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재즈야 충돌하고, 화해하고, 정말 흥미롭다고
영화 속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넘치는 에너지로 압도한다. 생기 있는 문화는 모두 넣으려 한 것처럼 플라멩코부터 힙합까지 나온다. 열정적인 합창과 칼 같은 군무를 통해 피 끓는 흥이 느껴진다. 차가 막히는 현실에서 영화 같은 시간을 보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영화와 현실을 오가는 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이렇게 풀겠다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눈을 뗄 수가 없게, 숨을 쉽게 거둘 수 없는 장면 장면들이다.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가 포스터 카피던가. 영화를 보면서 정말 아찔한 놀이기구가 내려가기 전 멈췄을 때의, 사랑하는 이에게 처음 마음을 건네고 답변이 입술에 걸쳐 밖으로 나오기 직전인 그때의 감정이 가득했다.
삶을 영화로, 환상은 현실로
<라라 랜드>는 삶을 영화 같게 한다. 그리고 영화를 끝내고 현실로 돌려보낸다. 황홀한 시작과 이루지 못할 꿈은 동시에 존재함을 알려 준다. 영화 같은 일상을 보여주며 내 삶을 영화로 만들어준다. 삶 곳곳에 음악과 흥, 뮤지컬이 들릴 것만 같다. 펼 꿈과 사랑의 현장에 뜨거운 곡과 차분한 연주가 있을 것만 같다.
영화 속 '영화 같은' 장면. 일상에서 '영화 같은' 장면을 꿈꾸게 한다. 일상 속 영화 같은 순간들을 그리게 한다. 그러면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영화인가는 질문을 하게 한다. 영화를 보기 전 JTBC의 <말하는 대로>에서 정중원 화가의 하이퍼 리얼리즘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영화를 보며 그가 말한 '하이퍼 리얼리즘'의 의의가 생각났다. 사진이 생기고 나서 미술계는 실물과 진짜 똑같이 그리는 '하이퍼 리얼리즘'이 생겼다. 사진이 있는 데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이 실제이고 실재인지 고민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현실의 '영화 같은' 부분을 모으고 간추려 만든 게 영화다. 영화가 허구인 건 모두가 안다. 동시에 우리는 영화에서 각자의 현실을 투영해 본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영화 같은' 부분을 그린다. 어느새 영화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삶의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액션 영화를 보며 운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공상 과학 영화를 보며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며 멜로 영화를 보며 로맨틱한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라라 랜드>는 영화다. 영화이면서 '영화 같은' 부분을 담기도 했고 '현실 같은' 부분을 담기도 했다. 지독히도 영화 같으며 사무치게 현실 같다. 초반 한껏 '영화 같은' 파티 장면으로 분위기를 올린다. 차가 견인되어 하이힐을 신고 터벅터벅 내려오는 장면을 통해 우리를 다시 현실로 견인한다. 시종일관 '영화 같음'과 '현실로 착륙'을 반복한다. 그 반복 곡선의 주기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실도 틈틈을 쪼개서 보면 영화 같은 부분이 있지 않던가.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지 않던가. 웃는 사진도 되짚어 보면 그 순간엔 꼭 행복하지만은 않고, 힘들기도 했지 않던가. 사람들은 길어지는 영상을 지루해 해서 짧게 봐야 한다. 짧게 편집된 개별 영상을 모은 게 우리가 좋아하는 영상의 대부분이다. 좋은 장면, 필요한 장면만 모아놓고 보면 우리의 삶도 충분히 영화 같다. 동시에 편집되지 않은 채 원본 영상을 쭉 이어간 게 우리의 실제 삶이겠다.
