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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Dec 04. 2016

한 여름의 캄보디아 이야기

5.럭키걸의 과일봉지


OLD CASINO

음산함을 마구 풍기는 보꼬힐에서 올드처치 다음으로 내 맘에 쏙 들어왔던 올드카지노

가는내내 안개와 햇빛을 번갈아가며 맞아서 그런지 오슬오슬 추웠다.

라 아저씨가 했던 말로는 올드카지노는 건설이 중단된채 남겨진 건물이라고 그랬다.

내부는 낡을때로 낡아있었고, 관광객들의 소리가 왕왕하고 울려댔다. 올드카지노를 조금 둘러보고 뒷뜰으로 갔다. 뒷뜰의 풍경이 정말 끝내줬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는 터라 바다와 광할한 숲(?)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아저씨가 자기 카메라를 들이밀더니 포즈를 취하라고 그랬다. 그러더니 아저씨 카메라로 나를 막 찍었다. 요즘 종종 아저씨는 그때의 사진들을 선물보따리 풀듯이 한두장씩 나에게 메시지와 함께 보내곤 한다 아저씨와는 정말 정이 많이 들었는데 진짜 다시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다음으로는 절으로 향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아저씨도 나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는데 대화를 나누고 또 공감할 수 있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인거 같다.

나는 무신론자 이지만 불교철학은 정말 좋아한다. 내 머릿속의 불교는 자기고행을 통해 진리와깨달음을 얻는다는 이미지인데 알고보니 캄보디아나 동남아 지역의 불교 상좌부 불교가 이에 속한다고 한다. 아저씨는 윤회사상에 대해 엄청얘기했다.나쁜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이 한분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디 어색한 자세로 합장으로 하고 어색해 하고 있는데 아저씨와 스님이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절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스님께서 아저씨와 나에게 뜻모를 의식을 했다. 당황했지만 처음 겪는 이 상황이 재밌었다.

나무 빗자루같은것에 물을 묻혀 나와 아저씨에게 뿌려댔다. 아저씨는 나에게 "make a wish"라고 말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원은 입밖에 내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던데 기억이 안나는 건 괜찮은건가 문득 궁금해진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거니까 마찬가지 겠지?

절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이 절을 끝으로 아저씨와 나는 보꼬힐에서 내려왔다.

일단 먼저 숙소에 들러 부은 내 발을 쉬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는데 부은발이 아려왔다. 나아질줄알았는데 점점 심각해졌다. 발이 삐인건 23년 내인생 처음있는일이어서 아픔보다는 신기함이 더 컸다.


are you ok?
거의 아저씨와 같은 색의 피부..현지인화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되어 나가니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착장은 숙소 바로앞이라 아저씨가 와서 데려다 줄만한 거리는 아니었는데. 시간이 남아 아저씨와 앉아 맥주를 마셨다.


저녁 5시쯤에 배는출발했다.

해의 빛는 점점 약해져가고 저멀리선 번개가 치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고 또 내앞에서 풍경감상을 하는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어린형제의 외모에 감탄하고 그렇게 그렇게 30~40분 남짓을 달려 배는 어느 바에 잠시 정착을 했고 그곳은 파티가 열렸는지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몇몇사람은 그곳으로 가서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또는 맥주를 사서 와 옆에 앉아 마시기도 했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는 그들을 보며 조금 외로워 졌었다.

배는 잠시동안 반딧불이가 보이는 풀숲앞에 멈췄다. 이게 그냥 보트투어인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반딧불이 투어였다.뜻밖의 반딧불이는 신기했으나 그 이상의 감흥을 주진 않았다.

가는길에 보트직원이 내 발목이 걱정되었는지 매트를 뱃머리에 깔아주더니 여기 누워서 감상하라고 했다. 덕분에 칸칸히 막혀있는 곳이 아니라 탁트인 공간에서 경치감상을 할 수있었다. 정말 고마웠지만 또다시 나에게 와서는 난데 없이 사실은 이 보트가 자기것이라며 재력자랑을 하는 통에 속으로 빵터졌다.

