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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Jul 12. 2017

나는 커서 뭐가 될 수 있을까?

다 커서야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졌다

'나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질문은 보통 어릴 때 한다. 어렸을 때 나는 미래의 내 모습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진지하고 본격적으로 이 질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5년 전쯤 한 청년 캠프에 갔다. 내가 앞으로 뭐가 될지는 내가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때까지의 나를 잘 몰랐다.


자신을 잘 모르겠다면 주위에 물어보라고 했다. 이왕이면 나를 잘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나를 가장 자주 보는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4-5년 동안 매주 한 두 번은 꼭 만나서 3-4시간씩 이야기하는 이들이었으니 그래도 많이 알겠지 싶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친구들이 본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말장난을 잘한다고. 더 있었는지는 시간이 꽤 흘러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캠프에선 글과 말로 먹고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겠단 생각만 어렴풋이 하고 돌아왔다.


글을 써서 먹고 살아보려는 꿈을 잠깐 품었지만,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때 브런치 프로젝트 대상만 타면 뭔가 길이 열리겠지 했다. 대상은 아니더라도 입상하면 용돈이라도 벌겠지 했다. 4번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동안 브런치에게서 직접 받은 건 싱가포르 여행(!)과 시사회 기회뿐이었다(감사합니다).


글로 직접 돈을 벌어 밥을 먹어본 경험은 한 두 번 있다. 페이스북에서 '리뷰왕 김리뷰'라는 친구가 '리뷰 공화국'이라는 잠시 다음 카페를 열어 잘 쓴 리뷰에 사비로 돈을 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내 리뷰가 선정되어 돈을 받은 경험이 전부다. 

https://brunch.co.kr/@chaeminc/95  (선정된 리뷰 중 하나)


당장 밥은 먹어야 했기에 일을 해야 했다. 글로 돈을 잘 벌진 못했지만, 글을 써온 걸 좋게 봐주신 덕에 나는 직장에 다니게 됐다. 그 후 한 차례 직장을 더 옮겨서 지금이 됐다.


굴러는 가지만 굴러만 가는

평일엔 늘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서 근무하고, 퇴근해서 집에 와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남는 시간에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하고 가끔 글을 쓰며 지냈다. 그게 거의 전부였다. 


적당히 굴러가는 삶이었다. 적당하지 않을 건 없었고, 굴러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 그 이상을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 삶의 여정을 여행하는 자동차 바퀴가 바람이 꽉 차진 않은 느낌이랄까. 수레로 치면 바퀴가 원은 아니지만 8각형 정도는 되어 덜컹덜컹 굴러가기는, 어떻게든 굴러가기만 하는 느낌이랄까. 잘 굴러 가본 삶을 보낸 적은 잘 없지만 잘 굴러가는 느낌을 바라게 됐다. 비행기 1등석을 타보진 못 했어도 이코노미석이 불편한 건 아니깐.


바퀴에 바람을 넣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까. 일하면서 어찌저찌 먹고는 살겠는데 왜 다시 이 질문이 떠오른 걸까. 어렸을 때는 뭐가 될 것인가만 생각했다. 이제는 뭐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존재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내 삶을 굴러가게 할 두 바퀴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새롭게 알게 된 걸 나누기 좋아한다. 책을 읽고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주변 사람들 만날 때마다 말하곤 한다. 나랑 자주 이야기하던 형이 내게 말했다. "너랑 이야기하면 너가 지금 무슨 책을 읽거나 무슨 다큐나 강연에 감명받았는지 바로 알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달변가도 아니고 임기응변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이 정리된 걸 말로 푸는 걸 좋아한다. 푸는 모양은 강의로 할 때도 있고 모임에서 이야기로 나눌 때도 있다. 들어줄 대상이 없다면 주로 브런치와 SNS에 말 대신 글로 적곤 한다.


글과 말을 내 삶에서 분리하기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이 두 가지가 내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두 바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일단 공기를 집어넣어 보자며 펌프를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 


바퀴가 있어도 남의 길을 가면 안 가니만 못하다 

먼저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했다. 이때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떠올리기보단 책으로 만들어질 만한 글을 생각하게 됐다. 5수째인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노려본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개념이 '아직 어른이 아닌 나에게'였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맘에 들지 않는 시도였다. 쇼핑몰 모델에겐 멋져 보여서 샀지만 내게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애초에 내가 글 쓰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써야만 하는 글을 쓰는 것만큼 힘 빠지는 게 없다. 영화 시사회 초대도 처음엔 좋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반드시 리뷰를 써야 했다. 리뷰 쓸 거리가 전혀 안 떠오르는 영화의 리뷰를 어떻게든 써서 만들어내는 것만큼 막막한 게 없었다.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 가고 싶어도 가기 어렵지만.


이번에 쓰려고 했던 방식은 돌아보니 희한했다. 내가 나에게, 내가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방식의 글을 쓰라고 자신에게 명령한 모습이었다. 나의 마음에 기준을 두지 않고, 실제론 있지도 않은 어떤 이들의 시선에 기준을 뒀다. 이런 류의 글이라면 괜찮겠지라며. 


쓰고 싶은 글을 써도 글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쓰고 싶지 않은 글은 객관적인 걸 떠나 주관적으로 그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한다. 글 자체에 내 마음을 다 쏟지 못하니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타인의 마음에 든다고 기쁠 리 없다. 연남동의 월 3억 매출을 올리면서 성공적으로 태국 요리점을 운영하는 분이 말했다. 자기에게 맛있지 않은 음식을 팔 수 없다고. 나에게 맞다고 다들 맞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파는 사람은 자신있게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글도 내게 그러길 바랐다.