<라라 랜드> O.S.T 리스트이다. 강조 처리된 음악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들을 수 있다면 같이 들으며 읽으면 영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 Another Day Of Sun
2 Someone In The Crowd
3 Mia & Sebastian’s Theme
4 A Lovely Night
5 Herman’s Habit
6 City Of Stars (Pier)
7 Planetarium
8 Summer Montage / Madeline
9 City Of Stars
10 Start A Fire John Legend
11 It's over(라라랜드 연주곡 앨범 수록 제목) Engagement Party
12 Audition
13 Epilogue
14 The End
15 City Of Stars (Humming)(Feat. Emma Stone)
https://www.youtube.com/watch?v=CWnYIb2lqpo (이 영상 저작권 수익은 저작권자에게 갑니다)
<라라 랜드>는 형식으로 보면 뮤지컬 영화라 볼 수 있다. 음악을 통해 영화를 진행하며 음악 안에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담아둔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말하기도 하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첫 곡의 가사를 되짚어 본다. 떠나야만 했던 그 날을 떠올린다고. 용기인지 광기인지 모르지만, 화면 속 세상인 영화로 들어가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이 언덕을 넘어 저 높은 곳으로 가자고, 아무리 힘든 밤이 와도 아침은 다시 오고 태양은 새로 뜨니깐.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이야기구나. 모든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이 속에 가지고 있던, 우리가 품고 쫓고 있던 모든 꿈을 노래하는구나. 그 가능성의 실현을 노래한 거구나.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혹은 어딘가에 품은 꿈에 불을 지핀 후 영화는 미아와 셉스에게로 시야를 좁힌다.
미아가 파티에 가면서 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Someone in the crowd '사람들 틈에 그 사람'. 이 노래는 영화의 내용을 예측하게 해준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입에서 되새겨 보면, 이 가사가 정말 그대로 이어졌음을 안다. 내가 생각한 맛과는 달랐을지 몰라도.
가사 전부가 의미 있지만, 일부를 직, 의역하자면 '우연한 만남에 그토록 기다려온 기회가 있을 수 있다'라고 한다. 미아와 셉스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좀 더 힘써봐', '중요한 사람을 어디서 만날지 몰라', '눈에 띌 준비가 됐다면, 그때까지 온 힘을 힘써야지', '하늘도 돕는다는데' 미아는 미아대로 셉스는 셉스대로 서로에게 끌렸고 서로에게 눈에 띄기 위해 힘썼다.
누군가를 찾는 이들이 서로에게 누군가가 되어주는 이야기를 내포한다. 미아는 꿈을 향해 날고 싶다. 날 준비도 됐다. 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의 날개가 없다. 세바스찬은 꿈의 날개는 있다. 대신 날기 위한 발 구를 체력과 도약하기 위해 디딜 현실의 땅바닥이 없다.
'너는 그런 사람을 찾으러 가야 해, 너를 하늘로 올려줄 사람을, 네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사람을, 너를 날게 해줄 사람을, 네가 발견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곳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내가 나로 발견될 곳이' 미아와 셉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날게 해줄 존재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줄 존재였다.
미아의 꿈은 분명하다. 누구나 바라보는 배우가 되는 것. 사람이 많이 오면 어쩌냐 하고 걱정하지만, 사람이 많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누군가의 눈에 들길 바란다. 누군가가 정한 캐릭터에 맞춰 들어가려고 한다. 그것만이 배우가 될 길이라 생각했기에. 동시에 꿈은 있지만, 자존감은 계속 낮아지고 있었다. 날아갈 날개와 용기의 바람이 없었다.
셉스는 달랐다. 남의 캐릭터가 되지 말고 자기 캐릭터를 직접 써보라고 한다. 그랬던 적이 없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미아에게 든다. 미아는 곧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1인 극을 하게 된다. 셉스는 끊임없이 그 과정에 용기를 넣어준다. 그리고 미아가 꿈이 무너지려 할 때, 불길이 다 꺼지려 할 때 누구보다 슬퍼하며 분노하며 끄지 못하게 한다. 날아갈 수 있는 바람을 계속 불어준다.
동시에 셉스는 미아가 자기 캐릭터를 만들겠다고 하자 자신의 할 일은 다 했다고 한다. 셉스가 누나 파티에서 연주한 곡은 바로 사람들 틈의 그 사람, Someone in the crowd이다. 셉스는 자신이 그 사람이 될 것이다. 꿈의 날개를 달아줄 것이고 날아갈 때까지 바람을 불어줄 것이다. 셉스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셉스는 재즈를 사랑하지만 실제 삶은 무너져있다.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꿈은 큰데 노력은 없는 건 미아보다 셉스가 가깝다. 재즈의 꿈은 낭만적이지만 미납 청구서는 낭만적이지 않다. 미아와 상반된 길을 걷는다. 미아는 현실적이다. 일을 하면서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셉스에겐 할 수 있기 위한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 셉스는 준비된 게 없었다. 미아는 응원하지만 다른 제삼자가 보기엔 한없이 몽상이다.
