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모의를 했던 친구들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작년 말부터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 글쓰기 교실을 농담 반 진담 반 제의받았다.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 자주 들으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3월에 한다고 말했고 2월 말이 되자 발등에 불이 붙었다. 3월 첫 주 내내 어떤 이름을 할지 고민하고 커리큘럼을 생각했다. 그러다 찾게 된 이름이 '작당'이다. 작가는 당신입니다, 라는 말의 줄임말. 동시에 '작당하다'의 어감이 좋았다.
1달 총 네 번의 시간을 통해 글쓰기 실력이 대폭 늘 수 없다. 거의 모든 수업이 마찬가지겠지만 그 수업만으로 실력을 늘리게 할 수 없다. 영어든 요리든 운동이든 한 번에 늘 수 있는 건 없다. 애초에 간단한 걸 가르쳐서 그것만 구현하면 되는 게 아니라면.
몇몇 다른 글쓰기 교실의 과정을 봤다. 대개 매주 과제가 있고 첨삭해주는 게 있었다. 몇 가지 이유로 나는 그 과정을 뺐다. 가장 먼저는 내가 남의 글을 첨삭할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남의 글을 첨삭할 마음으로 비평적으로 바라보기 싫었다. 마지막으로 한 달 수업을 통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면 첨삭 과정은 본질적이지 않았다.
첨삭은 과정이 끝나면 해줄 수 없다. 첨삭을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퇴고할 힘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퇴고하기 전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내 첫 번째 목표였다.
작가는 당신입니다, 라는 뜻에 담긴 '작가'는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수업을 듣는 사람이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 작가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이 꾸준히 못 쓰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이유가 해결돼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다면 그를 '작가'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고. 내가 접근한 방식은 이렇다.
종종 글감이 생길 때가 있다.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다 보면 안 풀린다. 쓰다 보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럴듯한 글감이 안 생길 때는 아예 쓰지 않는다. 그럴듯하지 않은 글은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실력'을 요하는 것들의 본질엔 '해야 는다'가 있다. 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물리 법칙처럼 당연한 이야기다.
좋은 글이든 아니든 쓰는 게 우선순위다. 완벽한 글을 쓸 때까지 기다리면 쓸 수 있는 글은 없다. 기타 코드를 처음 잡을 때 완벽히 잡을 수 없는 코드도 있다. 그렇다고 때려치우면 늘 수 없다. 안 되니까 연습하는 거다. 잘 못 쓰니까 꾸준히 쓰는 거다.
비완벽주의자는 시도에 의미를 둔다. 잘 쓰기를 바라지만 잘 쓴 글을 쓰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쓰다 보면 늘 것을 알고 꾸준히 쓴다. 써야 퇴고의 의미를 알고 써봐야 나아질 점을 알 수 있다. 골프를 배울 때 쳐보지 않는다면 자기 폼이 어떤지 알 수 없고 자기 볼이 어떻게 나갈지 알 수 없다.
일단 어떤 글이든 좋으니 쓰자고 했다.
비완벽주의자로 꾸준히 쓰기 위한 방식은 '매일 1글' 쓰기였다. 요새 관련 책이 많이 나왔다. 습관을 들이는 가장 좋은 접근법은 'small step' 혹은 작은 습관들이기다. 실패할 리 없는 행동을 정해 꾸준히 하는 것이다. 운동이라면 매일 1회 팔굽혀펴기나 1분 서 있기, 글쓰기라면 매일 1문장 쓰기.
정말 극도로 힘든 일이 있지 않은 한 1회 팔굽혀펴기나 1분 서 있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1문장 쓰기도 마찬가지다. 작은 습관의 핵심 의미는 '성공'을 지속함에 있다. 계속 성공하면서 해당 행동이 자신에게 부담되지 않게 된다. 매일 1회 팔굽혀펴기를 1달 정도 하다 보면 어쩔 때는 10회도 하게 된다. 다음 날엔 다시 1회만 해도 괜찮다. 점점 운동에 대한 장벽이 낮아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1줄만 써도 된다. 쓰다 보면 2줄, 10줄이 된다. 어떨 땐 진짜 '오늘 쓸 거리가 없다'고 써도 된다. 이렇게 매일 1줄 쓰기를 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다.
하나는 1줄 쓰다 보니 계속 쓰게 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1줄만 쓰고 자려다가 조금 더 쓰니 1문단이 되고 1문단이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된다. 다른 하나는 한 줄도 못 쓰게 된다. '오늘 쓸 거리가 없다'정도의 글을 쓸 수 없단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다. 완벽주의의 물기가 아직 안 말라서다.
나는 확신한다. 어떤 실력을 쌓고 싶을 때 반드시 붙어야 할 단어가 있다면 '꾸준히'라고. 1달에 한 번도 계속하면 '꾸준히'일지 모른다. 그 정도로 늘 수 있을까? 매일 꾸준히란 말엔 매일 동등한 강도로 하란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그 호흡을 놓치지 말자는 말이다.
