라며 감히 '외도 예고'를 시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포주의


잭... 첨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좀 안쓰럽다. 알고 보니 그가 원한 건 외도가 아니었다. 피오나가 그를 남자로 봐주길 바랐을 뿐.


솔직히 사회적인 체면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존경받는 판사일 수 있다면,

구설수에 오르내릴 일이 없다면,

잭이 없어도 될 것 같은 피오나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는다. 그래야 할 때 도리어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한다.  어차피 일밖에 모르는 아내의 관심 밖에서 바람피우는 게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웠을 텐데 '굳~~~ 이' 경고를 하는 남편의 속내에 무심하다. 자신의 상처만 보고, 배신감에서 벗어나는 데만 전념하는 피오나를 보며 차리리 잭을 놔주기 바란 건 나뿐일까.


"일을 해야 했다.
개인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했다."



개소리다. 모친상을 당하고도 mc로서 녹화 중이라 당장 가보지 못했다며 눈물 흘리는 연예인에게 프로의식이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줘선 안 된다. 그런 안타까운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가 되어주어야 한다.


생각할수록 맴찢인 애덤도 마찬가지다. 난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 생각지 않는다. 아이의 복지를 위한답시고 판사로서 애덤을 구했던 피오나는 성공한 판사로 남기 위해 애덤을 죽였다. 애덤은 자살한 것이라던 잭... 전말을 알고 나면 애덤에게서 자신이 보이지 않을는지..


>> 책사가 한 말

일만 잘하면 뭐 하냐 싶다가도 애덤도 잭도 피오나의 이성적 면모를 좋아한 것 같아서 씁쓸하네...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많은 부분 부모의 성정, 세계관, 종교, 생활환경 등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부모가 보여주지 않는 세계는 거의 모른 채 성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대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또 그런 부모가 되는 현실, 그리고 전통사회처럼 공동체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불가능해진 현실 속에서 법은 어쩌면 어린이의 자유와 복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법정의 의무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원하는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잃은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현대식의 체면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것은 플로베르와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경멸이나 배척이 아니라 그저 동정은 아닌지. 모두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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