셉스는 고정적인 연주도 없고, 저축도 하지 않은 채 클럽 열 생각을 하고 있단 생각을 미아의 통화를 듣다가 하게 된다. 미아의 통화가 셉스에게 현실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재즈 클럽을 열기 위해선 고정적인 돈이 필요하다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현실에 살지 못한단 생각에 키보드 연주를 하러 간다. 하기 싫은 음악을 하기 싫은 사람과 하기로 한다. 지키고 싶은 재즈의 꿈을 꺾지 않던 셉스는 눈 앞에 뚜렷해진 현실 앞에 꺾어버린다.
셉스는 자신이 걸을 재즈의 길이 과거에 머물러있는지, 키이스가 말하는 미래로 향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혼란에 빠진다. 미아는 밴드에 들어간 뒤로 영혼이 흐릿해지는 셉스에게 돈을 모은 뒤 클럽을 열라고 말해준다. 셉스는 정통 재즈 아니면 키이스가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 재즈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꿈을 현실에 착륙시키기 위해 할 작업이 있단 걸 몰랐다. 그것을 위해 꿈을 버리지 않아도 됐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지만 꾼 꿈을 이루려면 각 꿈에 따라 현실에 맞게 갚아야 한다. 미아의 꿈엔 '열정적인 끈기'와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용기'가 필요했다. 미아는 지속적인 오디션 탈락과 대놓고 당하는 무시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일인극이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고 악평까지 들었을 땐 완전히 무너졌다. 돌아보면 캐스팅 소식을 듣고 지원할 용기가 없었다면 미아는 영원히 배우가 될 수 없었을 테다. 캐스팅 때까지 꾸준히 오디션을 본 경험이 없었다면 자기 기량을 펼칠 수도 없었을 거고.
셉스의 꿈엔 '꿈을 위해 꿈을 잠시 접어둘 인내'와 '양자택일을 포기하기'가 필요했다. 하기 싫은 연주를 할 때면 누가 봐도 하기 싫은 것처럼 보인다. 하고 싶은 연주를 할 때면 이 사람은 이걸 위해 태어났구나 알 수 있고. 셉스는 타파스와 삼바를 보며 말한다. 둘 중 하나만 하라고. 셉스는 양자택일 주의다.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정통 연주를 못 하면 끝인 거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연주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엔 셉스의 꿈은 꺾인 정도가 심했다. 마지막에서야 꿈을 이뤄 날 수 있었지만.
결국 둘 다 모두 꿈을 현실로 녹여내는 데 벅찼다. 현실의 필터를 통과할 힘이 없었다. 고온과 고압을 통과해야 하는 에스프레소 한 잔처럼. 통과해야만 꿈의 한 잔이 현실에 나타난다. 미아에겐 숱한 오디션 실패와 관객 없음과 악평을, 셉스에겐 돈을 모으기 위해 하기 싫은 음악을 하기 싫은 사람과 연주해야 함을.
둘이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둘은 날개를 못 달았을지 모른다. 그만큼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중요했다. 이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하나하나 의미심장하다.
미아를 만나 처음 이야기한 뒤 셉스가 혼자 부르게 된 곡 'City of stars'.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반짝이는가. 눈에 안 보이는 게 너무 많다. 누가 알까 이것이 황홀한 그 무엇의 시작일지 또 하나의 이루지 못할 한낱 꿈일지.’
둘의 만남은 황홀한 그 무엇의 시작이었으며, 또 하나의 이루지 못할 꿈이었다.
둘의 시작은 재밌다. 교통 체증에서 처음 만나, 재즈를 싫어하는 미아가 문득 재즈 연주에 끌려 들어가 만나게 됐다. 파티에서 다시 만난 뒤 둘은 서로 끌림을 감지한다. 영화같이 계속 마주치는 둘.
