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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Sep 19. 2017

세상의 이면에 직면한 시인 이야기

 

영화 속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영화는 크게 시인, 아내, 소년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아내와 소년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이 글에서는 시인을 중점 두어 시인의 시, 시인의 사랑, 시인의 삶 부분으로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시인의 시 : 누구도 이해할 수 없던 시인의 상상 속 언어


영화 속 시인은 모든 것의 의미를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시상의 필터를 거쳐 받아들였다.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너의 마음속에 헤엄치는 날이 있었지'라며 속으로 말한다.


시인은 시적으로 보지만 시적으로 살 수는 없었다. 그의 삶은 시를 빼면 영 아니었다. 시인은 시를 떠올리는 것 외에 삶 대부분에서 수동적이다. 


대부분 시간을 게임으로 보내면서 돈을 벌 능력은 없고, 밥도 제대로 차려먹을 수 없어 아내가 밥을 차려주어야 겨우 먹었다. 밤일도 아내가 주도해야만 했다. 영화에서는 경제적인 부분과 성적인 부분을 주로 부각해 시인의 수동성을 표현한다. 


시인은 시의 세상에만 사는, 공상 혹은 이상에서만 사는 사람이었다. 현실 감각이 거의 없었다. 그에게 현실은 이상 속에서 시를 쓰는 데 방해만 한다. 상상 속에서 시를 떠올리려 하지만 아내의 화장실 소리에 끊겨 버리듯. 


시만 쓰는 사람이니 시를 잘 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딱히 상을 타 오거나 시집이 팔리거나 하지도 않는다. 합평회에서도 시인은 혹평을 듣는다. 친구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내 또한 시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시는 누군가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부도 만들지 못했다.


그의 시는 현실과는 무관한, 현실에선 누구도 이해 못 하는 시인만 이해하는 상상의 언어였다.


그러다 그의 시의 세계가 갑자기 바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시인의 사랑 : 수도 적은데 활동도 하지 않은 그의 정자 같은 일상을 활기차게 바꿔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시인. 시도 쓰는 둥 마는 둥 게임만 하던 그가 무기력의 끝을 보일 때 생겨난 도넛 가게. 좀비 같던 그가 도넛 한입 물고 나자 활력 넘치게 바뀌었다. 


도넛에 푹 빠진 그는 도넛을 먹기 위해 뛰어다닌다. 운동도 안 해서 살쪘다고, 초등학생들한테 놀림당하던 그가 도넛을 먹기 위해 전력으로 뛰었다. 뛴 것 이상으로 도넛을 먹어서 살은 안 빠지겠지만. 


도넛을 먹으면서 달라진 점은 그의 삶에 생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저 상상으로만 쓰던 시를 이제 직접 노트에 적어가며 쓰기 시작한다. 맨날 하던 게임도 끊고 본격적으로 아예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작업에 몰두했다.


동시에 생겨난 생기 덕에 그에게 사랑의 감정도 생겼다. 창밖에 있던 할아버지를 보며 '할아버지도 고아구나'라고 읊는 도넛 가게에 일하는 소년을 보았다. 그가 자신과 동류임을 직감하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


꽃 노래만 부르던 자신과 다른 현실적인 시상을 떠올리는 소년. 세상의 이면에 직립해 사는 소년은 시인의 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소년의 간접적인 도움에 시인은 합평회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시인의 시가 사람들의 이해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소년을 알면 알수록 빠져든다. 소년은 일상에서 시를 떠올리는 것 이상으로 자신과 동류였다. 둘 다 아픈 아버지 병시중을 했다. 그러면서 생기는 고통을 시인을 겪었고 소년은 겪는 중이었다. 


시인은 과거 고통의 결과로 시를 선택했다. 시인이 되고 싶다던 학생에게 시인이란 남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자신의 시 속에서 남으로 만들어, 시가 대신 울게 했다. 자신을 둘러싼 힘든 현실을 마주하길 피했다.


소년은 고통을 직면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시인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운 시기에 빠져 있었다. 그 와중에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아내와의 갈등도 심화한다. 시인도 갈팡질팡하며 소년과 멀어졌다. 소년은 버림받은 기분, 동정받는 기분을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원래 시인에게 사랑은 시의 소재였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주제로 시를 쓰던 그였다. 그 사랑에 처절해 보지도 않았다. 아내가 그에게 말했듯 시인에겐 이루어지지 않는 '비극'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이제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사랑이 생겼다. 생겨버린 이상 어떻게든 처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루려 해도, 이루는 걸 포기해도 시인에겐 너무나 고통스럽다. 


이제는 상상 속에서만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됐다. 지금 감정은 그에게 소재가 아니라 실재였다. 그는 이제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해야 했다.


시인의 삶 : 꽃 노래만 부르던 청년이 세상의 이면에 직면하기까지


시인은 이상을 택하기로 한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여태까지와 다르게 현실적으로 변한다. 소년과 사랑하려면 돈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전까지 수동적이었던 경제적인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했다. 그 후 아내가 임신했음을 알아도 소년에게 같이 가자고 고백한다. 


소년은 아내에게 직접 임신 이야기를 듣고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가자는 시인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둘은 이어지지 않았다. 


시인은 그의 사랑의 깊이만큼 처절하게 비극을 겪었다. 그가 어쩌면 정말 원했을 혹은 필요했을. 시인의 시는 이제 시인이 직면한 세상의 이면에서 부르는 꽃노래가 됐다. 시인의 시는 많은 이들의 이해와 공감을 받았다. 


세상을 직면한 뒤 시인은 현실에 맞춰졌다. 살도 빠지고, 옷도 말끔하게 입었다. 돈을 건네줄 때 같이 가자는 소년의 제안에 시인은 거절했다. 어떻게 가겠냐고. 임신한 아내를 두고 떠날 생각이었던 그의 사고는 예전과 달라졌다.


아무리 달라졌지만 그는 소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어쩌면 지금도. 아기 기저귀를 갈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중 무심결에 흐르는 그의 눈물은, 이상을 꺾고 현실을 택한 이의 아픔이 어딘간에는 언제나 남아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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