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Jan 24. 2016

<빅 쇼트> 모두가 불행해져야 행복할 이들 이야기

일확천금의 짜릿함보다 대사기극의 섬뜩함이 기억에 남는



<빅 쇼트> Big Short 영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 대기업과 많은 이가 무너지고 휘청거릴 때 그 사태를 예측, 베팅해서 엄청난 이득을 챙긴 이들의 이야기다. Big short는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거는 것, 영화상에선 비극이 일어날 거에 건다는 의미로 쓰인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공매도'란 단어와 맞닿아 있다.


이 영화를 방금 보고 온 한 친구가 이 영화 진짜 대박이라고 추천했다. 시간이 바로 맞아서 그냥 바로 가서 봤다. 보기 전에 경제 용어 등이 나와서 조금 알아보고 가는 게 낫겠다고 했지만 그냥 갔다. 많은 사람이 미리 찾아보고 가지 않을 것이고 같은 상태에서 본 후에 리뷰를 쓰고 싶었다. 관련 경제 용어 설명해주는 영역은 내가 할 부분이 아니니.


그런데 영화 시작하고 처음엔 후회할 뻔했다. 친구 말대로 경제 용어가 쏟아져 나왔다. 당황스러웠고 이게 뭐야 싶었다. 그 당황스러움을 예측했듯 영화는 직접 말을 건다. 그런 용어들 어렵다는 거 안다고. 지금 어렵단 생각하는 거 안다고. 증권가에선 이렇게 표현을 일부러 어렵게 해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게, 생각 못 하게 만든 거라고 말한다. 증권가는 그쪽 세계 전문가들끼리도 다 이해할 수 없는 페이퍼들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용어들은 놀랄 정도로 상세히 그리고 참신하게 설명해준다. 욕조와 도박장, 식당에서 장소마다 카메오가 나와서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해준다. 지식의 저주에 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저주를 화끈하게 풀어버린다. 카메오들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으면 정확한 경제 동향 파악은 안 되더라도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경제 용어가 아닌 상황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이 영화는 '경제 용어'나 서브 프라임 사태에 관해 자세한 정보 전달 목적용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 비극적 사태가 일어나게 된 모습과 또 그 사태를 예측한 이들,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을 거란 데에 도박을 한 이들의 심정, 비극이 일어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다음 비극을 또 준비하는 한결같은 어리석은 모습들 등, 인간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관객과 호흡을 하려는 시도가 꽤 보인다. 배우들은 종종 카메라와 대화를 한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랭크가 자기 속마음을 카메라를 향해 이야기해주거나 대화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로 표현할 때 다른 부분이 생긴다. 그 부분을 배우들이 직접 알려준다. '실제론 영화와  다르다'라고 그 부분까지 영화적 연출로 표현한다. 이 부분이 정보전달로 지칠 위험이 있을 영화의 활력과 생동감을 넣어준다. 영화이면서 동시에 실화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한다.


경제 지식이 없던 나도 영화 속 설명 덕에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었다. 과도함과 불친절함 중간에 적절한 지점을 찾아서 영화 내용 진행에 무리가 없었다. 영화 내용 자체에 몰입하게 됐고 주제를 생각해보았다.


영화에서  중심인물은 총 네 팀이다. 마이클 버리, 마크 바움과 그의 팀, 자레드 베넷, 찰리와 제이미와 벤 리커트 팀.


먼저 마이클 버리가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챈다. 그리고 바로 공매도에 투자한다. 모두 정신 나간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밀고 나간다. 마이클이 상관 안 하고 밀고 나갈 때 그 소식이 곳곳에 퍼진다. 베넷은 그 소문에 촉을 세워 알아낸다. 그도 바로 돈 냄새를 맡고 실행에 옮기고 실수로 전화한 바움 팀을 만나 판을 키운다. 그리고 베넷의 이야기를 들은 찰리 팀도 이거 뭔가 된단 확신에 뛰어든다. 




베넷의 제안에 사실 확인을 위해 마이애미로 가서 집들을  둘러본다. 100채 중 4명이 살고 어떤 수영장엔 악어가 살고 있다. 개 이름으로 대출이 될 정도로 허술하다. 아무나 대출이 되니 신용 등급에 상관없이 집이 팔린다. 갚을 능력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닌 브로커들은 신나게 돈을 벌고 있다. 이들은 희망을 팔아서 돈을 번다. 집을 샀다는, 신용이 없어도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진실은 시와 같다. 대부분 사람은 시를 혐오한다 
- 워싱턴 DC 어느 술집에서 들려온 말


바움 팀은 이게 지금 전부 사기극임을 알게 된다. 공매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 팀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 동시에 바움 팀과 찰리 팀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투자한 것은 '비극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이 돈을 벌려면 비극이 일어나야 한다. 


이들이 투자하려는 신용부도 스와프는 수백만 명이 낼 돈을 한 번에 안 내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야 돈을 번다. 모두 그럴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이 네 팀은 그럴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투자한다. 하지만 모두 믿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호구로 생각해 투자를 환영한다. 


이들은 곧 모두 지금 주식 상황이 엄청난 거짓말로 뒤덮여 있음을 알게 된다. 네 팀이 생각하기에 거품이 꺼지고 비극의 폭탄이 터질 날은 반드시 온다. 중요한 건 '언제냐'이다. 곧 터질 거란 확신이 있기에 무리해서 공매도를 사들이는데 계속 그 날이 미뤄진다. 사들인 만큼 프리미엄을 내야 해서 버티기가 쉽지 않다. 확신도 흔들린다. 


