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일을 하다 보면 짬짬이 시간이 뜰 때가 있다. 어떤 일을 하기도 뭐하지만 쉬러 나갈 수는 없을 때. 그럴 때면 잠시 핸드폰을 보곤 했다. 빠르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훑어본다. 그리곤 다시 일하고, 시간 나면 폰 보고의 반복이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밥을 먹으러 갈 때도 항상 핸드폰을 들고 가서 생기는 짬마다 봤다. 매일 확인해야 하는 정보가 있고, 어쩌다 알게 되는 꿀팁들이 있으니 챙겨야 하고 또 친구들의 근황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점점 힘이 들었다. 집중을 해야 하는데 뇌가 시끄러웠다. 마치 채널을 잘못 찾은 텔레비전처럼 지이익, 자글거리는 화면과 소리가 뇌 안에 있는 듯했다(티브이를 집에서 없앤 지 10년이 넘어서 요새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을 때도 집중이 안 됐다. 책을 페이스북 보듯이 훑고 있었다. 읽었다고 생각하며 읽는데, 읽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튀어 나가려는 물고기처럼 시선이 문장에서 머물지 못하고 있었다. 읽는 게 습관이 됐기에 읽으려고는 하면서 읽는 건 아닌, 힘들게 읽어 나갔다.
글을 쓰던 사람이었는데도 제대로 안 읽으니 글감도 안 생기고, 글을 쓰려고 앉아도 생각이 이리저리 튀니 자꾸 딴짓을 하게 됐다. 책도 안 읽히고 글도 안 써지니 그냥 SNS만 보고 잠들었다. 그렇게 보낸 하루는 불만족스러웠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내 뇌가 뭔가 심각해지고 있단 걸 느꼈다.
"길고, 연속적이며,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일상을 조직하면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방해를 많이 받으면 무엇이 바뀔까? 길이 남을 소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이메일 뭉치만 굴러다닐 것이다. "
<딥 워크> 11쪽
이때 마침 읽게 된 두 글이 있다. 하나는 <딥 워크>라는 책이다. 저자가 머리말에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딥 워크는 '인지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활동. 딥 워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며, 따라 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현재의 지적 역량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가치를 짜내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내게는 이 능력이 사라진 걸 알게 됐다. 내가 쓰게 된 글은 페이스북에 재밌는 포스팅을 공유해서 몇 글자만 적는 정도가 다였다. 인용한 문구에 나온 것처럼 방해받은 듯 내 글은 굴러다닐 글이 되버렸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방해는 내가 나에게 스스로 했다.
피상적인 문제들로 가득한 유혹적인 환경에 정신을 팔면 위니프리드 갤러거가 신경과학을 통해 파악한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녀는 이렇게 밝혔다. "5년 동안 주의에 대한 글을 쓴 후 몇 가지 뼈아픈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느슨한 정신은 악마의 작업실'이라는 말이다. ... 집중력을 잃으면 우리의 정신은 삶에서 잘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지닌다. "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처럼 피상적인 일들에 매달리면 기운이 빠지고 속상한 하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주의를 빼앗는 대다수 피상적인 일들이 무해하고 재미있어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딥 워크> 81-82쪽
나는 어느새 느슨한 정신이 됐고 갤러거가 말한 악마의 작업실로 빠져들었다. 집중력을 잃은 것이다. 피상적인 일을 하느라 집중력을 잃었고, 집중력을 잃어서 피상적인 일만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SNS에 나오는 수많은 재밌는 거리를 봤지만 다 보고 나면 허탈하고, 기운 없고, 뭐 했나 허망한 하루가 됐던 건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피상적인 일에 매달렸기에 생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저자가 말한 피상적 작업인 일들에 온 신경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피상적인 일이란 '지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종종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서 수행하는 행정적 작업. 피상적 작업은 새로운 가치를 많이 창출하지 않으며, 따라 하기 쉽다.'라고 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그냥 소비하는 일들, 쉽게 말해 내 일상에서는 SNS였다.
SNS 같은 쉽고 편리한, 피상적인 일들에 매달리면 집중하지 않아도 되게 되고, 동시에 집중력을 잃게 된다. 마치 걸어 다니지 않게 되면 살이 찌기 쉬운 것처럼 말이다. 픽사의 만화 영화 WALL-E에 보면 사람들이 걷지 않아도 되게 편리한 침대가 있는 덕에 정말 걷지 않게 되었다. 그 덕에 걸을 줄도, 걸을 수도 없는 몸 상태가 되었다. 나도 어느새 편리함에 젖어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편리함이 꼭 최선은 아닐 것이다. 불편함이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성장은 불편해야만 얻을 수 있다. 힘을 기르기 위해 근력 운동을 한 뒤 생기는 근육통이 그렇듯 '뇌'근육통도 그렇다. 집중하려고 할 때의 힘듦을 견디지 못하면 집중'력'은 생기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신경과학적 측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특히 지식 노동)에서 몰입 상태로 보내는 시간을 늘리면 두뇌의 복잡한 작동 방식을 활용하여 직업적 삶에서 찾는 의미와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갤러거는 책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암에 대한) 힘든 실험을 진행한 후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목표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다. ... 그다음 거기에 골몰할 것이다. 요컨대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82쪽
집중력을 갖는 게 왜 중요한 일일까? 우리 몸은 신경과학적으로 피상적인 일이 아닌 딥 워크와 같은 일에 '몰입'해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아래에 나오지만 한계는 있다) 그 행동에 만족감을 느낀다. 일이라면 일에, 공부라면 공부에 만족하며 그 행동을 할 의미를 느끼고 만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집중하는 삶이 최선의 삶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선 집중력을 갖는 게 필수적이다. 관건은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최선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다. 딥 워크에 집중할 것인지 피상적 작업에 집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저자의 말처럼 집중하는 삶, 딥 워크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저자는 제안한다. 피상적 작업을 아예 제거하려는 시도보다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우리가 온 마음 다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애초에 거의 정해져 있으니 그 시간을 확보해서 피상적 작업을 하는 대신 딥 워크를 먼저 하라는 것이다.
