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칵테일 같은 히어로물
영화를 다 보고 비견할 바 없는 새로운 히어로물이라고 생각했다. 기존 히어로물의 주인공과는 아예 다른 포지션이었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배트맨 등. 나뿐만 아니라 광고 카피나 다른 이들의 후기에서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영화란 평을 자주 봤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이 영화에서 느낀 차이를 만드는 매력을 3가지 정도 추려봤다.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제작하고 출연한 모든 관계자가 소위 약을 먹은 것 같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유머, 장난, 드립이 가득하다. 한순간도 지루하거나 슬프거나 진지할 틈을 못 견뎌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에도 지루할 틈 없게 진행한다. 혹여 늘어질 것 같을 때는 데드풀이 어떻게든 유머를 던져 분위기를 바꾼다.
특히 다른 영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을 소재로 개그를 하는 게 잔뜩 있다. 나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를 보고 에일리언의 리플리라고 하거나, 엑스맨 자비에 이야기에 패트릭 스튜어트(엑스맨1 자비에 역)이냐 제임스 맥어보이(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자비에 역)이냐고 묻는다. 아마 미국 문화를 알면 알수록 재미를 느낄 것이다.
데드풀은 몸이 다 부서져도 입만은 남아서 끝까지 깐죽거릴 것 같다.
일반 히어로물과 차별적인 느낌이 든 요인을 세 가지로 보았다. 하지만 각각 요소는 크게 튀진 않는다. 하나는 관객과 대화하는 기법. 이건 전에 리뷰한 <빅 쇼트>에서도 보여준다. 많이 사용하진 않아도 특이한 기법은 아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발전시켜서 영화 주인공이 영화 제작을 주제로 조롱 어린 농담을 던진다. 처음부터 제작비 지원한 이들을 호구라고 하거나, 엑스맨 다른 배우들 출연료 낼 돈이 없어 둘만 나왔다거나. 이것도 크게 특이한 건 아닌데 예를 들 영화가 생각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적당히 나쁜 녀석 컨셉이란 것. 사람 때리고 죽이는 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이는 데드풀도 자기 디스로 쓰는데, 울버린과 겹치는 역할이다. 심지어 능력도 비슷한 모양이라. 잘은 몰라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계속 의식한다. 울버린 가면을 쓴다거나.
영화는 영화 안에서만 대화해야 한다거나 히어로는 히어로다워야 한다는 각각의 클리셰를 뒤틀었다. 뒤틀린 클리셰 자체도 이젠 식상한 느낌인데 이걸 한 번에 섞으니 색다르게 느껴진다. 세 가지의 특이한 거로 유명한 양주를 가지고 아예 새로운 칵테일 레시피를 선보였달까. 여기까지만 해도 다들 '다르다'란 말을 찬사로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굉장히 잔인하고 일반 히어로물보다 다소 선정적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익살스럽게 표현해서 잔인한 부분도 웃기게 보인다. 달궈진 시거잭(차에서 담뱃불을 붙일 수 있게 하는 작은 도구)을 상대 입에 넣어놓곤 삼키진 말라고 한다거나. 데드풀 본인은 이 영화를 러브 스토리라고 이야기한다.
히어로물이 성인 관람용으로 나오면 흥행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낮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기 좋은 주제니깐. 이 영화는 약점일 수 있는 부분을 강점으로 바꿔 버렸다. 성인만 볼 수 있다면, 진짜 성인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단 의지가 보인다. 일반적으로 히어로물은 해봐야 15세 관람가다. 그렇기에 다른 히어로물이 표현할 수 있는 잔인성이나 선정성 표현의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성인 관람 영화로 만들면 흥행에서 다소 제약이 걸리지만, 한계로 보였던 표현 제약이 그 덕에 풀린다. 덕택에 데드풀은 그냥 히어로물과 다른 노선을 걷는 정도에서 아예 뛰어넘어버릴 수 있었다. 많은 히어로물이 놀고 있는 전체 관람가부터 15세 이상 관람까지를 벗어나 아예 독보적인 자리(NEW CLASS)로 올라간 것이다.
만약 청불 영화가 아니었다면 색다른 칵테일이 아니라 일반 음료수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19세 이상이 즐기는 '알콜'이 들어가면서 '바'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료수가 되었다. 어른들에게만 팔 수 있다면 어른들만 즐길 수 있게 하자, 화끈하게 즐겨보자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 수는 먹혔고 성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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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무엇보다 그걸 추구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보고 나면 언급한 것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왜 다른 느낌이 들었는지 나와 다른 부분을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어지간하면 지금까지 히어로물과 다르다는 생각엔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히어로물을 다 마실 수 있는 일반 음료수에서 성인만의 세계로 끌어올렸다. (잔인함과 선정적인 것에 거부감이 덜 하다면) 영화 보는 2시간 내내 웃다가 웃으며 나올 수 있을 것이다.
p.s 무엇보다 자기들도 자기들이 NEW CLASS에 올라갔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