"If you take this boat again next day.you are free! i'm the owner of this boat!"

적당히 거절했지만,발목덕분에 작업아닌 작업당한건가...?너무 웃겼다.

배에서 내릴땐 더 심해진 발통증에 절뚝거리니

이번엔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걱정하며 부축해줘었다 친절한 할아버지는 굿럭을 빌어주었고 할아버지의 젊은 손자와도 짧은 인사를 나눴다.

발목 덕택에 그 배안의 사람의 관심이란 관심은 다 받은 기분.

배를 내렸을 땐 여전히 라 아저씨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발목을 절뚝리는 걸 보더니 다시 그 파스향진한 오일을 꺼내 나의 발목에 발라줬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왜인지 내가 더 미안해졌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일찍 쉬어야 겠단 생각이 들어 아저씨에게 발은 괜찮은데 배가 고파 먹을걸 사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왜인지 감기가 걸린듯한 불행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아저씨는 조그마한 시장에 나를 데려가 주었다

저녁은 아저씨가 추천해준 음식들을 샀다. 동남아 음식이 입에 잘안맞기에 무난해 보이는 음식을 추천받았고 과일을 제외하곤 맛있게 먹었다. 타이레놀을 하나 먹고는 잠에 들었다.



미안해요.감사해요

다음날아침 집근처의 카페에서 밥을 먹었다 동남아 밥들은 왜 금방 허기가 지는지 모르겠다. 더운날씨에 칼로리 소모가 더 격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을 먹는데 저 멀리서 라아저씨가 보였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와 아침을 먹는 중이었는데, 아저씨랑 만나서 당황했다.

왜이리 일찍 왔냐고 묻자 나 줄려고 산 빵이라며 빵을 주곤 볼일을 보러 아저씨는 떠났다. 나는 여기서 계속 기다리겠노라고 말했다.

아저씨가 떠나고 얼마뒤 또 다른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리 한쪽이 없는 아저씨였다.구걸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구걸의 경우에는 돈을 주면 안된다는 글을 봐서 강력하게 거절했었지만, 이런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일단 나는 눈을 피했지만 아저씨는 내 앞에서 계속 떠나질 않았다.혼돈스런 마음을 그 아저씨는 다 보았을지도 모른다. 꿋꿋히 무시하던 나는 결국

sorry

를 말하고 말았다. 아저씨는 더욱더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동정어린 돈을 건네는건 너무 무례한 행동처럼 느껴졌다.아무리 구걸이었을지라도....

한번도 어른에게 동정의 의미로 돈을 줘본적이 없으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시간은 흘렀고 나도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니 아저씨가 내 앞에 놓인 과일봉지를 가르켰다.난 과일이 담긴 봉지를 건넸고 아저씨는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떳다.

돈이나 과일봉지가 문제인게 아니였던 것이다. 마음 은 여전히 무거웠고 찝찝했다.

이렇게 이쁘고 밝은 곳에서도 가난은 존재한다니 라아저씨와 목발짚은 아저씨는 내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어린나이에 여행하는 날 보며 팔자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에게 캄폿시티는 모든것이 아름다웠고 새로운경험이었는데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며 지긋지긋한 가난의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져 오기도 했다

그러다 내린 나의 결론은 우울해하기보다는 감사하기로 했다. 그들을 동정하는건 나의 몫이 아니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캄폿시티를 뒤로 하고 켑에 도착했다.

감사한 마음가짐을 가지기로 해서인지 켑시티는 더욱더 빛나 보였다.

안녕 켑시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이방인인 나에게 보내는 시선들을 무시한채 백사장에 내 발자국을 새겼다

채린 넌 럭키걸이야 니가 캄보디아에 오는건 쉽지만 내가 너희나라에 가는건 있을수 없는일이야


그땐 얼굴이 붉어져 왔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당황해서 "you can come to my country and meet me there..!"이라고 말했지만 아저씨에겐 희망고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대답은

"I know. i'm a very lucky girl"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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