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년만화를 좋아해서 보고 있다. 지금도 연재 중인 원피스를 비롯해 그전엔 드래곤볼 등을 보면서 상상의 세계를 누려왔다.
어릴 때 학원을 다녀오고 저녁쯤이면 만화 드래곤볼을 보는 게 내 일상의 의식인 적이 있었다. 그때 본 두 장면이 내게 큰 인상을 주었다.
하나는 크리링이라는 무술가가 나메크라는 외계 행성에 갔을 때 한 대단한 원로를 만났을 때다. 원로에겐 각자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한 번에 일깨워 주는 능력이 있었다. 크리링 머리 위에 손을 얹자 순식간에 전투력이 올라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안에 저렇게 일깨울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손오공이라는 주인공이 분노하면서 천 년에 한 번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 슈퍼 사이어인으로 변한다. 작중 손오공은 평소에 노력도 죽을 만큼 했지만 그 변신 과정을 통해 넘사벽의 재능을 이미 선천적으로 갖고 있었음을 보여줬다(이 당시엔 만화가 여기까지 방영했었고 설정 등은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었다).
만화를 보며 누구에게나 어떤 일깨워질 잠재력이 있고 동시에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터트릴, 어떤 계기가 있다면 대단한 존재로 각성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천재성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있으면 발현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다양한 일본 소년 만화를 보면서 확장되고 심화됐다. 모든 노력의 끝은 혈통, 전생, 타고난 무언가에서 갈렸다. 만화적 설정이었기에 가능하단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가능성의 개화는 일반적으로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천재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천천히 단정 지었다.
내가 할 일은 열심히 노력하여 평범함을 '준' 비범함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만화가 그렇듯이. 탁월한 이를 능가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범접은 할 수 있겠거니 했다. 마이트 가이처럼 삶에 딱 한 번은 그래도 탁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사상은 내 전반적인 생각의 기본값이 되었다.
이 생각들은 단순히 만화에서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타고난, 주어진 재능에 대한 로망을 다들 갖고 있달까.
청소년이 되면서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한 나는 한 가지 타고난 재능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절대 음감'. 고등학교 때 과외를 해주었던 분이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소리를 내도 이게 어떤 음인지 알았다. 심지어 책상을 치거나 책장을 넘기는 소리에도 음을 들었다. 물론 문제를 내는 내가 정답을 모르니 정답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사회를 배울수록 천재에 관한 인식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그 자체로 걸출한, 가만히 있어도 송곳처럼 튀어나오고, 스스로 빛이 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이들은 타고난 이들끼리의 리그에서 있어야 하고 나는 아닌 이들의 리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대학에 들어가서 읽은 <아웃라이어>를 읽으면서 생각이 살짝 달라졌다. 비틀즈처럼 될 사람들도 엄청 노력을 했는데 거기에 될 환경도 주어졌었기에 된 거구나라고. 재능이 없거나 환경이 안 됐다면 노력이라도 하면 되겠구나 했다. 나는 천재 아래 아래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냥 노력하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어쩌다 읽게 된 <1만 시간의 재발견> 이란 책을 통해 위에 적어온 모든 생각이 뒤집어지게 됐다.
'타고난 재능'이란 없다
서문부터 "'타고난 재능'이란 없다."로 선언한다. 그리고 예시를 드는 게 '절대음감에 관한 신화'이다. 타고난 재능에 관한, 절대음감에 관한 내 판타지를 하나씩 깨기 시작한다.
저자는 모차르트를 예를 든다. 전설의 신동, 신동의 전설인 모차르트가 태어나면서 절대음감을 가졌고, 작곡할 재능을 가진 게 아니라고 한다. 절대음감은 유년 시절에 음악 교육을 받았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타고난 것이라면 교육 여부는 상관없어야 했다. 모차르트는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의 큰 그림 하에 어렸을 때부터 계획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일본의 한 음악학교에서 2-6세 사이에 24명의 아이에게 교육프로그램 이수를 하게 했다. 교육 후 모든 아이가 절대음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연구를 대표로 그리고 현재까지 많은 연구를 통해 절대음감은 타고난 소수만 가지는 능력이 아니라 환경과 훈련이 준비되면 거의 모든 이들이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밝혀졌다.
