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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May 12. 2016

천천히 약하게 그리고 꾸준히

어제까지 탕수육 세트를 몇 번에 걸쳐 다 먹었다. 요새 가장 잘 나가는 중식 요리사 이연복 셰프의 탕수육 세트를 선물 받았다. 간단히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구성이다. 탕수육 튀김의 질감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지만 소스 맛이 매력적이어서 제법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감내한다 했지만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탕수육을 따뜻하게 데워진 소스에 푹 담갔다 꺼내 먹으면 따스한 만족감이 입에 퍼졌다(그렇다, 나는 찍먹파다).


점심을 차려 먹을 때 내가 요리해서 혼자 먹을 때가 있다. 퀄리티는 떨어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구성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야심 차게 탕수육을 해 먹겠다고 꺼내서 요리를 시작했다. 냉동고에서 꺼내 소스는 중탕을 시키고 탕수육은 기름 둘러진 프라이팬에 넣어 튀긴다.


얼어있던 거라 그런지 기름이 많이 튄다. 멀찍이 떨어져 긴 젓가락을 이용해 조금씩 계속 뒤집어주다가 얼추 된 것 같아 불을 끄고 꺼낸다. 소스를 그릇에 따르고 식사 준비 마무리를 한다. 한 젓가락 집어 무는 순간이었다. 말캉. 말캉했다. 다른 튀김을 다시 소스에 찍어 먹었다. 물컹. 물컹했다.


내가 튀긴 탕수육은 바삭하지도 노릇하지도 않았다. 먹기 싫어질 정도로 식감이 안 좋았다. 덜 익은 게 분명했다. 저녁에 엄마에게 내 실패담을 말했다. 내가 튀기면 말캉물컹한데 엄마가 튀기면 바삭노릇 한 이유가 뭔지 물었다. 똑같은 재료, 방식이라 생각했는데 왜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까.


엄마의 조리 과정 설명 초반부터 내가 잘못했음을 알았다. 엄마는 '약한 불'로 하신다고 했다. 나는 중불 혹은 가장 센 불로 튀겼다. 그래야 요즘 트렌드인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아니 얼른 튀겨 먹을 수 있으니깐. 그래서 얻은 결과는 겉은 탔지만 속은 덜 익은 망탕수육이었다.


다시 다음날 시도했다. 이번엔 약한 불로 천천히 굴려 가며 튀겼다. 그제야 엄마가 해주었던 탕수육 때깔이 나오기 시작했다. 맛도 이제 제대로 나왔다.


잘 익힌 탕수육을 먹는데 비법은 없었다. 필요한 건 적정한 불의 양과 시간이었다. 나는 촉박해 적정 불보다 과한 불을 사용했다. 시간은 단축했지만 맛도 줄었다.


영어 공부를 한다. 한창 학원 다닐 때 삘 받을 땐 4~5시간 소리 내어 공부했다. 그 달엔 목이 상해서 기침하면 항상 입에 피맛이 났다. 그때 부쩍 실력이 는 것 같기도 하다. 그 후로 그 열정은 사라졌다. 아예 손을 떼 버릴 뻔했다.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매일 꾸준히. 이렇게 해서 언제 늘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이렇게만 해선 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다만 이 꾸준함은 안전끈이 되어 계속 영어 공부를 이어가게 할 것이고 이 끈을 믿고 삘이 올 땐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약불로 천천히 굴리며 튀겨야 제대로 된 탕수육이 되듯 우리 삶에 어떤 일들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느긋하게 해야 제대로 된다.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그리고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끈기가 뭐가 됐든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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