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근처에 넓은 도로가 있다. 넓이에 비해 꽤 한산하다. 최근 들어 횡단보도를 정비하고, 횡단보도만 있던 길에 없던 신호등이 생겼다. 그 전엔 그냥 차 오는지 보고 건너는 길이었다. 차가 별로 없었으니까. 이렇게 차도 없는데 웬 신호등을 두나 했다.
오늘 평소 오는 시간대가 아닌 때에 이 길로 오게 됐다. 처음 보는 광경을 마주했다. 차가 길게 늘어서 정체현상이 살짝 있었다. 신호등이 없다면 길 건너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차들이 계속 달렸다.
나는 아침 저녁에 주로 지하철을 타고 다녀 여기로는 오전 오후에 거의 오지 않는다. 이 길로 올 때는 다른 곳에 갔다가 걸어오거나 할 때라 대개 밤늦게에 지나간다. 내가 다니는 시간대엔 이 길에 차가 몰릴 일이 없던 거였다. 당연히 나는 내가 본 대로 이 길이 한산한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한 눈에 구체인 지구를 볼 수 없듯 사람도 한 번에 다 볼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생각할 때 내가 이 길에 대해 쉽게 단정지은 것과 비슷한 태도를 갖곤 한다. 우리들도 시간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는다. 내가 만난 그 사람이 다른 때, 장소에서 보면 내가 못 본 모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우린 우리가 보고 들은 것으로만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좋은 모습보단 아닌 모습으로 단정 지을 때가 있다. 때때로 우린 실수에 단호하며 잘못에 엄격하다. 그리곤 그가 원래 그런 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하필 그시간 그 장소에 있어서 그런 모습을 보여줬을 수 있는데. 우리가 한 눈에 구체인 지구를 볼 수 없듯 사람도 한 번에 다 볼 수 없다.
내가 누군가를 생각할 때 너무 한 단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한 건 아닌지 생각해봤다. 누군가 나의 부족한 단면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게 부당하다면 나부터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지 말자. 보인 면은 한 면일 뿐이다. 그 사람이 가진 여러 면을 보는데 걸릴 시간은 내 생각보다 더 길 것이다. 혹시나 부정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다른 면이 없는지 찾아보자. 내가 못 본 시간대와 장소에 따라 길이 달라 보였듯 그 사람도 그럴 수 있다. 내가 먼저 해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