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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린제인 Jul 31. 2024

일렉트로닉, 생각과 감각의 경계를 허물다

2022 MUTEK JP 뮤텍 도쿄에서 만난 17인의 아티스트들

  시간은 평평한 모래사장이다. 어느 한 곳에 빈 구덩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모래를 쌓아 올려야 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모래 알갱이와 바닷물이 뒤섞여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모든 것이 덮인 표면, 뒤돌아보면 시간은 그런 식으로 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2022년 12월, 도쿄에서 보내는 나흘 간의 시간을 위해 다른 날들을 묵직하게 보냈다. 금요일 오전 8시에 떠나는 비행기라 전날 퇴근 후 마감 작업을 하고 짐을 다 챙기고 나니 새벽 2시. 세 시간 후에 다시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고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절해 잠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고 피곤하게 일본행을 강행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해 12월이 될 때까지 휴가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잘 참아왔었고, 단순한 휴가가 아닌 독특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연인에게서 도쿄 시부야에서 12월 7일(수)부터 12일(일)까지 5일간 열리는 뮤텍(MUTEK) 소식을 알게 됐다. 뮤텍은 음향, 음악, 시청각 예술 분야 등 다양한 디지털 창작 활동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멕시코시티, 부에노스 아이레스, 바르셀로나, 도쿄 등의 도시에서 매년 5~6일간 열리는 음악 예술 축제다. 지금까지는 '공연을 보러 간다'라고 하면 특정 인물이나 그룹의 팬이라서 간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정 장르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경험해 보고 싶은 이유로 해외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어릴 적 들었던 클래식 음악의 깊은 울림과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주는 여운, 재즈 선율과 디스코 힙합 알앤비 장르에서 느끼는 리듬과 소울, 밑바닥의 슬픔과 극강의 환희까지 '일렉트로닉'은 지금껏 내가 음악에서 느꼈던 다양한 스펙트럼 모두를 껴안고 있다. 그렇기에 낯선 이 장르가 자꾸 더 궁금해지는 마음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미리 두 달간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 있던 연인과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재회했다.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지하철역이라는 타이틀답게 인파에 휩쓸리며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는 연인에게로 흘러갔다.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금요일 공연이 열리는 시부야 스트림 홀(Shibuya Stream Hall)로 향했다. 숙소가 있는 도미가야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어 산책 삼아 걷기에도 충분한 거리였다. 코로나 여파로 마스크가 미덕인 시절이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지나가는 이들의 눈동자에서 이미 금요일 밤의 열기가 완연했다.


  뮤텍은 개최 기간 내내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기업 혹은 대학과 협력하여 워크숍, 디지털 랩, 콘퍼런스, 전시, 공연 등이 다양한 장소에서 함께 열린다. 2022년 열린 뮤텍 도쿄에서는 12월 8일(목) ~ 9일(금) 이틀간 "호기심과 창의성에 대한 담론", "몰입형 상호교감형 예술 형태의 국제적 부상", "디지털 예술-연구-비즈니스 간 무경계 크로스 오버", "시청각 예술에 사용되는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분야", "Web3 안에서 창의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방법", "도시 개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부야" 등 다양하고 심층적인 주제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화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은 콘퍼런스들도 많았다.


  시부야 스트림 홀에는 공연뿐만 아니라 목-금 양일간 오직 4시간씩만 공개되는 VR 전시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입구 근처에 있는 각 부스에서 캐나다, 미국, 일본, 프랑스 아티스트들이 확장 현실(XR, eXtended Reality) 기술을 활용하여 창조한 작품 5편을 감상할 수 있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완벽하게 작품 세계 안에 머물 수 있는 관객 몰입형 전시(이머시브 아트, Immersive Art)였다. 시간 관계상 두 편 밖에 보지 못했지만, 본 공연 앞부분을 놓치면서까지 무리해서 본 <-22.7℃>의 잔상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22.7℃ / Molécule, Jan Kounen


