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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16. 2015

<한국인은 미쳤다!>를 읽고,

<한국인은 미쳤다> 에리크 쉬르데주 저




프랑스 기업인이 직접 일하면서 바라본 LG 이야기. 그가 입사하고 퇴사하는 10년 동안 경험한 LG 문화와 그가 만난 엘지 출신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본 엘지 문화와 한국인은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오직 업무만이 살아갈 이유이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겨야 하는 전투의 최전방 병사의 마음을 느꼈다(13p). 다국적 기업의 CEO라면 대개 누리곤 하는 휴식을 엘지에선 상상도 못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모든 시간이 분 단위로 계획되어 있었다. 모든 상황은  통제되어야 했다. 그것이 LG가 세계 지배를 하기 위해 지키는 신념이었다. 


과거의 어떤 실적도 과거일 뿐, 오늘의 결과가 그저 그렇다면 잘려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기업의 대표적인 경영 방식이다(24p). 한국인은 특정 능력보다 이력을 위주로 사람을 뽑는다. 전공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다. 전공은 엘지에서 집중교육을 통해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36p). 예컨대 엘지 전공을 이수할 자질을 '이력과 성적'으로 가리는 것이다.


모든 시간의 통제를 하고자 했다. 심지어 회의 시간 5분 전에 먼저 도착하게 되면 5분 동안 주변 건물을 돌다 들어갔다.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통제하면 효율이 올라간다.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이 성장할 때가 있었다. 


그가 마주한 시스템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평가받는 시스템이었다. 한국인은 그런 시스템에 익숙하다. 모든 사람에게 평가가 매겨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점수로 평가받는다. 선별, 탈락, 등급, 성과는 한국 교육에서 지배적인 개념이다. 회사에 들어가도 익숙한 세상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평가의 보상은 사회적 지위 상승이다. 또한 일에 모든 걸 쏟아야 하는 구조다. 지위에 따른 기득권도 일에선 없다. 누구나 끝없는 경쟁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인다. 


엘지 평가 시스템은 전능해 보일 정도였다. 직장생활 모든 행동이 평가 요소다. 직장 내 소문들도 모두 수집된다. 아주 작은 사생활까지도. 차가 찌그러졌다면 술 취해서 운전할  걸까? 라는 말 한마디도 수집된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했다면 쉴 수 있을까?  그다음은 더 큰 목표가 있을 뿐이다. 100을 달성하면 110, 그다음엔 130이다. 그것이 불가능한지는 상관없다. 해야 할 뿐이다. 125는 실패이니까. 이 영원한 질주에 끝은 없다. 누구도 벗어날 수도 없다. 주어진 100에 95를 달성하면 5를 왜 달성 못 했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칭찬은 없다. 격려와 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엘지엔 이 질주의 정점에 있는 400인 클럽이 있다. 모든 사원의 꿈이지만 여긴 모든 게 불안정한 곳이다. 그전까지 정규직이지만 여긴 계약직이다. 400명의 수는 유지되지만 버티기 위해선 여기까지 오기 위해 했던 질주를 계속해야 한다. 한 명이 승진하면 누군간 떨어진 것이다. 해고된 이는 호명되지 않는다. 호명되지 않기에 해고됨을 전달받는다. 승진되지 않은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은 이가 된다. 


업무의 수행자와 결정자는 구분된다. 동료와 업무를 두고 다양한 방식을 이야기하며 토론하는 프랑스식은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결과다. 최상위 400명에게 주어지는 가공할 압박감은 고스란히 증폭되어 아래로 전달된다. '빨리빨리' 문화는 생존을 위해 달려가는 임팔라가 당연히 취할 태도인 것처럼 한국에선 당연한 문화다. 모두가 경쟁자이다. 이런 시스템에선 감정이 배제된다. 내 옆에 있는 동료가 물렸다면 내가 달려갈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그때 할 일은 뒤돌아보지 않고 더 달려가는  것뿐이다. 비인간적이지만 엄청나게 효율적이다.


