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농담, '이문재'의 시
이런 말을 들었다. 자기 감정을 잘 모를 때 누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는지 물어보면 바로 떠오른 그 사람이라고.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엔 있었다. 떠오르게 할 기준이 있었다. 나는 김동률을 좋아한다. 누군가 김동률을 좋아한단 이야기만 들어도 그 사람이 좋아질 것만 같을 정도로.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이가 김동률을 좋아하는 건지 김동률을 좋아하는 이를 내가 좋아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었다. 내 기준은 김동률의 콘서트가 (드물게) 열릴 때 같이 가고 싶다 떠오른다면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와 실제로 같이 간적이 있다. 내 마음이 담긴 나의 찬가를 대신 불러준 시간이었다.
이젠 그런 이가 없다. 아니 이젠이란 말은 너무 슬프다. 요새는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블로그와 페이스북이 먼저 생각나게 되어 버렸다.
시인은 종소리를 내보내려면 더 아파야 한다고 한다. 더 강하게 쳐야 멀리 들린다는 걸까 내가 외롭다고 종을 쳐야 사람이 온다는 걸까 종을 칠 힘이 없어 안 치는 건지 아플까봐 안 치는 건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다만 이젠 살살이라도 쳐야겠단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강하진 않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