  '노마딕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 프로듀서 몰레큘(Molécule)이 북극의 소리를 포착하기 위해 36일 동안 감독 얀 코넨(Jan Kounen)과 함께 그린란드로 떠난 모험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작은 배를 타고 유유히 북극해를 유영하다가 별안간 지구 표면 아래로 떨어지고, 노을이 지는 그린란드에서 별이 빛나는 우주로 서서히 떠오르는 경험은 VR이 아니라면 현실에서 실감하기 어렵다. 엔딩씬에서 별에 휘감긴 채 듣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트랙은 2018년에 발매된 동명의 앨범 중 "Sila"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아래 Sila 뮤직비디오와 짧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비하인드 씬, 그리고 감독과 프로듀서 두 사람이 같이 출연한 1시간짜리 인터뷰 영상을 준비했다. 자동 번역 기능이 조금은 어색하더라도 생생한 작업기를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MOLÉCULE - Sila (Official Video)


MOLÉCULE - Behind "-22.7℃" (Short Documentary)


Master Class Molécule x Jan Kounen (Le Forum des Images)



12월 9일(금) 18:30 ~ 18:55 / Myriam Boucher


  깊은 앰비언트 분위기로 금요일 뮤텍의 막이 올랐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작곡가 겸 비디오 사운드 아티스트 미리암 부쉐(Myriam Boucher)는 영상과 소리를 결합해 다양한 형태로 작업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처럼 부쉐의 작업 또한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모른다. 자연과 인간이 이루는 관계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그녀는 이번에 도쿄에서 "Littoral(연안)"이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해안 침식, 열팽창, 기후 변화 등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통합하여 해수면 상승과 관련된 개념을 오브제와 조명, 물, 현장 녹음 등을 활용해 라이브로 풀어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무대 안에서 세밀한 사운드로 언어 없는 탐구 일지를 선보였다. 피에르-뤽 르쿠르(Pierre-Luc Lecours)와 함께 2020년에 공연한 "Fragments"를 소개한다. 거대한 자연의 조각들을 조금씩 더듬어 음악과 영상으로 풀어낸 작업이다.


"Frangments" by Myriam Boucher & Fierre-Luc Lecours



12월 9일(금) 19:15 ~ 20:00 / France Jobin & Markus Heckmann


  캐나다 몬트리올의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사운드 설치 예술가 프랑스 조빈(France Jobin)의 오디오 아트는 '사운드 조각품(Sound-Sculpture)'라고 불린다. 1958년생인 조빈은 90년대 중반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다양한 건축을 닮은 세심한 시청각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독일과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테크니컬 디렉터인 마르쿠스 헤크만(Markus Heckmann)은 컴퓨터 그래픽의 미적 측면과 빛의 물리적인 형태를 결합한 작업을 추구한다. 그는 아티스트를 위한 영상 설치 작업, 키네틱라이츠(KineticLights) 애플리케이션 제작, 테크노 이벤트 내 시각 효과 작업 등도 겸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두 사람은 이번 뮤텍 도쿄를 통해 양자 물리학과 양자 장 이론의 개념과 속성에서 영감을 얻은 과학적 연구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프로젝트 <Entanglement(얽힘)>을 선보였다. 아래 영상으로 작품의 일부를 소개한다. 영화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우리에게 친숙해진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상상하면 작품이 훨씬 쉽게 와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Entanglement" by France Jobin & Markus Heckmann



12월 9일(금) 20:15 ~ 20:50 / YOSHIROTTEN & TAKAKAHN feat. Baku Hashimoto


  도쿄의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아트 디렉터인 요시로텐(YOSHIROTTEN)은 영상, 3D 작업, 설치, 음악, 패션 브랜드, 광고, 상업 공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바쿠 하시모토(Baku Hashimoto)는 도쿄의 비디오 디렉터, 비주얼 아티스트 및 개발자로 스톱모션, 생성 예술(generative art)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시각 예술 형식을 탐구하고 있다. 뮤텍 도쿄에서 요시로텐은 음악 프로젝트 YATT의 파트너인 타카칸(TAKAKAHN)과 함께 "FUTURE NATURE"라는 이름의 그래픽 풍경을 그려냈다. YATT 유튜브 채널에서 이날의 전체 공연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35분간 디저털로 형상화된 새로운 지구를 탐험해 보자. 패션과 광고 분야에서 활동하는 요시로텐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과 이에 걸맞은 타카칸의 사운드가 감명 깊었다.


