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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Feb 15. 2017

사람답게 살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재심>

영화 속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재심>을 시사회로 봤다. 예고편만 봤을 땐 그냥 신파극인가 싶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실화를 극화로 한 영화란 걸 알게 됐다.


영화 구성은 평면적이라고 할까, 쉽게 짜였다고 할까 대부분 예측하기 쉬운 흐름으로 간다. 다 소개하지 않은 내용이 많고 흐름상 어색하진 않지만 갸우뚱할 만하게 삭제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잦다. 그럼에도 내용이 가진 힘이 있어 흡입력이 있다.


2000년 8월 10일 약촌 오거리, 사건의 발단이 되는 택시가 나온다. 그리고 헬멧 없이 오토바이 몰며 껄렁한 느낌을 풍기는 조현우가 엄마와 전화를 한다. 도로 한가운데 있는 사람을 피하려다 넘어져 쓸린다. 일어나니 서 있던 이는 안 보이고 택시 낌새가 이상하다. 가보니 택시 기사가 죽어 있어 경찰을 부른다.


월드컵 앞에 두고 범죄 소탕하라는 윗선의 결정, 제2의 범죄와의 전쟁이 있더라고 성과를 올릴 기회, 반장 소리 들을 수 있는 상황임을 말한다. 사건을 어떻게든 만들어 낼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그러다 현우가 다방 꼬마라는 걸 안다. 문신한 양아치니 범죄자로 잠정 생각한다.


오토바이 의자를 여니 검정고시 책 위에 있는 칼을 본 형사. 순식간에 범인으로 몰린다. 15년형,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는다. 현우는 맞은 얼굴이다.


타이틀이 나온다. 재심의 정의. 재심(再審)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중대한 오류가 있어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는 비상수단적인 구제방법.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무서운 현실


현우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부인하다가 자기가 죽였다고 시인하게 된 과정은 섬찟하다. 아무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는 곳에서, 법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이 법을 가지고 놀았다. 현우가 준영에게 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 지키는 게 맞냐고 항변하는 이유겠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법 위에서 일어날 수많은 초법적 불법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종류의 폭력이 구현되고 있을 거란 느낌이. 백철기 형사가 15년 전에도 지금도 같은 일을 하고 있듯이. 나도 언젠가 당할지 모른다 싶자 오싹했다.


우여곡절 속 성장, 성장의 우여곡절

영화는 크게 두 갈래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중심이 되는 현우가 준영을 만나 재심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현우와 준영이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현우는 복역 후 완전히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상태로 변했다. 술만 마시고 일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라고만 하는. 준영은 돈만 바라보는 변호사다. 한 건 크게 물어서 신분 상승하려고 하는, 그러다 쪽박 차서 지금은 힘든.


현우는 준영을 만나 법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준영은 현우를 만나 변호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다. 현우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몫을 해낸다. 어둠 속에 있던, 술 속에만 있었는데 빛으로 나와 땀 속에 있게 된다. 준영은 사람들을 '위해' 변호하기 시작한다. 만나서 아웅다웅하던 둘은 어느새 같이 일하기 시작한다.



마, 내가 이제 네 변호사다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일하기 시작한 현우가 처음 받은 일당 전부를 준영에게 의뢰비로 준다. '전부'를 맡은 준영은 현우를 전적으로 맡는다. 재심하는 날 준영이 현우 양복 넥타이를 매주는 장면은 엄마가 현우에게 교복 사주던 모습과 겹친다. 그리고 그때 마침 가족사진이 비친다.


현우에게 준영은 아버지, 형 같은 존재가 된다. 함께 재심 준비를 할 때 동경하듯 준영을 바라본다. 그리고 따라 한다. 도와주는 입장에서 함께 하는 동료가 된다. 그런 과정에 현우는 일할 생각, 검정고시를 볼 생각을 하게 된다.


준영은 현우를 도우며 변호사의 의의, 법의 의의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자기 일이 떳떳하지 않았던 준영은 처음엔 부인과 딸이 재판에 오는 걸 꺼렸지만 재심 때는 오길 바란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정의롭기에, 응원해주길 바랄 만하기에.


