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2014년 9월 30일
찌루가 몹시 아프다. 올케가 몸이 아파서 우리 집에 맡겨진 애완고양(태국 황실에서 키웠다는 종) 이다. 산자락 우리 집엔 애완견과 애완고양이가 네다섯 마리일 때도 있다. 밖에서 뛰놀면 좋을 거라며, 친척이나 안면 있는 지인들이 아무데나 버릴 수 없어서라며 맡겨놓기도 하고 노지에 버려서 거리를 헤매는 애완동물을 보면 데려오기도 한다. 따뜻한 방에서만 살던 애완동물, 밖의 세상이 얼마나 황당하고 두렵겠는가.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첫 주인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어느 날 보니. 찌루 얼굴에 눈물자국이 까맣게 나있다. 운 모양이다. 동물은 밖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내 지론이었는데. 추운 겨울만이라도 따뜻하게 살라고 집안에 들여놨다. 부산스러운 개와 달리 있는 듯 없는 듯 매우 우아하고 자태가 곱다. 그런데 배에 지방이 차 수술한 적이 있었다는 찌루가 또 아팠다. 수의사는 황달이란다. 수술한 후 밥을 먹지 못해 약과 밥을 주사기로 먹였다. 때로는 ‘울컥울컥’ 내장까지 뱉어 낼 것처럼 괴로워하는 찌루 병수발에 집안이 흉흉하고 가계도 휘청한다.
그 와중에 남편이, 친구가 주었다며 담비(개의 품종 스피츠)를 데려왔다, 조막만 해 밖에서 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찌루 병수발에 경황이 없는데 담비는 왜 또 맡았느냐며 밖이냐 방이냐를 두고 티격퇴격하다 결국 밖에서 키우기로 했다.
담비가 드나들 구멍만 남기고 이불로 집을 돌돌 말아 전기장판 위에 놓았다. 버림받은 경험 때문인지, 처다만 봐도 바들바들 떠는 담비. 밤이면 가랑잎 날리는 소리만 나도 짖어댄다. 새벽 두 시든 세 시든 사람이 대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쿵, 쿵, 쿵.’ 두드리다 반응이 없으면 흔들어대기를 반복한다. 단잠을 자르고 밖으로 나가 조용히 못하느냐며 구두칼로 베란다 발코니를 드르륵 긁으면 며칠 수그러진다. 그 작은 것이 겁에 질려 밤새 떨겠지만 머리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담비가 귀염 떨며 물구나무서서 앞발로 걸었다. 개가 그렇게 걷는 행동은 처음 보았다. 기이하게 여긴 남편이 친구에게 물으니 외려 신기해하더라고 했다. 방으로 입성하고자 새 주인 앞에서 최대한의 묘기를 보여준 것이었을까.
등산친구 K에게 담비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하나밖에 없는 혼인도 못 시킨 아들을 암으로 보냈다. 병세를 늦게 알아 속수무책이었다고 했다. 같이 산에 오를 때도 문득문득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친다. 그럴 때 나는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몰라 눈시울만 붉어진다. 그녀의 남편도 술만 마시면 운다며 담비를 키워 보고 싶다고 했다.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주고 싶지만. 쉽게 결정하지 말라고 했다. 홀로서지 못하는 애완동물, 수명이 짧아 주인 앞에서 사람처럼 유아기, 소년기, 중년기를 넘기고, 노년기엔 사람이 걸리는 병 다 걸려서 앓을 수 있으니 병수발도 하고 장례도 치러야하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해주자 K는 망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키우면서 정들다보면 못 버리고 끝까지 책임진다지만 처음부터 그런 부담 갖고 키우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러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면 그런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몇 년 전이다. 딸이 키우던 무드(스피츠잡종)를 날보고 키우라며 가져왔다. 애들이 자라서 학교 다니게 되자 공부에 방해된다며,
“무드가 장난감만도 못하니 망가지지도 않았는데 버리게.”
딸은 애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삼키고 결정했다며 자주 와서 사랑해 줄 거라고 했다. 이기심을 선택하고 애완동물을 버리는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한번 맡긴 무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드를 밖에서 키웠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어 하더니 그런대로 익숙해지면서 3년 정도 되었다. 그런데 며칠 째 무드가 보이지 않았다.
‘무드야! 무드야!’ 집 모퉁이에 깔끔하던 무드가 꾀죄죄하게 누워서 나를 보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개인적인 일로 서울에 드나드느라고 돌봐주지 못한 후회가 산처럼 밀려왔다. 축 늘어진 무드를 않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수의사는 노환이라며 늦었단다.
나 때문에 슬프게 더 빨리 죽는 듯싶었다. 용서해달라며 집이 울리도록 울어댔다. 내 자신의 잡다한 설음도 분위기를 잡았을 것이다. 무드도 눈물을 ‘줄줄 아주 펑펑’ 흘리며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더더욱 큰소리로 울었다. 쉽사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산천뿐이니 누가 뭐랄 사람도 없었다. 어찌 그 눈물이, 그 심정이, 피붙이와 다를 수 있으랴. 다시 태어나려거들랑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며 쓰다듬어주었다. 사람의 생명과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가족 같은 애완동물을 버리면 되겠는가.
K가 담비를 키우겠단다. 많이 생각한 듯싶었다. 얼마 후 산에 가자고 K집에 들렀다. 말쑥해진 담비가 반가워했다. 아들 보내고 폐인처럼 살던 남편이 담비를 예뻐한다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집에 버려진 애완동물들은 애정결핍증세로 특이한 행동을 하며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조용히 눈물만 흘리기하며 주인만을 기다리다. 다행스럽게 끝까지 책임지고 잘 키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병세가 호전 되가는 애완 고양이 찌루, 미오. 애완견 로미. 점박이. 매어놓은 큰개 검둥이가 있다. 내 집의 애완동물은 이미 가족이다. 가족을 버리고 어찌 나만 잘살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