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2014년 9월 29일
눈이 펑펑 온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는 오랜 친구 같은 눈이다. 그때 첫눈이 내리면 밖으로 뛰어나가 손바닥으로 눈을 받아들었다. 눈에 둘러싸인 몽실몽실한 하얀 세상, 마당이나 마을공터로 나가면 형제든 친구든 하나둘 모여서 눈사람 만들고, 뒤로 자빠져 몸 도장도 찍고, 눈싸움도 했다. 속삭이듯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변함없는 그때 그 소리다.
문학의 집, 동서문학송년회에 가는 중이다. 개화역에서 9호선을 탔다. 종착역이라서 한적하다. 한 구간 가서 내려야하므로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정도의 스트레칭을 하다 공항역에서 내려 서울역까지 가는 공항전철로 환승했다. 장거리라서 남편, 혹은 누군가가 한 말을 곱씹으며 섭섭해 하기도 하고, 아침에 들은 뉴스를 떠올리고는 얼굴표정을 구기고 펴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내려야할 플랫폼을 지나쳐서 약속시간을 못 지킬 때도 있다. 그런 때는 매우 안타깝다. 오늘은 북한에서 처형당한 장성택 사망뉴스가 떠올라서 생각하느라고 디지털미디어시티, 홍대입구, 공덕을 언제 지나쳤는지 서울역이라고 한다. 방송하지 않았으면 또 지나칠 뻔 했다.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왔다. 다행이 집에서 나올 때보다 눈이 덜 온다. 곧장 문학의 집을 향해 걸었다. 좌측으로 돌아 오르는데 눈얼음 길을 조심스럽게 걷는 나보다 연장인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 팔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체온이 몸을 따뜻하게 했다. 젊은 동지가 지나쳐가며 ‘두 분이 오시니까. 전 먼저 갑니다.’라고 하면서 멀어져갔다.
문학의 집에 도착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얼굴들이 활짝 피었다. 상냥한 대로, 무뚝뚝한 대로, 서먹한 대로, 같이 문학기행하며 한 솥밥 먹고, 한 지붕아래서 자기도하고, 다달이 만나 초빙招聘강의도 듣고, 서로 합평하고, 뮤지컬이나 영화감상도 하는 등, 같은 희망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한지 십 수 년이 되었다.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무대 홀 가슴마다에도 내린다. 식순대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시낭송, 우아하게 걸으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 싶은 수필낭송, 세대차를 뛰어넘는 동화구현, 폭소를 자아내는 소설가들의 코믹연극이 수준급이다. 동지의 아들인 초대가수의 열창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몸에서 발산하는 환호성이 어찌 젊음만이겠는가.
그 흥분이 이어졌다. 분야별로 상탄 사람들, 책 낸 사람들 축하꽃다발 주고받는 동지들, 단체 또는 분과 별로 사진도 찍었다. 행사 때마다 헌신적인 임원들, 촬영하느라고 발바닥에 불날 것 같은 사진작가 회원, 그들이 있기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지 않은가. 활짝 핀 눈송이까지 참여한 오붓하고 성대한 송년잔치였다. 잔치 끝나고도 밖으로 나와 눈 쌓인 산림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눈꽃 속에서 그들도 꽃인 양 ‘하하!, 호호!’ 마냥 자유로운 포즈로 촬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심이 아닌가. 살아가면서 의식을 하든 아니하든 불쑥불쑥 기억해내는 마음, 일거수일투족을 다 담는 것일까. 나의 아니 우리 모두 삶이 자서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돕고, 환영하면서도 샘내고, 조금 부끄러운 일도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자신만 아는 일은 감쪽같다고, 하지만 모두 다 A4용지 같은 내 몸에 수록되어 투영되는 자서전이 된다. 이제라도 돌아보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조심하며 살아야 되겠다. 지금 내리는 눈에서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눈을 보듯 누군가는 나도 그렇게 볼 수 있을 테니까.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집에서 나올 때는 펑펑 내리던 그때 그 눈이 아직도 한 송이씩 내린다. 수백, 수천, 아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여 더불어 사는 눈꽃세상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