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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치는 가을밤

채미자, 2013년 2월 2일

by 채미자

천둥소리에 잠 깨었다. 번쩍, 으지직 꽝!. 무엇인가 번개 맞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이라더니 비도 오지 않는다. 마치, 천둥소리가 나를 질타하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사람은 원죄가 있다더니 그 원 죗값에 불안한 것일까? 갑작스럽게 생각은 나지 않지만 본의가 아니든 본의든 부모님께 불효하고 측근의 사람들에게 잘못한 죄의식이 느껴진다. 누구나 그런 죄의식은 조금씩 있겠지만 나는 무리를 일으킬 정도였으니 느낌보다도 죄스럽다고 해야 맞다. 동트려면 아직도 몇 시간 남았는데 잠을 청해 보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창틀이 흔들리며 번쩍, 와르르 와장창, 쫙, 폭삭 무너지다가 찢어지는 소리도 난다. 가끔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시구가 생각난다. 윤동주시인의 서시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 누구든 나와 의견충돌이 일어나면 그가 중간입장에서 시시비비를 말해 주길 바라고 이야기하면 늘 이런저런 이론을 늘어놓고, 그러니까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내 탓만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상 싶기도 했다. 어쩌면 나의 이해부족으로 그럴 수 있으니까, 게다가 자상하지 않으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건망증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변명하기에만 급급했었다. 그와 살아온 나날들은 사고뭉치인 나의 반성에 세월이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비아냥거리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수치심에 못 견디겠으면 번갯불 붙듯 그와 목숨 건 싸움을 한다. 불이 꺼짐과 동시에 후회하면서……. 그런 내가 밖에만 나가면 의기소침했다. 그래서 그는 날보고 사납다고 하고, 외부 사람들은 날보고 순하다고 했다. 환경이 만든 이중 성격이 아니든가.

그 와중에 시부모 모시고 전전긍긍 바쁘다 보니 자식들도 학원 한번 못 보냈다. 옆에서 저절로 자라서 나름대로 제 몫을 잘 하고 있어서 가슴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더 잘 키울 수 있었는데 내 탓이라는 죄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아는 이들에게도, 나와 친한 자연에게도 부끄럽다. 나의 단점을 바로잡으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타고난 천성인지, 쉽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노력을 포기할 순 없다. 낙숫물이 처마 밑에 바윗돌을 뚫는다고 했던가,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의지만 있으면 조금씩 바뀔지도 모른다. 아니 바뀌고 있다. 순탄한 삶을 위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극복할 수 있다. 옆에 누워 있는 남편도 깨어 있나 보다.

“자요? “ “아니!”

말수가 적은 그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다. 동갑이면서 생일도 나보다 늦은데 연상으로 보인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종갓집 맏이로서의 무게와 얼룩진 세월이 묻어 있다. 그 모습이 내 탓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새삼 생각하면, 멋은 없지만 정이 많은 그는 나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길잡이가 되어 주고 분수의 멍에를 씌워주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절친한 친구였다. 같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다 보니 서로 젖어 들어 눈높이도 비슷하게 닮아간다. 나의 착각일수 있겠지만 남편이기에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말 없이도 동작이나 눈빛만 보아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동화되고 길들여 지는가보다.

너그럽지도 못하고 미숙해서 가정불화 속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안은 자식들을 키운 지난 세월이 후회스럽다. 이제라도 남편과 자식들에게 섭섭한 부분이 있더라도 못해주었던 죄스러움을 떠올려 덮어가며 또다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을 아끼고, 세상에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남편을 섬기며 살아야겠다.

고양이는 가만가만 얌전하게 걸어 다니다가 다소곳하게 앉는 모습이 예뻐서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그였다. 정반대인 나와 살면서 그가 얼마나 많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나 스스로 덤벙거린다고 느껴질 때는 그의 말이 뇌리에 있다가 머리를 툭 친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면 십중팔구는 또 다시 나를 만나서 살지 않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한번 그런 결점이 없는 여자로 태어나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 딸 낳고 다복하게 잘 살아보고 싶다.

천둥소리가 멎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가뿐한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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