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은
절대 맛볼 수 없다.
사이먼 사이넥
눈 딱 감고 두리안
20살 때 중국에 갔다. 심양 지역과 백두산 지역을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같이 갔던 일행 중 목사님이 두리안을 꼭 먹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현지인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마트 같은 큰 마트에 가서 결국 샀다(이땐 몰랐다). 일정이 마무리될 때쯤에 사서 금방 숙소로 왔다. 다음 날이 와서 1층으로 내려갔는데 기사분들이 나와 있었다. 도무지 차에 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왜? 하고 들어갔는데 열려 있는 문에 가까이 가자마자 알았다. 들어갈 수 없는 차라는 걸.
알고 봤더니 어제 산 두리안을 밤새 놓고 온 것이다. 그래서 두리안의 냄새가 차에 꽉 찬 것이다. 90년대 봉고차와 같은 차였는데 그 시절 차 특유의 패브릭 소재를 알 것이다. 온갖 냄새와 여러 흔적을 그대로 흡수할 것만 같은 소재. 어쨌든 이동하려고 다들 탑승에 도전했지만 시동도 걸기 전에 모두 멀미를 시작했다. 결국 다 먹고 냄새를 뺀 후 출발하기로 했다. 그때 호텔 같은 곳에 갈 때 두리안 냄새가 나면 쫓겨나거나 거절당한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이제 이 엄청난 냄새를 풍기는 과일을 어떻게, 누가 먹을 것이냐였다. 일단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먼저 먹기로 했다. 내가 졌다. 먼저 진 누나가 냄새나는 사약 먹는 표정으로 먹기 시작하다, 갑자기 ??????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 이거 맛있네!' 하면서 꽤 먹는 것 아닌가. '응???? 냄새는 이렇지만 의외로 맛있나? 아니 맛있을 수가 있나?' 하는 마음으로 장갑을 끼고 손에 들었다. 물론 후에 알았지만 비닐장갑 정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휴지 없이 화장실을 안 다녀온 사람의 손 같..)
질감은 순두부보단 질다. 순두부와 안 좋은 연어가 살이 풀어지는 느낌 중간 정도? 입에 대는 순간 바로 구역질이 나서 확 올라왔지만 모든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흑역사를 거기서 그걸로 남길 순 없었다. 어떻게든 참고 먹고 맛을 보는데 (코를 막기가 금지되었고, 장갑을 낀 채로 과일을 받았기에 막을 수도 없었다) 놀랍게도 달았다. 코가 그 냄새에 익숙해지자 그냥 그런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와우. 두리안은 굉장히 기름진 느낌이 들었다. 비유할 한국 과일이 안 떠오르는데 생각해보자면 갈린 사과를 제법 농축시킨 후 식용유를 조금 넣어 먹은 느낌 같다. 갈수록 비유 (아스트랄) 하기 어려워지지만.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거다. 눈 딱 감고 한 번 먹어본 경험. 그걸로 나는 두리안을 먹어본 사람이 됐다. 그게 뭐 별거냐고 할 수 있다. 거기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안 먹었다. 그중 몇몇은 평생 안 먹어서 못 먹어볼 것이다. 나는 먹어봤다. 먹을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지만 기회가 온다면 나는 먹을 수 있다.
사소한 경험의 가치
먹어본 거로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다. 작은 거 하나지만 해봤다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눈 딱 감고 번지점프를 했다고 한다. 다신 안 한다 해도 그 사람은 뛰어 내려본 사람이다. 전과 같을 수 없다. 스카이다이빙, 밤샘 공부, 마라톤 혹은 100시간 봉사, 하루 세 번 칭찬하기 등등 꽤 크게 보이는 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모든 일에 한 번 해볼 수 있다.
무엇을 해볼지는 우리 선택이다. 이왕 우리의 행동을 우리가 선택한다면 내가 안 해본 거, 못 할 거로 생각하는 걸 해보면 어떨까? 나도 아닌 건 안 해볼 성격이지만 동시에 내가 나를 무언가 못하고 안 하는 성격으로 규정짓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아주 가끔 안 해 본 걸 한다. 사소하게는 어릴 때는 야채를 진짜 안 먹었는데 이제는 새로 본 야채는 한 입 씩은 먹어본다. 대부분 더는 안 먹지만 개중에 입맛에 맞는 것을 발견하면 먹을 수 있는 야채 리스트가 늘어난다. 지금은 고기만 먹는단 소리를 집에서 듣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야채도 먹는단 소리를 들을 것이다(진짜 고기만 먹는 건 아니다!). 작아 보이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몇몇을 내 걸로 만드는 그 과정은 나를 새로운 나로 만들어 준다. 한 걸음 때로는 몇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눈 한 번 감고 맛본 것치고 얻은 결과가 꽤 괜찮지 않은가?
눈 딱 감고 새로운 '경험' 맛보기
이 글을 보면서 한 번 해볼까? 난 그거 못할 것 같은데 싶었던 것 중 하나쯤은 그냥 한 번 해보자.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면 퇴근 후 피아노 학원 가서 그냥 한 번 관심 있었는데 청강해볼 수 있느냐 물어보고 들어보고 실제 피아노를 한 번 눌러보자. 막연하게 생각했던 걸 확연하게 움직여보면 답이 나올 때가 많으니깐. 함께 가끔 눈 딱 감고 한 번 새로운 경험을 맛보자.
생생하고 따끈한 간증
이 글을 써서일까? 나는 원래 모기 말고는 벌레를 거의 못 잡는다. 글을 쓰는 중 갑자기 왼쪽 벽면에 집게벌레가 지나갔다. 전엔 화장실에서만 한두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냥 물에 씻겨 가게 할 뿐 잡아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방금은 글을 쓰다 검은 게 지나가서(벌레 무서워하는 사람은 흰 벽지에 움직이는 검은색에 기가 막히게 빨리 반응한다. 보통 '잡는다'가 아니라 '놀라고 무서워하며 피하거나 가만히 있는다') 보고 별생각 없이 휴지 가져와 (으스러지게) 잡아서 변기에 넣어 물을 내렸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이전의 날 생각하면 대단한 진보였다. 그덕에 아직 힘들 것 같지만 강적인 바퀴벌레도 곧 해볼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다행히 올해 본 적이 없다).
한 번 눈 딱 감고 해보자. 해보면 나와 안 맞다거나 안 된다는 걸 알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무언갈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무언갈 해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거 굉장히 멋진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