시한폭탄이 두 개가 있다. 프리미엄을 내면서 버틸 수 있을지 아닌지에 대한 폭탄과 거품이 한 번에 사라질 것이란 폭탄. 네 팀에겐 뒤에 폭탄이 터져야 승리한다. 하지만 희한하게 그 폭탄 심지에 붙은 불이 더 안 내려가고 머물고 있다. 자기들 폭탄 심지는 계속 줄어들기에 한없이 초조해진다. 


네 팀 모두 바보는 아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베넷이 보여줬듯 젠가의 아랫부분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속 블록들은 빠지고 있고 무너질 상황인데 안 무너지는 기이한 상황이 나온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베넷이 바움팀에게 말하듯 불이 난 집 앞에서 화재 보험을 들었고, 집만 다 타면 돈을 버는데 집이 계속 멀쩡한 채로 버티고 있으니 보험료는 계속 내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사람들은 잘 된다, 낙관에 기대를 건다. 비극일 수밖에 없는 상황임이 보이지 않는다.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낙관적일 거라고 확신한다. 


CDO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찰진 비유라고 생각했다. 한 셰프가 나와서 말한다. 그 날 팔아야 할 생선 중 남은 생선은 버려야 한다. 이걸 버리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써버린다. 영화에선 똥을 모아서 그럴듯한 거로 만들어낸단 식으로 말한다. CDO란 계속 똥을 모아서 겉으론 괜찮아 보이게 만들지만 실제론 똥 폭탄의 화력만 쌓이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터질 뿐이다. 잘 모르긴 몰라도 똥이라고 하니 느낌이 온다.


CDO가 똥 같은 건데 이걸로 모잘라서 합성 CDO가 마구 생겨난다. 술 취한 독재자에게 핵폭탄 스위치를 맡긴 것이라고 말한다. 


셀레나 고메즈가 나와서 설명한다. 먼저 자신이 블랙잭에 이길 것으로 생각한다. 근거는 오늘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농구에서 처음 한두 골이 들어가면 다음 골도 들어갈 거라고 믿는 '뜨거운 손 오류'와 같다. 그렇게 운에 맡겨 걸었는데, 고메즈를 보고 구경꾼들끼리 또 고메즈가 딸지 말지를 두고 건다. 또 그렇게 걸고 있는 구경꾼을 보면서 다른 구경꾼들이 또 누가 이길지 돈을 건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 고메즈의 승패에 엄청난 돈이 오간다. 판돈 1천만 달러가 수십억 달러로 불어난다. 터지면 끝이다.


하지만 모두 잘 될 거로 생각해서 승리에 건 것이다. 누구도 패배에 걸지 않는다. 이 낙관 자체가 사기극이다. 이 사기극은 극을 끝내지 않는 한 비극으로만 끝난다. 희망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 사기다. 그리고 이게 사기극이고 비극으로 끝날 거라는 데에 거는 것만이 이득인 것도 비극이다.


거품 이후 비극인 걸 아는 네 팀의 투자와 이 상황이 비극으로 치달을 걸 알면서도 낙관하는 이들이 얻는 '부'가 대립한다. 사람들은 낙관하여 얻은 '부'를 쫓는다. 그래서 비극이 보이지 않는다. 네 팀은 보게 된다. 이 판은 끝낼 수 없다는 걸. 곧 터질 비극의 크기는 커지고 그만큼 얻을 돈도 많아진다. 희비가 같이 느껴진다. 



불행해야 행복한 상황, 더 많은 비극이 더 많은 수익을 내는
비인간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미국 경제가 무너져야 돈을 버는데 막연하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세히 생각하면 무섭다. 실업률 1%가 증가하면 4만 명이 죽는다. 수없이 많은 이들의 돈이 사라지고 집이 없어지며 인생이 망할 거라는 데에 돈을 거는 것이다. 자기들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일을 두고 '행복'을 위해 게임한다. 이겨야 행복하다. 그들이 반드시 불행해져야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판이다.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판은 언젠가 터질 폭탄이다. 그들이 걸든 안 걸든 비극은 닥친다. 그들은 단지 올 비극이, 정말 올 거라는 데에 돈을 건 것이다. 지극히 비인간적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한없이 인간적인 선택이다.  


그 비인간성에 괴로워하지만 동시에 살아야 하는 바움 팀과 찰리 팀의 고뇌가 살짝살짝 보인다. 그들의 고뇌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계속 낙관하며 파티를 연다.



‘모두가 내심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2007년부터 비극은 서서히 시작한다. 큰 증권사와 은행들이 무너진다. 셀 수 없이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 이 상황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부담하게 한다. 


이 비극이 일어날 것에 투자하는 건 이 비극을 자초한 이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들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만든 판이니깐. 그렇지만 이 판에 뛰어든 이상 달리할 방법이 없다. 투자하지 않아도 빈털터리가 된다. 애초에 비극으로 끝날 판이었다.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판을 깰 수도 없고. 


영화 말미에 나오는 말은 섬뜩하다. 미국은 합성 CDO의 다른 버전을 벌써 시작하고 있다고. 아마도 또 사람들은 투자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들의 모습은 낙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비극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인터넷 문구가 있다. 그 문구가 맴돈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 적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교훈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성격을 보인다. 영화 후에 드는 생각은 그들이 딴 돈의 액수보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회의를 갖게 한다. 나 또한 근거 없는 낙관에 빠진 건 아닌지. 속고 있는 건 아닌지. 골드만삭스의 엘리트들도 속은 것처럼 우리 사회도 잘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 낙관이란 사기에 빠진 건 아닌지. 우리가 만날 수밖에 없을 불행이 누군가에겐 행복일지 모른단 생각이.

매거진의 이전글 <유스 Youth> 젊음은 나이가 아닌 열망에 달려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