주 6일 70시간 이상의 근무, 하루 1시간의 휴식도 못 하는 삶을 살게 되면 회사 밖에서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 회사가 곧 자아가 된다. 내가 일이고, 일이 곧 나인 물아일체가 되어야 한다. 


결국 400인이 된 후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400인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400인 만의 연수를 받아야 한다. 이 작업은 골수 엘지 신봉자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포맷 후 설치 과정이다. 연수 가서 종일 수업을 듣고 시험 준비를 한다. 400인이라 누리는 특권은 신입사원 연수처럼 매주 목요일 42.195km를 달리지 않아도 된다 정도. 그들은 팀 전원이 마라톤 풀코스를 매주 통과해야 한다. 8~10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새벽 5시에야 숙소에 와서 6시 식사 후에 7시 30분부터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400클럽은 종종 부회장의 소집에 따라 공동체 의식을 위해 모여야 한다. 한겨울 산행을 하고, 겨울 야외에서 따뜻한 불도 없이 앉아서 술자리를 네 시간 정도 가져야 한다. 계속 건승을 기원하는 건배와 환호성을 외쳐가며. 이런 입문 의식을  계속해야 한다. 이들의 명령을 듣는 부하 직원들의 로망이 바로 이 입문 의식을 하는 것이다. 


최상위 임원 이어도 변화시킬 아무 힘이 없다. 20분 회의를 위한 12시간 비행 거리의 반복과 소모적인 교육들에 건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무도 관행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교육은 뇌의 리셋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다. 이런 경직된 시스템은 스스로 돌아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159p). 대형 여객선이 결로를 45도 틀려면 10킬로미터를 가야 하듯 말이다. 


그는 퇴사도 한국식으로 했다. 인수인계를 시작하면서 재빨리 제외되기 시작했다. 사무실을 비우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가 자리 없는 사이 그의 짐은 옮겨졌다. 그를 상대로 대청소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컴퓨터만 인터넷 연결이 끊겼다. 퇴사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그는 이미 엘지 직원이 아니었다. 


한국인은 그들의 업무 방식을 좋아할까? 그는 마지막에 묻는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이 되기까지 명확한 목표와 강력한 추진력이 있었다. 효율성을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든 에너지와 의지를 무한정 끌어내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루 10시간 근무,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혁신, 경직된 명령 체계, 불안정한 고용이 이루어낸 것이 있지만 노동자의 가정생활을 좀먹고 가치 있는 삶의 즐거움을 놓치게 한다는 걸 지적한다. 단순히 한국 내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을 꿈꾼다면 이젠 '효율'만으론 부족하고 혁신이 필요한데 그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책은 200쪽도 안 된다. 하지만 10년의 삶이 담겨 있어서  한쪽  한쪽이 진하다. 그가 엘지에서 일할 때 어떤 열정을 갖고 일했고 어떤 설움을 겪었는지 담담하게 적혀 있다. 아무리 담담하게 적어도 전해지는 감정이 끝에 많이 있지만. 단순히 한국형 회사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반은 한국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 문화에 어울리려 했던 이의 이야기다. 사실 우리도 어떤 문화는 비인간적임을 알고 있다. 비인간적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곳에 가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에 침묵할 뿐이다. 


그래서 도리어 우리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대신 말해준다. 그의 말에 기대어 한 번 이야기해볼 수 있는 거다. 외국인들이 보기엔 이럴 수 있겠다더라. 정말 그런 부분이 있더라. 저자도 밝혔지만 큰 회사일수록 어떤 사원도 회사 문화를 바꿀 수 없다. 그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이제 사람들이 좋은 회사 문화를 찾고 있다. '핸드스튜디오'나 '제니퍼소프트' 등이 대표이다. 


좋은 문화를 만들려면 무엇이 좋은지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좋은 출발점에 있다. 고칠 게 많기 때문에. 현실은 비관적 일지 모르지만 낙관적인 마음을 가진 이들이 무언가 만들어내고 있음을 본다. 바라기는 철옹성 같은 전형적인 한국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바뀌기를.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일해야 하는 한국 기업(꼭 엘지나 대기업이 아니더라도)에 대한 이야기라 제법 몰입해서 보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처럼 일하지 마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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