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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Mar 29. 2017

모든 것을 걸면 얻을 수 있는 것 <미스 슬로운>

영화 속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승률 100%를 자랑하는 최고의 로비스트 ‘슬로운’  <미스 슬로운> 카피가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났다. 이 영화는 이 카피 그대로를 보여준다. 승률 100%를 얻으려면 어때야 하는지, 자신의 모든 100%을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이기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영화는 청문회로 시작한다. 왜 청문회까지 오게 됐을까를 천천히 보여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모든 과정이 리즈 슬로운의 큰 그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리즈의 청문회까지 오는 큰 그림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묘사한다. 


초반 거물 빌 샌포드 의원을 만난다. 히튼-해리슨 법안을 두고 이야기하기 위해. 샌포드 의원은 이 법안을 반대한다. 총의 위험엔 총이 필요하다는 식의 계속되는 샌포드 의원에 총기 찬양에 리즈는 듣는 게 불편하다. 참다 참다 현웃이 크게 터진다. 무례한 웃음에 벙찐 의원을 말로 눌러 버린다. 워싱턴 손꼽는 권력자를 완전 눌러 버려서 회사 대표는 성이 난다. 


영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수정 헌법 2조.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미국의 헌법 전문가인 조지타운대 법대 피터 버니 교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선 총기 소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돼 왔다”며 “여기에는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관념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 위키 백과


이 '반드시 필요한 권리'인 총기 소유 권리에 관한 입장 차이, 그리고 그 차이에서 나온 히튼-해리슨 법안의 지지와 반대가 영화의 화두이다. 누구나 소유할 수 있기에 그만큼 총기 사고 일어날 확률이 올라간다. 그로 인해 총기 소유는 당연한 권리이며 누구든 살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 반한, 문제가 있을 여지가 있는 이들에겐 팔지 않는다, 신분 검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 임무는 이기는 거고, 난 어떤 수단이든 사용할 책임이 있으니까. 그걸 이용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없어”


히튼-해리슨 법안을 지지하는 측 로비스트 회사 대표인 슈미트의 제안에 제인을 제외하고 이직한 리즈와 그녀의 팀. 


두 회사는 모든 수단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한다. 리즈는 가자마자 전부 파악한다. 에스미라는 총기 사고의 피해자가 있음을 기억해두고 가까워진다. 미리 방송도 익숙할 수 있게 데리고 다닌다. 전 동료가 제안한 1:1 토론에 나가서 준비한 대본대로 두들겨 패는 중에 갑자기 대본에 없는 말을 한다. 감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다 에스미를 언급한다. 


싫다고 했어도 나가게 시켰을 것이라고. 이긴다는 목적에 수단은 상관하지 않는 리즈. 동료를 팔아서라도, 가장 큰 상처를 팔아서라도. 모든 면에서 '프로'구나. 압도적으로 이기는 법을 아는구나.


심지어 도청도 서슴지 않는다. 설령 5년형을 받는다 해도 이기면 된다. 리즈의 인생 전존재는 승리에 달렸다.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후 대책을 강구해야 하죠”


시종일관 통찰력을 보여준 리즈. 상대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해서 대책을 강구했다. 자기 팀에 스파이가 있을 수 있단 건 당연히 전제한다. 


핸드폰은 열심히 하지만 추적당할 SNS는 하지 않는다. 낌새가 이상하자마자 혹은 처음부터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전 직원을 감시한다. 회사 밖으로 데리고 나와 일부러 전 팀에게 가짜 정보를 흘려서 일하게 하기도 한다. 


에스미를 내보낸 토론도 상대가 토론으로 덤빌 것을 이미 알고 짠 판이었다. 상대가 청문회를 열 것이란 생각도 미리 했기에 제인을 심어 놓을 수 있었다. 낌새를 느끼자마자 인도네시아 건에 건수를 흘려 놓았다. 모든 촉각이 승부에 있다. 


