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지

여행 가기 직전에서야

남매가 동행했던 생생한 이야기 ep 000

by 채민씨

프롤로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갈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필로그


여행을 준비하기까지

5월 31일부터 7월 3일까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포르투갈 포르투와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와 바르셀로나까지. 친누나와 함께 한 달 넘게 집에서보다 훨씬 가까이 붙어지내며 시시때때 요절복통 사사건건 좌충우돌하였다.


본격적으로 여행 이야기가 나온 건 3월쯤이었다. 자주 항공권을 확인하던 누나가 유럽 항공권이 싸게 나온 게 있다고 했다. 싸게 나왔지만, 비용이 비용인 만큼 갈까 말까 고민했다. 하루가 다르게 티켓 값이 오르고 있어 그만 얼떨결에 가기로 하고 샀다. 기간은 한 달 동안. 아직 별로 실감 나지 않았다. '실감'을 직전 혹은 가서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라 그냥 그때 가면 되겠지 싶었다. 훈련소 들어가서도 3일 지나서야 실감이 났으니.


4월쯤 구체적인 여행 코스를 정해보려 했다. 나는 한 여행지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휴양지 개념은 아니었다. 유럽 한 군데에서 정착하듯 단골 식당과 카페 하나 정해서 매일 여유롭게 거닐다 밥 먹고 커피 마시며 글 쓰고 싶었다.


정착할만하게 끌리면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나라가 어딜까를 생각했다. 글 써야 하는데 누구나 다 가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소재가 겹칠 것 같았다. 포르투갈. 주위에 유럽 다녀온 이들 중에 여기에 가거나 가서 오래 있거나 한 사람이 없어 보였다. 포르투갈. 이 네 글자를 입에서 우물거려볼 때 코드가 맞을 거 같단 식감이 느껴졌다.


한 달 동안 한 나라는 질릴 수 있으니 주로 2개의 나라에 힘을 주자고 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영국으로 들어가니 일단 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조금 넣었다. 영국에서 포르투 가는 것보다 파리에서 가는 게 훨씬 쌌다. 유로스타 타고 파리 가는 데 또 그냥 안 들르기 뭐해서 아주 조금만 넣었다. 누나가 영국과 파리를 알아보다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단 생각이 든 것 같다. 나는 (이제야)스페인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론다와 말라가, 모로코까지 알아보았다. 이래서 처음 여행 가는 사람들이 처음 동선 짤 때 한 달에 20개 도시를 가게 짜는구나 싶었다. 한참 루트를 늘리다가 현실로 돌아와 다시 대폭 줄여 지금의 동선을 정했다.


시간이 흘러 5월이 됐다. 여태껏 누나만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실감 안 나니, 그다지 가고픈 마음이 없었다. 갈등이 생겼다. 누나만 준비한다는 거에 누나는 감정이 상해 있었다. 당연히 그럴만했다. 내가 계속 이런 상태면 얼른 취소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그랬다간 미래의 내가 걷어차러 왔을 테다). 갈등을 풀기 위해 누나와 이야기했다. 누나가 가진 기대를 듣고 그동안 해온 노력과 고생을 들었다. 거기에 남매가 함께 한 달 동안 여행한다는 건 앞으로도 거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정신머리에 뺨을 치고 마음을 고쳐먹고 준비해서 가기로 했다.


고쳐먹고 준비하려고 보니 비용과 숙소, 교통과 이동 동선은 누나 혼자 이미 거의 다 했다. 나는 아주 조금 보탬이 된 정도. 빙산에 눈덩이 조금 얹은 정도랄까.


가기 2주 전 카메라, 외장 하드, 스트랩 등을 내가 담당하여 샀다. 소니 RX100MK3라는 모델이었다. DSLR도 있긴 하지만 좋은 렌즈가 없었다. 렌즈가 있다 해도 계속 들고 다니며 찍을까 하는 회의도 있었다. 1달 정도 여행이면 가볍고 웬만하면 알아서 찍어주는 똑딱이가 나을 것 같았다. 외장 하드는 2TB에 혹시나 해서 충격흡수 케이스까지 샀다. 미리 준비하길 잘한 아이템 중 하나다.


티켓과 숙소, 교통 등을 준비하면서 재정에 변수가 많이 생겨 정말 엎어질 위기도 있었다. 괜히 미리 간다고 말했다가 엎어지면 괜한 다른 낭패가 생길 것 같아 안 말했다. 가기 직전에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떠났다.


나는 여행지에서 카메라 담당, 디카로 사진을 찍고 탭에 옮기고 지도 보며 길 찾는 가이더 역할을 한다. 누나는 재정 및 총무. 각자의 역할을 맡고 출국 전날까지 떠날 준비를 한다.