파티 후 같이 차를 찾으러 가면서 만난 황홀한 노을.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노을. 셉스는 인연을 주장하지만 미아는 거부한다. 그러면서 미아의 동작을 따라 하는 셉스, 맞춰가는 둘. 어느새 같이 탭댄스를 추며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아웅다웅 맞춰가겠다고, 합과 마음을 맞춰간다는 것을 춤과 음악으로 보여준다. 전형적인 키스 타임에, 분위기 좋을 때 온 전화. 감독은 영화 같을 때마다 이렇게 현실 복귀를 시킨다.
워너 커피숍에 있다고 한 걸 기억해 찾아간다. 셉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다. 자기 꿈에 대해선 환상 속에 사는 셉스지만 정말 사랑하는 걸 얻기 위해선 어떻게든 현실 안에서 이뤄낸다. 둘은 하루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한다. 영화 같이 헤어지는 둘. 서로 뒤를 바라보며. 마음 있음을 나타내며.
오디션에서 무시당한 뒤 기분이 꺾인 미아. 셉스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남자 친구 그렉과의 선약이 있었고 굉장히 불편한 자리에 있다. 연구목적이라면서 한껏 차려입은 셉스는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다. 전혀 안 들리는 대화 속에 들리는 셉스가 연주했던 곡. 바로 뛰쳐나간다. 마음을 알았기에. 셉스는 영화 집중 못 하고 계속 기다린다, 맨 앞으로 가서 셉스를 찾은 미아. 같이 앉아 보며 조금씩 움직이는 서로의 손, 살짝 스치는 손가락, 결국 깍지 낀다. 연구목적이라면서!
깍지 끼고 좋아진 분위기를 이어 (전형적인) 키스하려는 데 영화가 끝난다. 다시 현실로 복귀시킨다. 아쉬운 마음에 같이 본 영화에 나온 그리피스 천문대로 간다. 영화 속 장면으로 가서 영화 같은 만남을 시작한다. 그 처음 전류의 연결은 얼마나 설레던가. 그 서로의 체온을 처음 느끼는 맞닿은 찰나는 얼마나 길던가. 둘의 터지는 마음 같은 테슬라 코일을 보고 놀란다. 서로 마음을 안 드러내고 맞추는 탭댄스에 이어 이젠 같은 마음으로 왈츠를 춘다.
우주를 보며, 돌며 유영하는 둘. 우주 한가운데에서 춤을. 전 우주에 둘밖에 없다. 드디어 이제야 키스를 하며 사랑을 확인하고 뜨거운 사랑의 여름을 보낸다.
미아에게 City of stars 들려주는 셉스. 둘이 나누는 가사는 감미롭다. 서로가 서로에게 별과 같은 사이. 어쩌면 서로에게 빛을 비춰줄 사이지만, 서로 옆에 있어 줄 사이는 아니었음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꿈이 마침내 이뤄질 거란 예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랑, 눈보라 속의 빛, 누군가의 사랑, 설렘, 시선, 손길, 댄스. 다정한 목소리. 곁에 있어 줄 것.’ 둘의 꿈은 이뤄졌지만 서로는 둘의 꿈이 아니었단 걸 말하는지도.
둘의 사랑은 진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듯 미아는 사랑을 시작하며 대본을 쓰기 시작한다. 한여름 펼쳐진 둘의 사랑은 말 그대로 사랑을 보여준다. 일상의 영화 같은 모습. 둘의 사랑이 충만할 때 모든 순간이 영화임을. 춤추는 게 얼마나 아름답던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얼마나 멋지던가. 재즈클럽에서 샙스는 연주하고 미아는 춤을 춘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둘.
미아는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벽에 붙인 다른 배우의 포스터를 뜯어 버린다. 타인을 꿈꾸다 자신이 꿈꾸던 꿈이 되기로 한다. 결국 나중에 자기 얼굴이 벽에 붙여진다. 셉스는 처음 본 일인극을 극찬한다. 걱정하는 미아에게, 그깟 사람들이라고 꿈을 주고 응원하며 격려한다. 미아는 클럽을 지지하며 이름을 지어준다. 음표로 따옴표를 그려 ‘셉스클럽’으로.