모차르트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까? 저자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고 말한다. 위 일본에서 했던 연구를 뒤집어 생각해보자. 모차르트가 다른 가정,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원래 보다 음악을 접하지 못했다면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모차르트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 재능은 일본의 프로그램을 이수한 일반적인 아이들과 같은 재능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가진 '재능'은 극소수만이 가진, 선천적으로 압도적이고 뛰어난, 교육 없이도 발현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대신 올바른 훈련을 거치면 이 훈련을 거치지 않은 이들이 보기엔 타고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해 보이게 발전시킬 가능성을 말한다. 쉽게 말해 아이라면 누구나 훈련하면 발전시킬 수 있는 '적응력이 뛰어난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 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절대음감 자체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절대음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타고난 재능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 안데르스 에릭슨
책 속에 NBA 역사상 3점 슛을 가장 많이 성공시킨 레이 앨런 선수 일화가 나온다. 그는 말한다. "내가 점프슛을 잘하는 것이 신의 축복 덕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화가 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난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매일 들인 노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며칠이 아니라 매일입니다. 나랑 같은 팀이었던 사람 누구라도 붙잡고 누가 슛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느냐고 물어보세요. (거쳐온 어떤 팀이든) 찾아가 보세요. 답은 접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앨런의 점프슛은 다른 부원들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때 앨런의 점프슛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앨런은 형편없는 슛을 고치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연습을 하며 최선을 다했고, 결국 자신의 점프슛을 사람들이 타고났다고 생각할 만큼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변모시켰다. 말하자면 앨런은 자신의 재능, 진짜 재능을 활용했다.'
이 모든 내용이 서문에만 나온 내용이다. 서문만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온 내 사상 자체가 부정당했다. 저자의 말에 나는 단번에 설득당했다. 자기 생각 자체를 부정한다면 마음에 거부감이 들기 쉽다. 하지만 나의 사상이 큰 돌이 던져진 창문처럼 완전히 박살 났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어느새 나는 깨진 유리를 보기보단 창문 너머를 보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의 전문가 연구에서 나온 분명한 메시지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의 성취에서 유전적 자질이 어떤 역할을 하든, 그들이 가진 핵심 재능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두뇌와 육체가 지닌 놀라운 적응력이다. 그리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런 재능을 다른 사람들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천재라고 생각한 이들만 한 잠재력이 있단 이야기다. 차이는 고정된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 잠재력을 발현시킬 훈련을 했던 지이다. 인간의 잠재력은 크기와 모양이 얼마든지 언제든지 바뀐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읽으면서 두 가지 궁금함이 들었다. 내가 노력할 무언가는 무엇일까? 와 뭐든 노력만 하면 다 되는 게 맞나? 였다. 먼저 두 번째 질문을 좀 더 생각해봤다.
보통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씩 일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비추어 볼 때 3-5년 일하면 다들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그 정도 기간이면 경력이라 할 만큼 일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들 비범한 전문가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익숙해져서 능숙한 것과 한 분야에서 탁월한 달인이 되는 건 달라 보였다.
저자는 누구나 잠재력을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 다음 자연히 '어떻게?'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꾸준히만 하면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듣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사실 틀린 말이다. '올바른 연습'을 충분한 기간에 걸쳐 수행해야 실력이 향상되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비범한 이들의 능력의 핵심엔 '재능'이 있었고 이 재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올바른 접근법을 통해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재능은 결과론적 해석이다. 뛰어난 성취 덕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실력'이 있고, 그 성취도가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게 '타고난 재능'덕이다 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동시에 노력만 하면 다 탁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탁월함에 이르기 위해선 통과해야 할 한 길이 있다. 저자가 말한 '올바른 연습의 길'이다.
이제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을 노력할 것이며,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다. 저자가 말한 '올바른 연습'과 그 실천 방법을 배우는 것이 내 삶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넘어가면서 읽게 된 저자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내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타고난 재능이란 게 없다면? 내가 지금까지 본 탁월한 사람들은 탁월한 방식으로 탁월한 양의 노력을 했단 이야기다. 반대로 나 또한 그렇게 노력한다면 탁월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훗날 나의 성취를 보고, 저 사람은 타고났구나 생각할 만큼 발군의 잠재력을 만들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만으로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나의 삶에 한껏 많은 가능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열심히, 잘하면 평범한 나여도 탁월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단 생각은 자연스레 낙관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모두가 어떤 가능성을 발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할 수 없을 상황일 수도 있고. 다만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바라고 있기에 이 책의 이야기를 깊게 보기로 했다.
이번 글은 평소와 달리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 첨부를 해봤습니다.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이 있거나, 의문이 생겼거나 개선점이 보이신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많은 조회 수와 공유 수보다 독자와 생각을 나누는 게 제겐 더 기쁨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우에 그칠 문제길 바라지만, 이번 글에 관한 주제를 주위에서 이야기만 하면 논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보편적인 생각 자체를 단번에 부정하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댓글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소모적인 논쟁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 주제를 두고 논쟁할 때는 의견을 나눈다기보단 신념이 부딪히는,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가능하면 피하는 게 답일 만큼 답이 없게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 쉽지요. 혹시나 해서 길게 덧붙입니다.
이 글의 방점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란 자체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재능의 정의도 엄밀히 이야기해서 규정하기 쉽지 않기에 정의에 따라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 자체가 절대적이거나 결정적이지 않으며, 우리 모두 원래 가진 '재능'과 바른 방법을 통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전형적인 천재에 관한 사변적인 논박을 하기보다는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말하는 올바른 연습과 그 실행법의 일상 적용에 관해서 집중하려 하고, 주로 그에 관해서만 이야기 나눴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