여기까지 쓰기까지


돌아오자마자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여행기 전에 여행하는 내내 글을 쓰고 싶었다. 여행 중엔 글을 쓸 체력이 안 되었다. 틈틈 메모만 하고 자기 전에 잠깐 살을 붙이거나 그냥 바로 잤다.


돌아와서는 시차 적응한다고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오늘 새벽 4시였다. 슬슬 잠이 들락 말락 할 때였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생활을 얼른 끝내야겠단 경각심이 확 일어났다. 여행 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그 느낌을 안고 살고 싶지 않았다.


여행 가기 전 지독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쓰던 글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행 준비를 위해 무언가 하긴 했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기력하고 무력했다. 뇌는 거의 마비되었고 몸은 멈춰있었다. 가장 역동적인 일이래 봐야 화장실 다녀오는 일 아니면 밖에 뭘 사러 가는 일이었다. 그 외엔 방에 있었다. 할 일이 없었고 여행 갈 돈 외에 여유도 없어 집에만 있게 됐다. 갈수록 무기력 늪의 늪에 저항 없이 더욱 빠지고 있었다.


정말 꼭 필요한 일 하는 것 외에는 무기력하게 있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계속 수면 시간은 엉망이 되어갔다. 새벽 4시 정도까지 컴퓨터를 하곤 했다. 딱히 생산적인 걸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시간 소모와 소비만 했다.


새벽 4시에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나는 생활 속에 '이건 좀 진짜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때야 내가 무기력함에 휩싸였음을 알게 될 때였다. 그때 마침 <문제는 저항력이다>, <문제는 무기력이다>란 책을 알게 됐다. 없는 돈 끌어모아 바로 사서 읽었다.


정확히 내 상황이 저자의 경험과 일치했다.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의무와 또 해야 하는 걸 아는 책임이 하기 싫다는 마음과 치열하게 붙었다. 몸이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졌다. 내면의 갈등이 외면의 활동을 잡아먹은 것이었다. 저항력이 많이 낮아졌기에 더더욱 내면의 전투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책 후반부에는 심리학 이야기와 사례가 나열만 된 느낌이라 후루룩 읽었다. 해결 방안이 직관적이지 않고 복잡하게 소개되어 결국엔 뭔지 이해 못 한 채 읽어내며 책을 덮었다. 괜찮았다. 내 상황이 어떤 증상이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 무언가 힘이 났다. 만화에서 종종 주변에 안 좋은 에너지 혹은 독 기운에 걸려있는 걸 모르는 주인공이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해결책을 찾거나 해결되듯. 늪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이 늪에서 벗어난 게 여행 가기 한 주 전쯤에서였단 것. 두어 달 가까이 늪에 빠져 있었다. 너무 늦게 나왔다. 여행 준비는 거의 누나가 다 해버렸다. 내가 한 건 없었다. 나는 가서 똑띠 단디 해야 했다.


한 달이 흘렀고 이제 나는 같이 걸어온 과정을 써야 한다. 함께 각자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만큼은 제대로 해야 한다 싶었다. 함께 같이의 여행을 준비하는 걸 엉망으로 했으니. 돌아오고 2일이 지나는 동안 시차 적응한다고 계속 뒹굴거렸다. 이제야 적어본다. 여행을 떠나면서 여행기 첫 글은 떠나기 직전까지 내 모습을 적겠다고 정했다. 그땐 내가 뚫고 온 찌질하고 찐덕거리고 찝찝한 시간의 터널에 관해 쓰려고 했다. 사람이 간사한 게 시간도 공간도 멀리 지나니 안 그랬던 것처럼 가물가물하더라.


그러다 새벽까지 또 잉여롭게 있는 내 모습에 다시 그 터널로 가는구나 싶으니 몸서리치며 일어났다(얼른 자야 했지만.. 각성해버렸다). 그 덕에 글을 쓴다. 하지만 그때 그 생각을 쓰면 다시 돌아갈까 싶다. 이젠 늪에서 나와 햇볕에서 거니려고 한다(이번 달 내내 비가 올 것 같지만).


여행하기 전부터 김칫ㄱ..머릿속에 맴도는 멋진 출간의 계획들을 본다. 애초에 완성된 초안을 쓰고 싶단 마음, 프롤로그부터 완벽히 까리하게 쓰고 싶단 생각이 가득하다. 다 발밑에 집어넣고 일단 쓰기로 했다. 남은 여행 글감들은 일정 별로 진행되지만, 날짜별로 딱딱 맞춰 쓰지 않으려 한다. 시공간별로 적되 그때 느낀 생각들을 곁들인 주제 위주로 쓰려고 한다. 에필로그까지 쓰는 것 또한 일종의 작문 여정이겠지. 그때까지 다른 늪에 빠지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자신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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