셉스는 미아의 꿈을 불어넣고 이뤄가게 지지하지만, 본인은 정작 꿈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같이 영화 본 리알토는 폐장한다. 둘의 영화 같은 순간도 조금씩 무너져 간다.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 게 바쁘다. 사랑하기도, 살아가기도 벅찬 현실. 각자의 꿈에 치열 하느라 같이의 사랑에 소홀해진다.
셉스 공연에 온 미아. 전자 음악과 댄스팀을 보며 놀란다. 이건 셉스가 바란 꿈이 결코 아닐 거란 걸 아니깐. 걱정이 들어 계속 셉스를 바라보다 저항할 수 없이 점점 뒤로 밀려간다. 꿈을 꺾고 현실에 무릎 꿇은 셉스와 멀어진다.
바쁜 와중에 깜짝 이벤트를 하러 온 셉스. (큼직한 이벤트 한 번 보다 평소 꾸준한 연락이 더 중요하다던 글로 배운 연애 이론이 문득 생각난다) 둘은 대화한다. 지금 하는 음악이 좋냐는 미아의 질문,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는 셉스. 미아는 꿈을 죽이고 몇 년간 할 일인데 좋아야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셉스는 고정적으로 일하기 위해 버린 꿈이라고, 미아를 위해서 꺾었다고 생각한다. 울컥한 셉스는 미아에게서도 지지 받지 못하자 마음이 긁히고 독한 말로 돌려준다.
이전과 달리 완전히 철든, 현실적인 그러나 성공에 꿈을 바친 모습은 셉스 답지 않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냐는 미아의 질문이 깊숙하다. 미아는 셉스가 박수받을 때 반한 게 아니다. 그 열망, 열정에 끌린 것인데. 둘이 사랑하면서 시작한 각자의 꿈을 향한 노력은 꿈을 향해 다가가게 하지만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셉스는 사랑과 꿈의 구현을 위해 현실을 보며 꿈을 꺾기로 한다. 꿈을 태우기 위해 사랑을 연료로 쓴다. 여기서부터 모든 게 뒤엉키기 시작한다. 내 꿈을 버린 건지, 꿈을 위해 잠시 현실적인 부분을 찾아다니는 건지, 목적을 잃고 난 셉스는 사랑을 거의 다 소진한다. 자기 꿈을 이루면서 미아와 같이 가야 할지 서로 꿈을 위해 각자 해야 할지 함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미숙하다. 재즈를 숭배하는 셉스는 정작 삶의 재즈 연주엔 한없이 초보였다.
꿈꾸던 사람인 셉스가 현실을 깨닫게 되자 그 꿈의 실체가 어떤지 처절히 알게 된다. 셉스는 사람들 평가가 걱정되는 미아에게 걱정되냐고 반문한다. 결국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셉스는 미아를 위해 꿈을 포기했다지만 클럽을 포기한 건 아무도 안 올 거라는 미아의 말 때문이라고 한다. 미아에게 응원받지 못해서라고 말했지만 지금껏 그깟 사람들이라 말했던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꿈이 꺾인 게 진짜 꺾이게 된 이유란 걸 알았다. 미아처럼 사람이 한 명도 안 와도 꿈을 이룰 용기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더 쓰라렸다. 차라리 미아 탓을 하는 게 덜 비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미아는 사람이 안 올까 두려워하는 셉스에게 재즈에 대한 열정이 크기에 올 거라고, 사람들은 다른 이의 열정에 끌린다고 말하며 격려한다. 마치 재즈를 싫어하는 자신이 그 이글이글한 연주에 끌렸듯이. 미아는 돈 벌어 클럽 열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셉스는 오히려 진짜로 꿈이 이뤄질까 두려운 것이다. 정작 클럽을 열었는데 사람이 정말 안 올까 봐. 깊은 마음엔 꿈이 이뤄질까보다 진짜 두려움, ‘사람이 많이 안 오면 어떡할까’가 들킬까 두려웠다.
오븐 속 음식 때문에 알람이 울린다. 둘 사이에도 알람이 울린다. 오븐 속 음식은 돌이킬 수 없다. 둘 사이는 어떨까.
