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Oct 22. 2015

관점, 인내의 선물

Patience 
provides
perspective.
인내는 관점을 제공한다.

사이먼 사이넥


인내는 관점을 제공한다.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는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관점


처음 행군했을 때의 기억이다. 완전 군장을 처음 멘 순간 이거 장난 아니겠다 싶었다. 그래도 다들 하는 거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걸었다. 처음이 진짜 힘들었다. 괜히 어깨가 아프고 발목이 쑤셨다. 열외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고민 고민하다 중간 지점까지 왔다. 그때부턴 처음보다 힘들지 않았다. 힘이 안 들었다기보단 슬슬 생각이 빠져나갔다고 보는 게 맞다. 다른 세상에서 생각하며 걷다가 문득 원래 세계로 돌아오면 힘이 확 들었다. 그때마다 논두렁에 힘들어서 걸음을 주체 못 해 빠진 척을 할까? 그래서 열외 할까? 했다. 또는 아래 차도로 지나가는 트럭에 절묘하게 뛰어내리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얼마 만에 잡힐까 하는 상상도 했다.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단 생각이 계속 들 무렵 도착했다. 하면 되는 거였다. 누구나 하는 걸지 모르지만 누구와 상관없이 나는 해냈다.


9월 25일부터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꾸준히 쓰고 있다. 지금 한 달이 채 안 되었다. 이 글까지 74편의 글을 썼다. 매일 2-3편의 글을 쓴 것이다. 그렇게 쓰다가 갑작스러운 방문자 수 급증에 놀란 적이 있다. 카카오 채널에 내 글이 뜬 것이다. 이후  한두 번 더 내 글이  업로드되었고 그 계기로 감사하게도 많은 댓글과 구독자가 생겼다. 글쓰기가 좋아서 시작한 블로그가 외부에서 하루지만 인정받았단 것에 기분이 꽤 좋았다. 내 글도 되는구나, 내 글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구나, 나는 할 수 있구나, 꾸준히 하면 되는구나를 이번에 또 느낀 것이다.


인내하며 오른 언덕의 끝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


두 번째 관점은 인내하며 오른 언덕의 끝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이다. 근력 운동을 할 때는 운동 후에 잠시 부푼 몸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보고 있는 몸만큼 몸에 근육이 붙을 것을 알 수 있다. 운동해야만 예측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 할수록, 해본 사람만이 내 몸의 성장을 짐작할 수 있다.


근력  운동뿐일까. 달리기할 때도 그렇다. 폐가 터질 것 같고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이 달리다 보면 뭐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이렇게 달리다 보면 체력이 좋아지겠지, 더 잘 달릴 수 있겠지 하며 달릴 뿐이다. 그런데  한두 달  계속하다 보면 이전에 숨이 찼던 거리가 이제는 한결 수월해짐을 느낀다. 이 인내의 과정을 지나가 본 사람만이 배우는 게 있다. 지금 참으면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내가 일종의 보증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20살 때 신창역에서 대천해수욕장으로 자전거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땐 개인 자전거가 없었다. 같이 가잔 일행들은 각자 자기 자전거가 있었고 고등학교 때 자전거로 통학했으니 빌려서 가면 될 거로 생각했다(원래 있던 자전거는 도난당했다). 빌렸는데 우유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자전거였다. 설상가상으로 기어가 고장 났다. 여행하는 내내 한 기어로만 갔다. 


다행히 낮은 기어에서 고정되어 언덕을 오르는 데엔 수월했으나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같이 간 일행이 내 시야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국도에서 혼자 낑낑대며 페달을 밟으며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이제 힘들어도 집에 갈 수도 없는 곳까지 왔기에 어떻게든 도착지까지 가야 했다. 해봐야 하루도 안 걸린 거리지만 그 시간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도착했다. 마지막 지점에서 굉장한 언덕을 만났다. 거기만 넘으면 도착이었다. 언덕에서 내려오면서 시속 50km 정도를 찍었다. 생바람을 맞으며 브레이크 잡을 걱정 없이 내려갈 때 모든 스트레스와 고생을 푸는 기분이었다. 그때 배웠다. 그냥 가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냥 가보아야 볼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내가 마지막 언덕 끝에 올라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인내가 데려다 준 경지라는 언덕에서 보는 지경의 경치


인내는 경지라는 언덕을 오르게 한다. 인내 끝에 정상에 이르면 그 경지에서만 알 수 있는 지경이라는 경치를 제공한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는 것이다. 인내하며 오르면 먼저 '내가 오를 수 있구나'를 알게 된다. 그리고 숨을 돌리기도 전에 내 눈 앞에 펼쳐진 경지의 지경을 바라보게 된다. 나아갈 길을 볼 수도 있고 새로운 방향을 알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는 이제 이전과 같지 않은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삶의 언덕을 올라가 보자. 지경의 언덕을 올라 새로운 경지의 경치를 바라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하는 일로 말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