MUTEK - YOSHIROTTEN and TAKAKAHN feat. Baku Hashimoto



12월 9일(금) 21:05 ~ 21:50 / Kopy & VJ BunBun


  밝은 색조와 울트라 텍스처, 비트 맞춤형 홀로그래픽 스타일로 대표되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VJ 분분(VJ BunBun)의 작업은 30개 이상의 국제 페스티벌 및 콘퍼런스에서 상영된 바 있다. 그녀는 현재 수백 명의 유명 아티스트와 다양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여성 밴드 워터파이(Water Fai)에서 수년간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오사카 출신의 코피(KOPY)는 2015년 솔로 프로젝트로 데뷔한 뒤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공연하며 활동을 펼치고 있다. KOPY가 생성하는 리듬은 다소 난해했지만 그녀만의 개성 있는 무대와 VJ BunBun의 감각적인 비주얼을 마음껏 즐겼다.



12월 9일(금) 22:05 ~ 23:00 / Mars89 & HEXPIXELS


  금요일 공연의 피날레는 돌연변이 리듬으로 공상과학 속 디스토피아를 특출 나게 그려내는 도쿄의 마스89(Mars89)와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비디오 아티스트 듀오 헥스픽셀스(HEXPIXELS)의 무대로 채워졌다. 가장 기대했던 공연이기도 했다. 도쿄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서킷씬에서도 유망주로 손꼽히는 Mars89의 기괴한 사운드는 HEXPIXELS가 창조한 상상력과 결합해 <Goliath Sound System(골리앗 사운드 시스템)>이라는 우주를 즉흥적으로 풀어냈다. 이 공연을 체험하는 동안 외계 도시로 변한 도쿄의 낯선 밤거리를 배회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래에 '보일러룸' 채널에서 선보인 Mars89의 공연을 덧붙인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계로 마음껏 뛰어들고 싶은 순간, 그의 음악이 훌륭한 필터가 되어줄 것이다.


Mars89 / Boiler Room Tokyo






  12월 10일 토요일 공연은 대규모 공연장으로 유명한 시부야의 스포티파이 오 이스트(Spotify O-EAST)에서 <녹턴 1(Nocturne 1)>이라는 타이틀로 펼쳐졌다. 유흥과 클럽 문화가 밀집한 도겐자카 거리. 이른 저녁이었지만 거리는 이미 걸쭉하게 취한 이들의 즐거운 고성으로 가득했다. 이날 공연은 알코올과 함께해도 괜찮아서 편의점에서 일본 증류주 한 병에 탄산수를 섞어 텀블러 안에 즉석 하이볼을 만들었다. 하지만 돌아서기 무섭게 텀블러에서 자꾸만 새어 나오는 탄산수 가스. 칙! 칙! 칙! 손으로 막고 입으로 막아도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하이볼에 당황해 웃음이 터졌다. 이 광경에 지나가던 이들도 다들 웃음을 쏟아냈다.



12월 10일(토) 19:50 ~ 20:30 / Mieko Suzuki & Claudia Rohrmoser


  언제나 시작은 정적인 퍼포먼스부터. 텀블러 하이볼로 급격히 상승했던 기분이 한결 차분해졌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미에코 스즈키(Mieko Suzuki)는 DJ이자 작곡가, 사운드 아티스트다. 루프, 스크래치, 이펙트 페달을 다양하게 사용하며 노이즈를 기반으로 한 미니멀 사운드로 독특한 질감을 구현한다.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으로 처음 훈련을 받았다는 스즈키. 그래서 그런지 작업 전체가 멜로디를 절제한 전자 교향악처럼 들리기도 했다. 2009년부터 베를린 OMH 갤러리와 함께 'KOOKOO'라는 실험적인 이벤트를 열고 있기도 하다. 발전된 기술 그 자체보다는 협업과 이이디어의 실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스즈키의 작업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단순한 잡음들도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클라우디아 로어모저(Claudia Rohrmoser)는 실험적인 단편 애니메이션, 시청각 공연, 비디오 무대 디자인을 제작한다.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새로운 차원의 연극과 사운드 실험을 지향하는 Cinema Vertigo의 설립자이며 FH Bielefeld에서 모션 디자인 미디어 시노그래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미에코 스즈키의 사운드와 함께 영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네덜란드 안무가 나닌 리닝(Nanine Linning)과 협업하는 과정이 담긴 인터뷰 자료를 준비했다. 다양한 물질을 사용해 춤을 해석하고 이를 추상적인 언어로 변환하는 비디오 작업이 매력적이다.