법 위의 사람들


누구보다 법대로 살아야 할 법과 관련한 이들이 법 위에 있다.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법을 알기에 이용하는 백 형사. 미성년자가 다방에 있어도, 경찰이 경찰에게 잡히는 거 봤냐며 대놓고 성희롱을 하기도 한다. 증거 인멸과 필요한 증거 조작을 마음껏 해낸다. 폭력과 협박으로.


최영재 검사는 진범이 살인 자백을 해도 자기 이미지가 훼손당할까 봐 묻는다. 그 당시 담당 형사는 증거품인 칼을 찾다가 영장 기각, 수사 중단 소식에 잡을 수 있는데 왜 안 잡냐는 절규를 한다. 억울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 진범을 잡았다는 것보다 자기 앞가림이 중요한 이였다. 진범이 자백해도 일부러 믿지 않는 아이러니가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끝까지 한결같다. 끝에 가서야 겨우 무언가 처벌을 받은 것 같은 단서가 나오지만 개운치 않다. 그 와중에 그들의 이기심 덕에 당한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건드리면 안 된다는 최영재 검사를 건드리자마자 현우가 형사에게 보냈던 자필 편지가 나온다. 반성하고 있다고, 자기가 죽인 것이라는 내용의.


현우가 편지를 쓴 건 어차피 뒤집을 수 없으니 형기를 줄이기 위해서 반성하는 내용을 쓴 것이다. 엄마 눈이 이때부터 안 좋아졌기에 15년에서 10년으로 줄이기 위해. 그냥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었기에.


초법적인 이들의 이기심 때문에 처한 상황. 독을 마시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이왕 옅게 마시려고. 마시지 않아야 했는데.


너 살인범 만든 거 우리라고, 우리들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들어온 증인 제보가 물거품이 되고, 엄마는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기 위해 현우를 내쫓는다. 사방이 꽉 막힌 상황에 바다로 달려가 절규하는 현우. 해가 지고 있다. 현우에게 지는 해만이 있는 걸까. 밤만이 현우가 누릴 수 있는 것일까. 뜨는 해를 마주할 수 있을까.


다 말아먹고 술 먹으려던 준영. 현우의 돈을 보고 각성한다. 현우는 폐업한 모텔에 가서 불법 취조 현장을 덮친다. 백철기 형사와 칼 들고 싸우려다 뛰어내린다. 진짜 죽일 뻔할 때 나타나는 준영.


'법으로 해결해라. 저 x발 놈을 잡을 수 있다.' 법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현우에게 통하지 않는다. '너는 살인범 아니니깐' 그 한 마디에 현우 마음이 울린다. 미안하다고, 한 번만 기회를 주라고. 증명해줄 거라고.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고, 그대로 죽어갈 수 없다고


모창환 변호사와 준영이 같이 술 마시다 술을 흘린다. 그러다 깨닫는다. 바지에 젖은 술을 되돌릴 수 없다. 무를 수가 없다. 현우의 날아간 시간, 인생, 가능성은. 그렇지만 그렇다고 놔둘 수는 없다. 살아가야 한다. 제대로 살아가야 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누명을 벗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재심을 하게 된, 하는 전체의 과정은 밤인 누군가의 삶에 아침해를 뜨게 해준다는 것으로 보였다. 모 변호사와 준영이 갈라섰을 때 싸운 주제가 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한지 살인범 누명을 벗는 게 필요한지. 영화는 준영을 통해, 현우의 삶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데 사람다움을 얻기 전에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다.


재심 날. 그림 그리는 현우. 화창한 날이다. 재심을 개시한다. 현우는 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증인이 되어 줄 수정이 왔다. 재심이 시작한다. 준영은 말한다. 조현우 변호를 하러 온 게 아니라고. 15년 전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지른 일에 사과하기 위해 와 있다고. 이 사과가 재판이 소년과 가정에게 새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무를 수 없는 비극적인 일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고, 그대로 죽어갈 수 없다고, 그래서 살아갈 힘을 내야 한다고. 우리는 우리의 힘듦보다 힘이 있음을 말한다. 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재심>은 모든 초법적 폭력의 피해자들을 위한 희망의 빛을 한 가닥 보여준다. 동시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음을 알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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