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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08. 2015

오늘, '오늘'을 얘기해요

친함을 유지하기 위한 한 가지 제안 

제이 라이프 스쿨 3% 커뮤니케이션 자아 문답 반, 주제 : '친구'




친한 형이 내게 이야기했다. '요즘 너랑 친한지 모르겠다'. '너랑 친한 걸 다른 사람들이 아니깐, 가끔 네 얘기 하다 너에 관해 물으면 나도 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할 말이 없더라. 아는 게 없으니 이제 우리가 친한 건지 모르겠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최근 친한 동생에게 들은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이야기 좀 하라고. 너무 신비주의라고. 비밀스럽다고. 내가 부러 그런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니 들어서 좋을 말은 딱히 아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그런 느낌을 왜 받는지 궁금했다. 왜 그런 느낌을 받느냐고 물었다. 내가 뭐 하고 지내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내가 내 이야기를 안 하고 살고 있었구나. 비밀스럽단 소릴 들을 정도로.


내 이야기를 하기 싫거나, 말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내 일상은 처음 만난 학원 사람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내가 그 이야기를 부러 꺼내진 않은 것이다. 돌아보니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매번 주제가 있는 대화만 했다. 말 자체는 많이 했다. 생각과 어떤 안건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다. 장소에 따라 가르치는 것도 많이 했다. 많은 말을 했으니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말'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토론을 많이 한다고 친해지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일상'을, 나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였다.


일상을 나눈다는 건 나의 삶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주 나눌수록 나에 관해 이야기하고, 상대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서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가까워져야 하며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가 되고 서로에게 시간을 쓸 때 '친해졌다'고 말한다. 친해진 사이를 '친구'라고 한다.


서로의 이야기 듣기 위해 가까워지는 사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시간을 쓰는 사이


나는 사람을 좁게 만난다. 그 좁은 가운데 친한 친구가 있다. 매주 만나긴 해도, 일 년에 따로 만난 적은 거의 없더라. 20대 초반엔 굉장히 친했고 그 우정의 공고함을 확신했다. 그땐 따로 자주 만났고 밤도 같이 종종 지새웠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친한 형이 내게 요즘 친한 건지 모르겠단 말을 했듯 나 또한 그 공고함이란 기둥이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점검차 두드리기 두려웠다. 혹시 모래성처럼 부서질까 봐.


똑같은 이유였다. 자주 만날 수 없었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 친구가 요즘 뭐 하고 사는지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이 친구 또한 내 일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이야기하는 학원 사람들보다도 모르고 있었다. 매주 만날 수 있다고 가까움이 당연히 유지되는 게 아니었다. 만날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만나서 공적이거나 업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을 이야기해야 했다. 


친구, 친하다, 친밀함
가까움이 오래 지속된 사이 혹은 감정


친한 사이라 할 수 있으려면 그래야 했다. 친구의 사전적 정의는 '가깝고 오래 사귄 사람'이다. 친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이다. 친하려면 가까워야 한다. 또 시간이 필요하다. 친함을 유지하려면 가까운 거리여야 한다. 좁힌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


가깝기만 해도 안 되고, 시간만 써도 안 된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써야 한다.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친함이 유지된다. 무선 충전기를 쓰려면 가까이 있어야 충전이 되고 멀어지면 배터리가 닳기 시작하듯. 유지된 친함을 친밀함이라고 한다. '지내는 사이가 매우 친하고 가까움'이란 말이다. 친하다엔 이미 가깝다는 의미가 있다. 친하고 친밀한 사이는 가까운 거리가 일정 시간 이상 유지 중인 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친구와 이번 주 만나려 한다. 최근 기회가 생겨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이야기하니 기분 좋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야겠다 싶었다. 오랜 친구 사이의 특출한 점은 오래 만나지 못해 서먹해도, 거리를 다시 좁히기가 쉽다는 거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오랜만에 가도 금방 찾아갈 수 있듯 가까웠던 경험 덕에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기 쉬운 것이다. 다행이다.


먼저 오늘 어떻게 보냈는지 오늘 이야기하자


나와 친한 이들과 자주 만나려 한다. 자주 이야기하려 한다. 혹시 자주는 못 만나도, 만나면 일상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린 멀어진다. 친함을 유지하려면 가까운 사람과 '가까움'을 유지하자. 친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쓰자. 멀어지지 말자. 가만히 있다가 잃지 말자. 친해지려면 '나중에', '다음에'가 아니다. 친함을 유지할 좋은 방법은 많다. 그 중 먼저 오늘 만나서, 오늘을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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