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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Feb 08. 2016

<쿵푸팬더3> 쿵푸팬더1+2 그 이상

시리즈의 승화적 승계


<쿵푸팬더3>가 나왔다. <쿵푸팬더1>을 극장에서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이 흘렀다. <쿵푸팬더1>이 나오고 3년이 흐른 후 다음 시리즈가 나았다. 예고편만 보아서 거의 기억이 없다. 세 번째 시리즈를 보기 전 배경지식은 1뿐이었지만 무리 없었다(2는 줄거리와 예고편 정도의 지식만 있다). 


쿵푸팬더의 승화적 승계


그냥 극장에서 한 번 본 거로 그치지 않았다.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는 <쿵푸팬더1>을 교재 삼아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그 덕에 장면 장면을 진하게, 여러 번 곱씹으며 봤다. 전체 관람용 만화지만 그 안에 담긴 교훈을 두고 청년들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래저래 오래 푹 고아 먹었다(영화를, 팬더말고!). 


그 덕에 <쿵푸팬더1>을 향한 헌사 혹은 승화적 승계라고 할 만큼 1과 겹치는 장면이 많음을 더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수련 시작할 때 샌드백 하나도 잘 칠 줄 모르던 포의 모습이 떠오른다. 5인방의 특성과 아예 반대로 수련을 시킨다거나. 쿵푸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처럼 교육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초보에서 교사 초보 모습으로. 




뻔함 vs 뻔하지 않음과 Fun함



전체 관람용 애니메이션의 흐름은 뻔하게 보일 때가 있다. 기승전결의 반복 혹은 발단전개절정위기결말 그리고 권선징악. 이 이야기는 동서고금에서 내려오는 인류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동시에 어른들은 숱하게 접해온 방식이다. 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을 한 번에 잡아야 한다. 너무 유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너무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재미와 감동, 교훈이 있게. 그 작업을 <쿵푸팬더3>는 잘해냈다.


주제 의식의 완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 악역인 '카이'의 포스가 한없이 부족했다. 1의 타이렁에 비하면 힘은 압도적으로 센 편이지만 자기 인정에 목말라하는 개그 캐릭터 정도였다. 스토리 전개상 '시푸'의 각성과 우그웨이의 좀비화는 뺀 것 같다. 원사이드 하게 카이가 강했다가 한 번의 각성으로 끝나버렸다. 전체 애니메이션 중 이런 대결 구도에선 뻔한 순서이지만 그걸 풀어내는 과정은 너무 뻔했다. 


'드래곤볼'에서 프리저를 상대하기 위해 처절한 수련과 생사를 오고 가는 대결 끝에 가서야 각성한 손오공의 모습을 기대하긴 무리일까? 어차피 이길 거라면 조금 더 고난, 위기를 끌어올린 다음 갈등 해소를 시원하게 시켜줘도 될 텐데 그렇지 않아 아쉬웠다. 아무래도 이번 3에선 1부터 이어 온 주제 의식의 완성을 더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쿵푸팬더2>를 보지 않은 채 예측하는 거라 오측일 수 있다).


<쿵푸팬더1>에선 '쿵푸'를 살렸다면 쿵푸팬더 3에선 '팬더'를 살렸달까. 1은 둔한 포가 '쿵푸'를 자신의 특기인 먹기를 통해 배웠다면 3은 자기 자신을 모른 포가 팬더를 만나 알게 되었다. 교훈을 살린 대신 액션이 줄었다.


전체적으로 웃음을 주는 양은 1과 비슷한데 포인트는 달랐다. 1은 다소 익살스러움이 있었다면 3은 그 자리를 귀여움이 채운다. 수많은 팬더들의 팬더다움에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전반적인 개그감은 탄탄하다. 


진정한 자아 발견에 관한 이야기


<쿵푸팬더1>에선 첫 수련 실패 후 자괴감에 빠져 시푸를 만나 토로하고, 때려치우려 한다. 이번에도 첫 가르침을 말아먹은 후 시푸와 이야기한다. 안 하고 싶어 하는 포에게 시푸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용의 전사' 타이틀이 있는 지금이 좋다는 포. '넌 네가 누군지 몰라, 용의 전사가 뭐냐? 자신이 누군지 알면 할 게 있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는 시푸. 


시리즈 처음 '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는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다. 기는 자신이 누군지 알 때 나온다. 자신이 누군지 알 때 그의 삶에서 생기가 돈다. 팬더가 우그웨이를 도와줄 때 기를 썼듯, 자신이 누군지 알고 모두 포를 도우려 할 때 기를 사용한다. 자기  인식뿐만 아니라 공헌감이 있을 때 '발현'되며 진정한 자아 발견은 그 둘의 결합임을 말한다. 자기 인식, 공헌감 등 <미움받을 용기>나 아들러 심리학에 나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자아 발견을 통한 포의 성장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아빠의 성장도 한 축에 있다. '리'의 등장으로 아들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한 아빠와 카이 때문에 다시 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리'.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 '독립' 그리고 한 성숙한 인격체로서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아빠로서 성숙해지는 '아빠들'의 이야기가 있다.