대망의 1인 연극 시작하는 미아. 동시에 뭐든 좋으니까 연주해보라는 사진작가의 요청에 연주를 하는 셉스. 짓궂게도 둘의 시작과 끝에 테마곡, 운명적으로 만나게 했고, 헤어지게 했으며, 다시 만나 헤어지며 들려준 곡을 연주한다. 몇 명 안 온 연극 후 악평을 듣게 된 미아. 완전히 무너진 미아, 가장 힘들 때 없던 셉스. 셉스가 다 끝나고 왔을 때 미아는 아무도 안 왔다고 말한다. 몇 명이라도 왔다. 안 온 건 셉스다. 미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셉스의 참석 여부였다. 공연 대관료도 내기 어려울 만큼 적게 왔어도.
약속 헷갈린 적이 있지만 미아는 늦었어도 왔다. 셉스는 끝까지 사진을 찍고 다 끝나서 왔다. 미아가 듣고, 결례를 범하면서도 극장으로 달려오게끔 한 곡을 직접 연주하면서도. 셉스의 마음은 이미 현실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했다. 둘은 끝났고 미아는 고향에 간다.
(후에 알게 된 사실_ 라라랜드 연주곡 OST에 이 연주곡 제목이 It's over 다. 오디션을 보게 하는 게 셉스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는, 둘의 관계의 종지부 라는 의미를 확실하게 표현한다.)
누나의 약혼식에 피아노 연주하는 셉스. 그가 연주하는 곡은 Someone in the crowd 그중에서도 마지막 절정 부분이다. 파티 후 듣게 된 오디션 전화. 미아를 찾기 위해 바로 뛰쳐나간 셉스. 도서관이 집 앞에 있단 이야기 하나에 찾아다녔다.
LA부터 볼더시티까지 대략 3-4시간 걸린다고 한다. 정확한 주소가 나오진 않았지만 3시간이라고 보자. 밤에 찾아온 셉스가 집에 갔다가 아침 8시에 나온 건 거의 잠을 안 자고 다시 왔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만나서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단 이야기를 한 번 한다. 그 후엔 집 정보를 거의 안 알려준 것 같다. 볼더시티에 도서관이 하나만 있다 해도 기억한 게 대단한 거고, 돌아다니며 도서관 앞에서 클랙슨을 울렸을지도 모른다. 셉스는 '꿈의 실현'에 대한 마음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겁다. 자신의 꿈이 꺾인 만큼 미아의 꿈으로 그 온도가 옮겨 갔을지도. 미아가 그 꿈을 접으려 하자 처음으로 크게 소리치며 화를 낸다.
셉스는 항상 미아를 만나기 전에 클랙슨을 울린다. 그리고 울리지 않을 때가 한 번 있다. 반드시 나올 거란 마음의 확신이 있을 때는 울리지만 없을 땐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자마자 클랙슨도 울리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고 출발한다. 이때 셉스의 마음은 정말 가녀린 한 가닥 줄이었을지 모른다. 마지막 오디션과 같았던 미아의 마음처럼.
‘꿈을 향한 마지막 오디션.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바보 같지만 철들지 않고 아파하는 가슴, 망가진 삶을 위한 이야기, 이모의 열정을 이어받은, 미쳐도 좋으니. 꿈꾸는 바보들의 이야기.’ 를 노래한다.
오디션 후 그리피스 천문대로 온 둘. 됐으면 좋겠다와 될 거라는, 미아는 가정형, 셉스는 확정형으로 말한다. 셉스는 미아에게 전력으로 될 거라 믿으라고, 모든 걸 쏟아부으라고 한다. 파리로 가라고 말한다.
미아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란 질문을 한다, 오디션 후 둘의 관계는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한다. 둘의 관계에 염증은 기다리지 못하고 출발한 셉스에게 이미 보였다. 3개월 리허설, 4개월 촬영, 둘이 멀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 기간에 이어 관계는 끝났구나. 자연스럽게 연락이 안 됐고 오래 만나지 못했겠구나. 그렇게 끝났겠구나.
낮에 간 천문대. 둘의 시작이었던 곳. 이제 보니 아름답지 않다. 밤의 환상이 지나니 현실의 낮이 보인다. 한밤에 개봉한 둘만의 영화는 한낮에 종영한다. 리알토 극장이 닫았듯.