Connecting the dots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했다. 그 글을 묶고 엮기로 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모인 책이 진짜 내 책이지, 내가 진심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글들의 묶임은 나를 옥죄는 '묶임'과 같다고 생각한다.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연설 때 한 말로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지금의 걸음으로 찍힌 발자국이 어떻게 이어질지 가봐야 안다고, 가보면 안다고. 다만 나의 삶에 찍힌 점들을 나중에 어떻게든 이어질 것을 알고, 확신하며 걸어갈 때 우리는 '진심'이 향하는 곳으로 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발자국, 점들의 연결은 미래에서 과거를 보며 할 일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미래를 예측해 내 발걸음을 찍는 건 도박에 가깝다. 어차피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깐. 미래를 모르니 대비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내 먼 미래를 내가 먼저 '예정'해서 '예정'대로 걸어가는 게 무척 어렵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니깐.


그러니깐 지금 걷는 발자국마다 꾸욱 꾸욱 눌러 걸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쓰려 했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미리 그려둔 선을 따라 점을 찍어가는 방식이었다. 그 방식은 한두 번만으로도 내게 무력감을 주었다. 그 선은 내 선이 아니었다. 남이 괜찮게 볼 거로 생각한 채 그은 남의 선이었다. 


남이 그려둔 인생 선(line)에 내 삶의 점(dot)을 찍지 말자

나의 인생의 점을 찍고 나중에 이어서 선으로 긋는 순서가 맞는다면 순서를 바꿔 선을 먼저 긋고 점을 찍어가는 방식은 무얼까. 그리고 그 선이 내 선이 아니라면 어떨까.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저자 박웅현은 말했다. 인생의 기준점을 밖(타인)에 두지 말고 안(자신)에 두라고. 


나는 내 인생의 길을 걷는다는 말은 당연한 소리다. 남이 그려둔 '내 인생'이란 이름의 길을 내 길로 착각해서 걸으면 안 된다(같다면 가야 하겠지만). 진짜 '내 길'과 남이 적어둔 '내 길'이 헷갈릴 수 있다. 그렇게 살아야 바르다고 배웠으니깐. 그래서 남의 '내 길'과 진짜 '내 길'이 같아지도록 어떻게든 걸어가게끔 교육받았다.


그래도 나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면서부터 남의 길을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걷는다 생각했다. 남들이 정해둔 전형적인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을 찾아 걷는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글을 쓰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전형적인 길을 찾고 있었다. 전형적인 글을 쓰려고 했다. 전형적인 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런 것 같은 걸 해보려 했다.


이때 쓴 글들이 당장에 쌓여도 어떤 연결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로 이어지는 연결은 아니었다. 미리 정해둔 남의 선에 대고 글의 점을 찍는 모습이었기에.


생각했던 기획을 엎고 다시 그냥 쓰고 싶은 걸 쓰기로 했다. 이때 엎으면서 든 생각이, 남의 선에 맞춰 내 점을 찍지 말자는 거였다. 이 생각을 이렇게 글로 풀고 싶었다. 


내 삶을 살아갈 때 누군가가 그려둔 선만 따라가야 한다면 그건 답이 정해진 문제지를 푸는 것이지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타인의 정답만 맞혀야 하는 삶에선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사라진다. 사라진 재미 대신 의미 없는 의무만 남게 된다. 타인이 지어준 의무로 사는 것은 형벌과 같다. 영원히 반복해서, 어차피 떨어질 바위를 계속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것처럼.


뭐가 되기 전에 먼저 스스로 걸어가 보자. 가보면 어디라도 가고 뭐라도 되겠지

나는 기준을 내 안에 두고 내가 찍을 점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공자 왈 30살을 이립(而立), 곧 스스로 서는, 자립의 나이라고 했다. 내 안의 기준을 두어, 설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내 삶에서 나 스스로 선다는 말은 내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타인이 정해준 길로 가는 게 아닌 나 스스로 길을 정해 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커서 뭐가 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내가 나 스스로 걸어서 갈 길을 내 걸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걷고 싶은 방향을 정할 실력과 한 걸음 내디딜 용기와 걸음을 이어갈 체력을 준비해야 한다. 


글과 말, 글쓰기와 글쓰기 강의

작은 걸음, 한 걸음씩 걷기로 했다. 글로는 글쓰기 자체로 어떤 인정을 받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글을 쓰고 있고 이제 꾸준히 쓰면서 글 자체를 발전시켜야 한다. 말로는 강의를 하려 한다. 예전에 했던 글쓰기 강의를 다시 준비해서 해보려고 한다. 꼭 내가 유시민 작가님처럼 글을 잘 써야만 강의를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물론 브런치북 프로젝트 등에서 상을 받는다면 작은 권위라도 등에 업을 수 있겠지만.


https://brunch.co.kr/@chaeminc/356


지금 내 안의 기준을 두고 찍어 보기로 한 점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시도로만 끝날지 또 다른 시작으로 시작될지. 당장엔 알 수 없겠지만 언젠가 알게 되겠지.


자 이제 글을 다 썼으니, 슬슬 강의 준비를 해보자. 이렇게 글을 써뒀으니 나에게 책임감을 씌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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