1과 3의 메인 빌런인 카이와 타이렁의 공통점은 '인정받지 못함'이다. 타이렁은 자기가 되고 싶은 용의 전사가 되려 했지만 우그웨이에게 인정받지 못해 돌아섰다. 카이는 '기'를 빼앗으려 한 건 계속 언급했듯 우그웨이보다 안 유명한 것에 열등감을 느껴서일 것이다(둘 다 우그웨이에게..). 1,3 두 시리즈는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존재감을 느끼는 자아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정욕이 강해지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암시한다. 


카이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보다 자신을 타인이 얼마나 아는지가 중요했다.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욕구가 커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게 '기'이지만, 자기 자신을 모르게 되면 기가 사라지고 생기도 사라진다. 카이는 자아를 남의 인정에서 찾으려다 생기가 사라진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다.


자아 발견 = 자아 인식 + 타인 공헌


포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팬더'를 배운다. 1에서 자기 특기를 알았다면 3에선 자기 정체성을 알아간다. 포는 아들로만 남기보다 '용의 전사'로 정체성을 찾는다. 지키는 것, 돕는 것이 자기 존재 의의이자 소명이라는 걸.


혼자 카이와 맞서려 하다 함께 해보기로 한다. 처음에 자기가 배운 대로 해보려 하지만 팬더들을 못 따라온다. 그런 수련은 팬더답지 못하다. '팬더다움'이 거의 없는 포의 가르침(가르치는 실력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팬더들은 힘들어한다. 결국 포에게 "'너'처럼 할 수 없어"라는 말한다. 그때 포는 깨닫는다. 자기(포)처럼 할 필요 없다고, 각자 자기답게 하면 된다는 걸. 1에서의 주 교훈도 그거였다. 용의 전사의 비밀은 '자신'의 힘을 깨닫는 것. 딱히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게 아닌, 누군가 되는 게 아닌, 자신이 되는 것. 


자기 자신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할 일이 생긴다. 포는 용의 전사이자, 사부로서 정체성을 찾았다. 자신을 인식하고 '팬더'들을 인식한다. 그들 각자의 '자기다움'을 발현시켜주려 하자 잘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의 자기다움을 발현하게 도와줄 때 오히려 진짜 자기다움을 알아가는 포. 1에선 먹는 걸 좋아하는 포의 특성을 알고 그걸 통해 쿵푸를 가르쳐 용의 전사로 발현시켜준 시푸가 있었다면 3에선 각 팬더의 특성을 발현시켜준 사부 '포'가 있다.


교훈전달은 이 시리즈로 정점을 찍는구나 싶었다. 남처럼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그리고 남을 돕는 것을 통해 자아 발견하기 위해선 타인의 인정욕을 이겨야 한다. 


영혼계에 포가 가있는 동안 인간계에 남아 있는 '꽃'. 그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시들어가는 꽃을 살리려면 '기'가 필요하다. 기는 자신을 알아야 쓸 수 있지만 동시에 남을 도울 때야 쓸 수 있다. 진짜 자아 발견이 왜 자기 인식과 타인 공헌인지를 설명해준다. 다른 이들의 기가 있어야 포는 산다. 포가 그들의 자아 인식-아빠, 친구, 팬더들-을 돕고, 진짜 자아를 발견해 기를 쓸 수 있는 이들의 기로 포는 각성한다. 우린 서로 도와야 하며 서로 돕는 관계 안에서 자기를 찾는다


그러면서 포는 자신이 아들이고 팬더이자 용의 전사이며 사부라는 것, 모든 게 자신임을 알아차린다. 단순히 자리, 입장, 상황으로만 규정되는 게 아니다. 관계 안에 있는 전 존재가 자신이다. 모두가 자기 존재 의의를 알고 살아가는 삶을 그리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쿵푸팬더 트릴로지


<쿵푸 팬더1>이 '쿵푸'를 통해 자기 특기를 아는 이야기였고 <쿵푸 팬더2>가 '팬더'로서 정체성을 았다면  <쿵푸 팬더3>은 그 둘을 융화시키고 관계로까지 승화시킨 '쿵푸 팬더'에 관한 이야기이다. 4가 나올까? 흥행이 잘 됐다고 나올 수도 있지만, 지금이 딱 이란 생각을 한다. 


설날, 그리고 연휴가 지나도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기면서 또 자신을 차근히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의 독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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