Nanine Linning Anima Obscura Documentary with video scenographer Claudia Rohmoser



12월 10일(토) 20:40 ~ 21:25 / machina & Ali M. Demirel


  뮤텍 도쿄에서 한국 아티스트를 만나는 유일한 시간. 김여희는 마키나(machina)라는 이름으로 일렉트로닉 음악 분야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다양성이 받아들여지기 한결 쉬운 도쿄를 선택한 그녀는 이곳에서 불필요한 간섭 없이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었다. 뮤텍 도쿄에서는 케이팝 스타로서 성장했던 과거를 기반으로 탄탄하게 다진 보컬과 사운드 퍼포먼스, 거기에 무대 연출까지 가미하며 독보적인 1인 무대를 선보였다. 아래에 MUSIC SHARE에서 선보인 라이브 공연과 20분가량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준비했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사운드 안에서 한 개인이 스스로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machìna : MUSIC SHARE #078 @Red Bull Music Studios


  터키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리 엠 드미렐(Ali M. Demirel)은 원자력 공학과 건축학을 기반으로 시청각 시스템을 연구해 나간 미니멀 비디오 아티스트다. 컴퓨터 코드부터 오가닉 영역까지 광범위한 재료를 사용해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포함해 세계 각지의 페스티벌에서 라이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플라스틱만(Plastikman)과 오랜 기간 비주얼 아티스트 겸 디자이너로 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Ali M. Demirel: „When I hear something, I see something" (Groove TV)


  무대 한편에 욕조가 놓여 있었다. 마키나와 알리 엠 드미렐이 준비한 공연의 이름은 <The Bath>. 두 아티스트가 바라본 '목욕'은 자신과 만나는 가장 쉬운 행위라고 설명한다. '전환-수용-반성-계몽-평화'의 5단계가 공연에서 차례대로 펼쳐지며 감상자도 감정과 리듬에 몸을 맡기며 내면의 샤워를 경험한다. 마키나의 목소리와 전자 음악으로 한국 전통 민요 가락을 재해석한 부분이 섞여 나왔다. 숨 죽이며 지켜보다가 탄식을 내뱉었다.



12월 10일(토) 21:40 ~ 22:25 / Kyoka & Shohei Fujimoto


  어두운 수면 아래에서 거칠게 흐르는 무질서. 베를린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는 쿄카(Kyoka)는 냉혹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리듬 사운드를 선사한다. 어린 시절 받은 피아노 레슨과 테이프 레코더로 이어진 호기심은 자기 음악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로 그녀를 들끓게 했다. '드글드글.' 쿄카의 음악을 들으면 이 단어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박힌다. 2014년 발매된 앨범 [Is (Is Superpowered)]를 들을 때는 마치 인간을 초월한 뱀파이어가 된 기분을 느꼈다.


 Kyoka Boiler Room Tokyo Live Set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쇼헤이 후지모토(Shohei Fujimoto)는 빛과 공간을 다루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다양한 현상 속의 데이터와 정보를 추상화하여 복잡하게 버무린 다음 새로운 속성으로 재탄생시킨다. 그의 인터뷰가 담긴 12분짜리 영상의 10분 즈음부터 뮤텍 공연에 대한 힌트를 엿볼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는 시선이 몸의 내부로 향한다.


