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최영미'의 시
사람의 마음이 생기는 건 한순간이다. 그토록 바라던 마음이 혹여 이어져 이뤄질 때가 있다. 나의 이상과 달리 이상의 실현은, 현실은 정말 금방 무너질 때가 있다.
마음의 문제라고 하면 쉽게 이야기를 끝낼 수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일부러 시시콜콜 꺼내면 꺼낼수록 더 아파지기에 마음의 문제라고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바라던 이를 바라던 만큼 채 알기도 전에 그런 만큼 꽤 가까워지기도 전에 틀어질 때가 있다. 그토록 바라던 마음이 이어온 시간과 깊이에 비해 이어진 시간은 찰나일 때가 있다.
찰나를 담은 사진처럼 그때의 찰나의 기억이 내 기억 속에 깊이 들어올 때가 있다. 꺼낼 수 없는 곳에 들어간 무엇처럼 내 속에 들어간 기억의 사진은 도무지 꺼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곳에 있단 사실을 잊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조차도 힘이 들 때가 있다. 잊혀지지 않아 힘이 들 때가.
아무래도 잊으려면 바라던 만큼이 아니라 그 곱절만큼의 시간과 아픔이 필요한 것 같다.
선운사에서, '최영미'의 시 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