근력 운동을 하면 다음 날 쉬어야 한다. 상한 근육 혹은 근육이 찢어지고 난 뒤 새 근육이 차오를 시간이 필요하기에. 계속 근력 운동을 하면 도리어 잘 자라지 못한다. 그렇지만 쉬면서도 운동할 수 있다. 기준이 '비완벽주의자'라면 가능하다.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운동이다. 어제 팔굽혀펴기를 했다면 1회 스쿼트 하는 것도 운동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오늘 장편의 글을 썼으면 다음 날 한 문장을 써도 된다. 하지만 그 '비완벽주의'를 끝끝내 습득하지 못한다면 다시 '완벽주의' 늪에 빠져서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 기다리다 영원히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내가 어떤 생각으로 수업을 설계했는지에 대한 생각 정리이며 마지막 편지 일부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 함께 있는 톡방에서 매일 1글 쓰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힘든 이유는 간단히 알 수 있다. 힘든 글을 쓰려 해서 힘든 것이다. 힘들지 않아도 괜찮다. 쉽게 가도 괜찮다. 어떻게든 꾸준히 가자.
나도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제법 긴 글을 매일 썼다. 그 덕에 많은 분이 와주신 것도 있지만 쉽지 않은 방식이었다. 힘들어서 드문드문 쓰다 보니 1주 2주 안 쓰게 되었다. 3달 내내 매일 쓰던 사람도 한순간에 그만 손을 놓기 쉽다는 걸 알았다. 브런치는 아주 간단한 글을 쓸만한 공간은 아니다. 내 글을 봐주시는 분이 이제 2,000명을 조금씩 바라본다. 그분들에게 1줄 글을 보여줄 수는 없다. 내게 매일 1글의 장소는 페이스북이다. 3~4일 거기에서 간단하게 쓰다가 여기에 한 번 와서 힘 뽝 주고 쓰는 걸 반복한다.
지금은 다시 매일 중편의 글을 써볼까 한다. 작년 그때 내가 성장했음을 느낀다. 마감에 쫓기는 느낌이 나를 달음질시키고 담금질한다는 걸 느낀다. 한 번 다시 바짝 힘내 볼 때다.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재편집해서 써본다. 위의 글은 이제 나 없이 스스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꾸준히 할 수 있는 마음가짐, A/S가 담긴 편지라면 아랫글은 마음을 담은 편지다.
3월 8일부터 마지막 화요일까지 우리는 글을 썼다. 우리는 (가능한)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잘 따라와 주었다. 다소 벅차 보일 만큼 긴 글을 쓰기도 하고 비완벽주의자의 마인드를 아주 잘 따라서 2~3줄을 쓰기도 했다.
6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썼고 1일은 모여서 썼다. 그때마다 다양한 이야기로 글을 썼다. 인생, 행복, 미래, 오늘, 감사 등의 주제로 글을 썼다. 각 주제를 각자의 삶에서만 볼 수 있는 각각의 면과 각양각색의 생각을 나눴다.
글쓰기 교실을 열면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단지 글 쓰고 싶은 마음 조금, 글감을 찾아보게 하는 마음 조금 나눴을 뿐이다.
작가는 글 쓰는 게 삶인 사람이다. 글 쓰는 기술은 글 쓰는 삶에 비하면 급하지 않다. 하루 한 줄이어도 좋으니 어떤 글이어도 좋으니 매일 글 쓰자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글 쓰는 삶을 이어가는 건 제 몫이다. 동기부여는 잠깐이다. 스스로 써 내려 갈 힘이 필요하다. 지속하려면 습관이 필요하다.
습관을 만들려면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그게 무엇이 됐든 간에. 수업을 마치고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는 마음과 꾸준히 글 쓰는 습관을 가져갈 수 있다면 그걸로 넘치도록 충분하단 생각을 한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주제로 이야기하니 좋음좋음이 넘쳐났다. 다시 이런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작당 2기를 한다면 아마도 작당 1기가 이상적인 기준이지 않을까 싶었다. 수업 준비가 허술하고 강사 실력이 부족해도 이렇게 격려와 지지의 기운을 준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이도 뭐라도 해낼 힘이 생길 것만 같다.
3월 1달 동안 매주 화요일 오후는 내게 꿈같은 시간이었다.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됐을까. 오늘까지 느낀 의미가 하나의 씨앗이 되어 훗날 멋진 열매로 맺어지길 바란다. 그 열매가 또 다른 가능성의 씨앗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차차 자라가길 기대한다.
취미로 글을 쓰는 중에 얻은 글쓰기를 가르칠 시간과 장소, 용기까지 모두 Minho Lee 쌤 덕이다!
고마운 친구들의 후기
정작가님 : https://brunch.co.kr/@ayeeh/3
김작가님 : http://blog.naver.com/seuzakr123/220669073571
단작가님 : https://brunch.co.kr/@danwoo/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