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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다시 탈 수 있을 줄이야

채미자,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산문집중 2013년

by 채미자

바람이 살갑게 살갗을 스친다. 남편이 문수산 간다고 나섰다. 같이 가쟀더니, 괜찮겠느냐는 듯이 쳐다 본다. 삼림욕하며 천천히 오르다 당신 만나 같이 내려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고는 콩 튀듯이 스틱을 챙기고 배낭에 오이와 사과를 넣고 등산화 끈을 맸다. 산자락에 살아서 산이 더욱 그리운 것 같다.

모 정형외과 원장께서 양쪽무릎이 겉보기엔 퇴행성관절 3기인데 엑스레이 결과는 2기라며 운동하느냐고 물었다. 하루라도 운동 못하면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보기와 다르게 왼쪽무릎이 아프지 않은 모양이라며 오른쪽무릎도 운동하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단다.

산타기를 평지 걷기로 바꿨다. 승용차 탈 때 다리를 들어야 내리고 타는데도 새로 헬스, 요가, 스트레칭은 평소대로 하면서 무릎근육운동을 시작해 열심히 했더니 좀 나아졌다.

사과식초 마사지하는 중이었다. 무릎을 싸고 있던 올록볼록한 부분이 벌레집처럼 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근육인 줄 알았는데 셀룰라이트였던 것이다. 배나 옆구리 등의 군살과는 달리 울퉁불퉁하게 형체를 갖추고 마치 저도 뼈라는 듯이 무릎 뼈와 근육에 찰싹 달라붙어있다. 십여 년 전에 콜레스테롤수치가 높아 중풍직전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 즘에 혈액이 뱉어냈거나 아님 순환이 잘 안되어 응축된 것일까. 시원한 버금이 톡톡 튀는 바디붐을 무릎에 바르고 강약으로 부드럽게 마사지하니까 조금씩 풀렸다. 그럼에도 '직업여성이 살림을 더 잘한다.'라는 말처럼 엉덩이로 발꿈치 짚어가며 걸레질도 잘하고 집안정리정돈도 평소보다 더욱 잘 했다.

'어쩌면 좋아!' 허벅지에서 종아리 발목까지 호두만한 또는 땅콩만한 지방세포덩어리들이 빈틈없지 않은가. 그게 다 근육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기름덩어리를 매달고 다녔다니 다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무심한 탓이다. 그나마 꾸준한 운동덕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넓은 범위를 언제 다 푼단 말인가.

자그마한 접시모서리로 조심스럽게 종아리부터 훑었다. 우두두둑하는 소리가 난다. 올록볼록한 부분이 붉은 꽃처럼 피멍이 들었다. 괜찮았던 팔뚝도 셀룰라이트가 몽글해졌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입 벌린 맹수 앞에 선 기분이 이럴까 싶다. 다리 아파 접시로 허벅지를 긁었을 뿐인데 피부암이 번져 고인이 되신 그분께서도 다리에 매달린 굳은 살덩이를 푸시느라고 그러셨을까.

피부가 스트레스 받으면 그리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구름처럼 밀려왔다. '빈대 잡다 집 태운다'란 말이 실감났다. 멍 풀리는 약을 다리에 바르고 천지신명님께 빌었다. 성났던 팔 피부도 가라앉았다.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아기 달래듯이 마사지크림을 바르고 몽근 부분을 손가락으로 자근자근 누르기를 장기간 반복했다. 하체가 허전할 정도로 가벼워졌다. 푸른 산에만 오르면 언제나 어머니 품 같아서 즐겨 찾던 산타기를 영엉 못하나 싶었다.

문수산 진입로에 들어서니 감회가 새롭다. 발걸음이 마냥 가볍다. 오랜만에 만난 산, 바람에 한들거리는 하나같이 잘생긴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등 살랑거리는 잡초들, 듬성듬성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랑 마타리꽃, 흙, 돌, 내리막길에서 나를 패대기치던 도로래 돌까지도 반갑다. 이성이야 있든 없든 생명을 같이 한 동지가 아니던가. 같은 생명으로써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눈길 닿는 대로 얘기도 했다.

헬스기구 있는 벤치에 앉아 사과 반쪽을 먹었다. 문수산 높이가 1.4km인데 0.7km오른 것이다. 스트레칭으로 몸 푼 다음 또 오르기 시작했다. 소나무, 떡갈나무도 잡아가며 맑은 하늘도 바라보고 찬란한 빛을 선사하는 해도 바라보며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정상아래 비행장까지 올랐다. 산타며 몸이 이렇게 가벼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방팔방을 행해 고맙다고 꾸벅거렸다. 그때서야 함흥차사였다 나타나는 남편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보였다. 내가 정상까지 오를 수 있도록 기다려 준 것은 아닐까.

하산 길이 걱정이다. 스틱에 힘을 잔뜩주고 한발짝 내려갔다. 다리가 거뜬했다. 굴다리 지나 스틱을 남편에게 주고 양발로 성큼성큼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산신님, 모든 신님 산을 다시 탈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바람이랑, 가볍게 흔들리는 숲이랑 풀벌레들에게도 고맙다고, 도르래 돌을 밟았는데도 구르다가 서는 것이 아닌가. 나를 잡아 준 것은 아니었을까. 언제 또 아플지 모르니 조심해야한다. 의사는 '운동을 열심히 하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했지 나을 수 있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다리를 아끼고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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