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2013년 1월 28일
산을 오른다. 계절과 상관없이 양손에 스틱을 짚고, 수목장에서 문수산 정상까지 2시간 소요된다. 겨울 산은 잘 사귄 산이어야 하고 정상까지 왕복 2시간 이내인 야트막한 산을 주로 탄다. 모자를 귀까지 꾹 눌러 쓰고, 프로산악인처럼 안전무장을 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이랑. 하산 길에 눈 시릴까봐서 선글라스 도 준비했다. 대부분의 겨울산은 높아질수록 눈 어름이 남아 있어서 아이젠을 부착해야한다. 네발야생동물의 자유로움이 상상된다.
진입로부터 몸이 무겁다. 언제나 정상까지는 못 갈 것 같다가도 몸이 풀리는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높은 봉오리 하나, 좀 작은 봉오리 둘, 자잘한 봉오리 셋을 더해 6번째를 올라서야 정상에 도착한다. 완만한 코스를 지나 가파른 언덕에서 헐떡거린다. 이번에는 쉬지 않고 첫 봉오리까지 만이라도 완주 할 것이다.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다. 더 이상 못 걷겠다. 아니다. 참아야한다. ‘배에 초코복근을 3개월 만에 만들었다는 여성C탤런트에게 사회자가 그 짧은 기간에 어떤 방식으로 운동했느냐는 질문에 아기 낳을 때 같은 고통을 참아냈다고 했다.’ 그 말을 떠올리며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을 견디다보니 그대로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짜릿한 스릴을 느끼며 첫 봉오리를 올랐다. 와! 끊어지게 아팠던 다리가 아이스크림을 깨문 듯이 달콤하게 시원하지 않은가.
그 답 활처럼 휘어지는 산책로 같은 코스에서 피로가 풀리는가싶더니 오르막길이다. 또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처음에 아팠던 고통을 되새기면서 남은 봉오리를 넘고 또 넘어 정상까지 올랐다. 아마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문수산 정상은 봉오리 하나를 더 올라가야겠지만 그 곳엔 군부대의 흔적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문수산 정상은 헬기장까지다. 쉬면서 올랐을 때보다 몸이 훨씬 가볍다. 더 할 수 없이 찬란한 햇빛이 박수를 쳤다.
한동안 다리가 아팠었다. 중학교 광장에서 베드미턴 치다가 다리를 삐끗 접질린 후로, 났겠지 싶어서 그냥 두었다가 못 걸을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갔다. 의사가 아직은 골다공증도, 관절염도 아니라며 못 견디겠으면 수술하는 방법도 괜찮다며 당분간 산도 타지 말고 평지만 살살 걸으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산을 타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일주일에 1,2번산 입구까지 남편과 같이 가서 나는 걸음마 하듯이 산을 오르고, 남편은 후딱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오다 나와 마주치는 곳이 나의 정상이었었다. 산을 탈 때마다 나의 정상은 조금씩 높아져갔다. 쉬면서라도 비행장까지 오르게 되기까지는 한 5개월 정도 걸렸다.
대부분 산이 그렇듯 문수산 정상 오르는 등산로가 여러 곳이다. 청룡회관 쪽은 수 목장에서 오르는 것보다10분정도 빠르지만 그 코스는 고음처럼 줄기차게 오르기만 해야 하기 때문에 숨도 더 차고 빨리 지친다. 딴 곳으로는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산타기는 우리가 살아내는 삶같이 느껴진다. 산타기 뿐이랴 그 무엇이든 집중하다보면 거기에 인생살이가 들어있지 않던가.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이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듯이 쉽게 이루어지는 꿈은 없는 것 같다. 설영 있다하더라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까? 입을 꼭 다물고 힘들어도 견디며 조심스럽게 걸으면 헛디디거나 돌부리에 걸리더라도 비틀 거리다 만다. 발길에 달은 도로래 같은 돌멩이를 밟아도 쭈르르 미끄러지다가도 바로 서지 않던가. 얼마나 다부지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뀐다.
피부 같은 산을 타다보면 토질과 산새 돌멩이까지 같은 산은 없다. 돌들이 쟁반처럼 동글납작한 산, 돌이 뾰족뾰족한 금강산, 칼로 반듯하게 잘라놓은 것 같은 돌이 많은 강화 보문사 눈썹바위 뒷산을 올랐었다. 거대한 두부를 반듯하게 잘라놓은 것 같은 돌이 나란히 9개정도 있어서 징검다리처럼 건너보았다. 사람이 웃을 때 드러낸 이빨처럼 거대한 돌입에 치아 같은 돌도 보았다. 괴이했다. 아니 괴이할 것도 없다. 그 많은 돌중에 어떤 모양의 돌은 없겠는가.
강원도 삼척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석회암환성동굴을 보러 2번 갔었다. 동굴에서부터 숲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도 장관일뿐더러 바위 동굴을 관람 할 때, 매번 그 웅장한 경이로움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불교에선 돌, 즉 미륵불이 미래 부처님이라고 한다. 그 곳에선 내가 숲 사이를 나는 작은 새같이 느껴졌다.
집 맞은편에 있는 승마산은 칼 가는 숫돌이 많아서 마을에서 주어다 썼단다. 그 등산로는 익숙한 음악의 리듬 같아서 여성스럽다. 그 산만가면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하다. 그 산은 왕복 1시간 30분 소요된다. 남편이 싫대서 친구와 같이 탈 수 있을 때만 간다.
언제까지 내가 산을 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 또다시 걸음마 할 때까지 산을 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