자신의 꿈은 현실의 벽에 막혔어도. 엄청난 열정으로 도움을 준 그는 파리는 가지 않았다. 셉스의 역할은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었지 같이 나는 게 아니었다. 각자 날아가 내릴 곳이 달랐다.
꿈을 들고 현실의 벽을 통과하기엔 혹독하다. 사랑이 필요하다. 둘 다 사랑을 힘입어 꿈의 한 잔을 얻었다. 그 방식은 각자 달랐을지라도. 사랑하는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지만 만남의 의의는 거기까지였다. 둘의 사랑을 이어가길 바랐다면 둘의 사랑도 꿈꿨어야 했다. 둘은 사랑보다 꿈을 앞에 뒀고 각자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떠나야 했다.
미아의 남편이 가자고 해서 간 클럽. 미아가 해준 그대로의 셉스 디자인. 예전 집에 있던 것들을 세팅. 익숙한 물건들. 셉스가 어딨나 찾아보다 발견과 마주침. 각자의 꿈은 실현됐다.
슬픈 연주의 독주를 시작한다. 미아를 향한 미아만을 위한 연주. 셉스의 마지막 작별 곡. 연주하며 처음 만났을 때, 그때부터 있었으면 할 가능성으로 만남을 풀어간다. 곡의 테마가 있다면, 만약이라는 두 글자겠지.
모든 엇갈림을 이어짐으로 바꾼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처음 칭찬해줬을 때 바로 키스했다면, 키이스가 올 때 무시하고 둘이 있었다면, 일인극했을 때 만석인 데다 내가 있었다면, 같이 삶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오디션 후 파리에 같이 갔을 텐데, 쭉 함께 했을 텐데, 파리에서 하고 싶은 재즈하고 너는 배우의 길을 걸으며 같이 꿈을 이뤘을 텐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환상적이었을 텐데, 우주를 누비던, 우주에 둘만 있던 그때처럼 사랑했을 텐데, 그랬다면 우린 이런 가정을 이뤘을 텐데.
가능성 위에 가능성, 만약에 만약을 겹치고 겹쳤다면 그랬을 거야. 그러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거야. 미아가 배우를 꿈꾼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셉스는 '영화에서 봅시다'라고 말했다. 둘의 결혼 생활이 담긴 영화를 본다. 둘의 가능성이 그럴 수도 있음을 본다. 그랬을 수도 있었음을. 우리도 이럴 수 있었어.. 둘은 둘의 가능성의 영화에서야 보게 된다. 둘만의 영화를 보고 끝난다.
연주 끝나고 되돌아온 현실. 진짜 현실. 이젠 예전처럼 무턱대고 돌아올 수 없는 사이. 마지막 돌아보며 마주치는 눈인사. 고개 끄덕이며 인사하는 둘. 이걸로 됐다. 감독은 마지막 딱 한 번 뻔한 클리셰를 허용한다. 한 번의 영화 같은 찰나. 마지막 미소. 서로 날개를 단 채 잘 날고 있음을 확인하며. 진득한 환상과 지독한 현실.
이 곡은 두 가지 점이 특이하다. 하나는 기타로만 연주되며 다른 하나는 미아의 흥얼거림만 있다는 것. 셉스가 치던 피아노도 아니고 같이 불렀던 가사도 흩어졌지만 그 음악은 남았음을. 자신의 날개를 달아주고 날게 해 준 기억은 잊지 않았음을.
재즈는 꿈이야 충돌하고, 화해하고, 정말 흥미롭다고.
세바스챤
이 영화는 그냥 보는 영화가 아니다. 꿈과 사랑과 현실의 치열한 대결이다. 꿈과 사랑이 환상과 현실 속에서 재즈처럼 충돌하고 화해하고 타협하는 흥미로운 곳, <라라 랜드>. <라라 랜드>는 선곡대로 진행되는 영화다. 곡을 보면 영화를 본다.
내 인생의 선곡은 무엇일까. 정해져 있을까? 감독은 '우리 삶은 재즈야'라고 말한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다. 편한 음악이 아니다. 치열한 대결이다. 매번 새로 작곡하고 편곡하고 써야 한다. 충돌과 다시 타협하는 음악이다. 우리 삶도 그럴 것이다. 재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