SHOHEI FUJIMOTO | ARTIST SPOTLIGHT | ARTECHOUSE

  

  쿄카와 쇼헤이 후지모토 두 사람이 준비한 공연은 <CINEMA BLACKBOX>. 인간의 뇌를 블랙박스에 비유하여 미지의 구조로 포착해 소리와 영상으로 해석한 퍼포먼스다. MRI, 뇌파, 뇌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 이론을 기반으로 '뇌'와 '자아'의 관계를 과학자의 눈으로 드러낸다. 쇼헤이 후지모토는 직접 MRI를 찍으며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한다. 퍼포먼스 내내 거대한 실험 상자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 기괴한 사운드 비주얼 논문이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확인해 보자.


3 min Excerption - Kyoka & Shohei Fujimoto - 自己共鳴投影上映開始 - CINEMA BLACKBOX



12월 10일(토) 22:45 ~ 23:30 / Byetone


  절반쯤 마신 텀블러 하이볼의 취기와 함께 가장 기대했던 바이톤의 공연이 펼쳐졌다. '바이톤'이라는 가명으로 솔로 활동을 이어가는 올라프 벤터(Olaf Bender, a.k.a Byetone)는 학창 시절 16mm 필름으로 창작 세계에 발을 들인 뒤 독학으로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형성해 나갔다. 음악, 영상, 라벨 디자인 등 그가 다루는 모든 세계는 미니멀리즘과 닿아있다. 뮤텍에서 선보인 <Pulses>는 음악 전반의 안정적인 리듬에 쌓이는 음악적 맥박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순한 리듬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완벽한 최면으로 이끌었던 그날의 공연과 가장 닮은 영상을 준비했다. 그의 창작 철학도 인터뷰로 만나보자.



Byetone [a/v live] @ Tag-Nacht



BYETONE (Slices Feature) / Telekom Electronic Beats TV



12월 10일(토) 23:45 ~ 24:30 / NSDOS


  가장 마지막 공연은 자유롭게 광기를 맛보는 시간이었다. 바이톤이 최면술사였다면, 이제 매혹적인 '샤먼'을 만날 차례다. NSDO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키리쿠 데스(Kirikoo Des)는 파리에서 무용 공부를 마치고 움직임을 탐구하기 위한 독특하고 고유한 소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기존의 도구에서 벗어나 오래된 사운드 카드, 에뮬레이터, 용접된 금속 조각, 센서, 인터랙티브 장치, 창의적인 코딩 프로그램을 이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


  그의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자기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 헌신에 가까운 '몰입(Devotion).' 퍼포먼스 내내 온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이 그의 시그니처다. 중간에 디제잉을 멈추고 무대 한쪽으로 나와 춤을 쏟아낼 때면, 음악 안에 있는 영적인 무언가와 강하게 결합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매체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NSDOS.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함에 강하게 매료된 밤이었다.



NSDOS Live at Villa Medicis - Roma - by ARTE CONCERT



NSDOS - INSEKT






  양일간 거의 10시간 가까이 스탠딩으로 만끽한 뮤텍. 앰비언트 사운드로 시작해 강렬한 하드코어 테크노까지, 일렉트로닉이 다루는 무한한 소재를 즐겼다. 공연은 현장 분위기에 반응하며 모든 요소가 라이브로 이루어졌다. 공간 안에서 오디오와 비주얼로 경험하는 총체적인 전시였다. 아티스트가 다루는 작품이 주가 되고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순간마다 온몸으로 자유롭게 에너지를 표출해 냈다.


  애써 찾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운 보석들을 수집함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기분으로 2022년의 뮤텍 도쿄를 다시 기록해 보았다. 실험 정신을 지지하는 뮤텍 공연 안에서는 자기 색을 찾는 용기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프리 패스를 손에 쥔 것처럼, 자유롭고 가볍게. "어떠한 영역에서도 경계와 한계는 무의미하다"는 확신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뮤텍의 에너지가 내 삶에도 스며들어 나도 경계와 한계를 허무는 삶을 살아보고 있다. 10편의 공연, 16명의 아티스트를 탐험한 이틀 간의 사운드 비주얼 여행. 새롭고 강렬한 세계를 경험하며 예술 분야로서 일렉트로닉이 가진 무한한 매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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