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Jan 17. 2016

<유스 Youth> 젊음은 나이가 아닌 열망에 달려있다


어쩌다 예고편을 봤다. 친숙한 알프레도 집사님의 얼굴이 보여서 봤다. 나는 그분이 주연을 맡은 걸 따로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역을 하실지 궁금했다. 예고편으로만 보면 은퇴한 지휘자가 그것을 못 잊고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형적인 음악과 휴머니즘 영화라 생각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몇 분 동안엔 여러 음악이 함께 하는 음악 영화일 거로 생각했다. 음악 영화로 착각할 만큼 다양한 음악들이 나오긴 한다. 포크송, 락, 탱고 등. 그러나 예상을 빗나갔다. <나이트 오브 컵스>에서 느낀 난해함이 생각났다. 당혹스러웠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무엇을 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연출들은 평범한 관객에게 불편함만 주기에.



다행히도 영화는 일상적인 연출을 기반으로 한다. 중간중간 환상의 표현이 곁들여진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영화관 밖으로 나와 걷게 된 길거리와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무언가 각자만의 독특한 사연이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에서 본 꿈속 연출이 내 눈에 씌어 꿈꾸는 기분이 들었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제목처럼 '젊음'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이 젊음 일지를 생각하게 하고 젊음을 찾은 사람과 놓친 사람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요양 호텔은 세계 유명 인사들도 오는 최고급 수준이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서 마사지와 치료 등을 받으며 회복하려 한다. 


영화는 이런 수동적인 회복을 재밌게 연출한다. 감독은 내가 느낀 난해한 연출을 주로 이때 구사했다. 흡사 시체들의 움직임, 사후 세계 등을 표현한 것처럼 '영혼 없는' 이들로 보이게 한다. 공허하고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로 보이게 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마사지를 받고, 좁은 실내를 빙빙 돌며 산책하고, 온천욕을 하지만 다들 생기가 없다. 그들이 받는 서비스가 굉장히 좋아 보이는 것에 대비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 반대로 요양 호텔을 벗어났을 때 연출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그저 산책하며 대화한다. 그런데 이때 주인공들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관계가 회복되며 나아진다. 비싼 요양 호텔에서 시체처럼  서비스받을 때 살아나는 게 아니라 서로 이야기하며 함께 걸어갈 때 생기가 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젊음'이 조금씩 드러난다.


이 요양 호텔은 대부분 '육적 요양'을 위해 온다. 감독은 이런 요양을 '죽은 요양'으로 묘사한다. 동시에 이곳에서 '젊음'을 얻고 가는 이들이 있다. 영화 말미 의사는 이곳에서 나가면 기다리는 게 '젊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젊음을 얻고 가는 이들은 음악 지휘를 하게 된 벨린저, 새로운 인연을 찾은 레나, 자신의 연기를 시작한 지미, 공중 부양에 성공한 수도승, 그리고 전직 축구선수. 


'열망' 젊음의 감정


이들은 이곳에서 각자의 열망을 '발견'하고 열망을 '추구'하면서 젊음을 얻게 된다. 감독이 말하는 젊음은 '열망'을 품고 그 감정을 갖고 사는 삶이다. 


수십 년째 공중 부양을 도전한 수도승은 이내 성공한다. 전직 축구 선수는 극 중 정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배경 설명을 하자면 감독이 마라도나의 광팬이다.  그래서 마라도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만든 오마주 캐릭터이다. 마라도나도 왼손잡이이며 왼발을 사용하기에 영화 속에서도 캐릭터는 왼손잡이임을 말한다. 그리고 체 게바라 문신 대신 등에 마르크스 문신을 해놓는다. 그의 지팡이에 새겨진 CM(중앙 미드필더)와 그가 상상으로 본 축구단 선수의 등번호 10은 그의 오마주가 듬뿍 들어갔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공에 대한 마음 테니스공을 보며 마음을 두고 이내 그걸로 계속 발로 띄우는 리프팅을 한다. 평상시엔 지팡이에 의지해 걷지만 테니스공 리프팅 할 땐 멀쩡하다. 환상에서 본 축구단과 등번호 10번인 선수를 보면서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왼발을 본다.



젊음,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보는 것
늙음, 가까이 있는 것을 멀리 보는 것


감독에게 '미래를 본다는 것'은 젊음의 또 다른 증거이다. 감독인 믹은 팀원에게 망원경을 보라고 한다. 그리곤 말한다. 멀리 있는 모든 게 정말 가까워 보이는 게 젊음이며 네가 젊을 때 보는 모습이자 미래이다. 그리고 모든 게 멀어 보인다면, 늙었을 때 보는 모습이자 과거이다. 그에게 과거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말이다. 


이 말을 했던 믹은 이번 요양 호텔에 오면서 자신의 마지막 역작이자 유작을 찍으려 한다. 하지만 같이 찍기로 한 50년 지기 여배우가 돈을 벌기 위해 배신하고 영화를 파투내자 크게 상심한다. 그에겐 그 영화가 미래였다. 그 배우 없인 그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멀어졌다. 과거가 되었고 믹에겐 살 희망, 열망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영화를 찍기 위해서라며 뛰어내린다.



다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


나는 연기를 하는 지미와 음악을 하는 벨린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둘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딱 하나로만 기억된다. 사람들이 지미는 '미스터 Q'라는 로봇 영화로만, 벨린저는 '심플 송'으로만 기억한다. 마치 라디오헤드가 'Creep'으로만 델리 스파이스가 '고백'으로만 주로 기억되듯. 그들의 다른 수많은 작업은 모른 채.


지미는 자신이 해온 연기가 있고 하고 싶은 연기가 있는데 계속 '로봇'으로만 기억되는 상황을 혐오했다. 미스 유니버스가 호의를 갖고 인사해도 '미스터 Q'를 언급하자마자 태도가 공격적으로 바뀐다. 그렇지만 그의 다른 작품을 본 소녀의 말에 그는 각성한다.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고. 


시작하기 좋은 곡


벨린저는 지휘를 부탁한 여왕 특사의 청을 거절하고 돌려보냈지만  마음속엔 계속 음악에 대한 열망이 있다. 봉지를 부스럭거려 소리를 내거나 자연에 있는 소리로 지휘를 하거나. 그리고 자기 노래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 또한 소년을 만나고 달라진다. 소년은 그의 곡을 단순하지만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심플송은 '시작하기에 아주 좋은 곡'이라고. 그는 다시 지휘한다. 심플송으로 시작한다. 



열망이 갑자기 멀어졌을 때 영혼이 늙어지고 죽음이 찾아온다. 친구 믹의 죽음을 본 벨린저는 달라진다. 딸에겐 무감각하단 소리를 듣고, 열망 없이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의 연장을 하던 벨린저는 친구의 죽음을 직면하고 감각이 일깨워진다. 감독은 시종 차분하던 벨린저가 숨을 가삐 쉬는 모습으로 감각의 살아남을 표현한다. 그가 감정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건 '미스  유니버스'와 음악 말고는 없다. 하지만 그는 여색이 아닌 음악을 택한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환상, 위 포스터는 그것을 뜻하지 않을까 싶다.


젊음은 그 열망을 찾는 것이다. 열망이 있을 때 젊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이 살아있음의 전부이다. 그게 없으면 죽은 것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모티브가 아닐까 싶단 생각을 했다. 시의 소개로 글을 마친다.


청 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 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Youth  _  by. Samuel Ullman
청춘 - 사무엘 울만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 her>, 진짜 사랑이 뭔지 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