설령 예측하지 못한 에스미가 당한 습격 등이 있다 해도 그다음 대책들을 찾아 나선다. 포드의 방문은 언젠가는 예측했겠지만 그 청문회에서 나올 줄을 몰랐던 눈빛이었다. 다만 그 또한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던 듯 덤덤히 받아들인다.


 

"정확히 파악해서, 모든 디테일을 알아"


리즈가 다니는 로비스트 회사는 쉴 새 없다. 리즈도 쉴 새 없이 중요한 말을 내뱉는다. 같이 일한다면 누구라도 언제든 깨어 있어야 하고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한다. I don't know라는 신입의 말에 팀 회의실 분위기가 싸해진다. 이런 상황 때마다 매번 들었던 것 같은 신부 수녀의 외설적 비유를 이야기한다. 요지는 정확히 파악해서, 모든 디테일을 알라는 것. 리즈는 그 말 그대로 하고 있다. 


상대가 약한 부분이 여성이란 걸 알게 되자 그걸 이용한다. 상대가 자신을 파악한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고 있다. 한 의원에게 질문해서 법안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여자 직원을 파악했을 걸 알고 있었다. 미리 그다음 카드로 의사 배우를 심어 놓았다. 지나가다 들은 의사들이 하는 페이스북 '독시미티'까지 가입해놓은 상태. 이 질문에 답하다 의원은 히튼-해리스 법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심지어 이 배우는 사비로 한 것. 돌아보면 보안을 위해 자기 선에서 알아서 한 것이다. 그게 철저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니깐.



처음부터 모든 것을 걸다


잠을 안 잔다. 잠 깨는 약을 먹는다. 그 덕에 불면증이 있는 게 아닐까. 16년 동안 먹었다고 했으니. 그녀가 그 세계에 뛰어들면서부터 아닐까 싶다. 모든 삶이 일에 초점을 두었다.


포드를 만나면서도 말한다. 일 대신 다른 걸 택했다면 얻었을 것을 지금 이렇게 누리는 거라고. 육체적 관계만을 누리려고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인간적 관계 아니었을까.


애초에 자신을 연료 삼아 모든 걸 태우는 방식이었다. 거기에 동료들과 상대까지 다 연료 삼아 넣었던 것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이 바라는 목적지까지 어떻게든 가는 게 리즈의 방식이었다.


신념 있는 로비스트는 자신의 승리만 믿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 선지 총기 규제 법안을 지지하는 리즈 슬로운. 결과적으로 감옥에 들어간 모습은 패배한 것 같지만 이기고자 한 상대를 이겼다. 패배하면서 승리할 수도 있다.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의 승리만이 승리는 아니다. 정말 최우선 순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리즈 슬로운에겐 히튼-해리슨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로비스트로서 커리어가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의 승리도 아니었다. 자신을 걸어서 이뤄냈다. 그렇게 졌지만 이겼다.


모든 것을 걸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 그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성이라 할 만한 모든 것을 다 걸어 무엇을 얻고자 한 걸까. 리즈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붙을 만한 상대로 히튼-해리슨 법안 통과를 정한 것 같다. 누구도 이기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걸 걸고난 뒤 리즈는 달라졌을까? 10개월 후 방문한 변호사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번 승리 때문에 커리어가 죽었다는 말에 리즈는 일 때문에 자살 직전이면 커리어를 죽여야 한다고. 뒤집으면 커리어를 죽이면 살 수 있단 말 아닐까. 


승률 100% 라는 말을 지켜냈다. 모든 것을 걸어서 커리어를 지켰고, 모든 것을 걸었기에 커리어를 잃었다.


출소한 후 회색 벽 속에 생기 넘치는 주홍빛의 옷을 입은 리즈 슬로운의 모습을 본다. 모든 걸 걸고 이기고, 남은 게 없는 상태가 된 지금이 오히려 살아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리즈 슬로운만큼 모든 것을 걸어서 얻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가.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슬로운처럼 모든 걸 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했다. 영화에 나온 많은 로비스트, 총기 법안, 정치 이야기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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