앤더스 에릭슨은 계획적 수련을 처음 하는 경우(가령 전문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 있는 아동들) 하루 한 시간이 적정한 한계라고 말했다. 반면 계획적 수련을 오래 한 경우 네 시간까지 한계를 늘릴 수 있다. 다만 그 이상 가는 경우는 드물다.
207쪽
하루에 딥 워크에 매달릴 수 있는 한계에 이르면 더 오래 해도 성과가 체감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상적 작업은 딥 워크에 할애할 시간을 줄이기 전까지는 해도 해롭지 않다. 언뜻 이 단서는 낙관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일과는 여덟 시간이다. 아무리 딥 워크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네 시간 이상 진정한 몰입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루에 절반은 피상적 작업을 해도 악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분석이 간과하는 위험은 특히 회의, 약속, 전화 그리고 다른 행사의 영향을 고려할 때 이 시간을 소비하기가 정말로 쉽다는 것이다.
208쪽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이다. 하루 최대 4시간 그리고 실제 내가 최대한 딥 워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얼마나 시간이 있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루의 계획을 분 단위로 세워라
하루 내내 행복한 몰입 상태로 지낼 능력이 안 된다고 해서 피상적 작업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식 노동자의 일반적인 일과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쉽게 파편화되기 때문이다.
... 따라서 딥 워크를 온전히 활용하는 능력을 저해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피상적 작업을 제한해야 한다. 지금부터 거기에 도움이 되는 전략들을 살펴보자.
208쪽
내 일상을 돌아봤다.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시간을 빼고 남는 시간을 계산했다. 잠은 줄이는 중이지만 기복이 있어서 8시간으로 잡았다. 일은 식사까지 9시간. 1시간은 통근. 집에 도착해 씻고 저녁 먹는 1시간까지 하면 19시간이 고정으로 나간다. 남은 시간은 5시간이다. 나는 이 다섯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책 읽고, 글 쓰고, 이것저것 잘 쓴다고 생각하지만 5시간은 금방 사라진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 5시간이지만 어떻게 쓰는지는 측정하지 않고 어림짐작하는 중이었다.
가계부를 쓰지 않거나, 잔액 확인을 하지 않고 대충 짐작해서 돈을 쓰다 보면 예상과 달리 통장이 텅장이 된 경험을 하곤 한다. 시간도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탕진할 수 있다. 시간의 영수증을 정확히 써야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어떻게 써야 할까?
저자는 일과를 30 분 단위로 세우라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에 맞게 '지금 무엇을 해야 가장 합리적일까?'를 고민해서 할 일을 채워 넣는 것이다. 주어진 돈에 맞춰서 공과금을 내고, 경조사비를 빼놓고, 문화생활비를 정하듯이.
요컨대 이 전략의 토대는 딥 워크 습관을 기르려면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그 첫 단계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따르는 것이다. 분 단위까지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하라. 처음에는 이 조언에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시적인 기분과 외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과를 보내는 것이 분명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창조를 이루는 사람처럼 진정한 잠재력에 이르고 싶다면 이런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214쪽
<딥 워크>의 저자는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해서 하라는 말고 신 박사님의 말은 무엇을 했는지 적고 돌아보라는 것이지만 둘은 같은 맥락이다. 무엇을 할지, 했는지 적는 것의 의미는 성취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낭비하지 않으려면 30분이든 1시간이든 나누는 시간에 상관없이 일단 오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아야 한다. 두 저자의 방식을 함께 적용해보자. 먼저는 오늘 보낸 시간을 철저히 적어야 한다. 내게 가용 시간은 5시간이니 이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과정을 하면서 느낀 건 시간을 보낼 때 '딥 워크'하지 않으면 제대로 측정이 안 되고, 측정이 안 되니 관리가 안 된다. 예를 들어 9시부터 10시까지 책을 조금 읽다가 페이스북 봤다가 책을 다시 읽다가, 생각난 웹툰이 있어 잠깐 보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면 도대체 1시간 동안 뭘 얼마나 했는지 파악이 어렵다.
1시간이든 30분이든 정해진 시간엔 정해진 일만 해야 한다. 멀티태스킹의 환상에서 벗어나 한 가지 일에 딥 워크 해야 한다. 쉴 거면 확실히 시간을 정해서 쉬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30분 동안 SNS를 확인하기로 정했다. 15분 SNS에 올라온 이슈를 체크하고 다음 15분 동안 정보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본다.
일주일에 열다섯 시간 정도 시청할 거라고 응답한 25~34세 사이의 시청자들은 실제로는 스물여덟 시간 넘게 시청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일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 잘못 예측하는 것은 영국인들의 텔레비전 시청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략)
바로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쓸지 크게 생각지 않고 일과 중 대부분을 '자동 주행 방식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문제다. 딥 워크와 피상적 작업의 균형을 직시하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지금 무엇을 해야 가장 합리적일까?'라고 자문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사소한 문제들이 일과를 잠식하지 않도록 막기가 어렵다. 지금부터 설명하는 전략을 그렇게 하기 위한 것이다. ... 그 전략은 바로 일과를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209~210쪽
동시에 적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생각보다 내가 쓰는 시간을 잘못 예측한다는 것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간 조정을 해야 한다. 내가 어떤 일에 얼마만큼 시간을 쓰는지 알아야 제대로 정할 수 있다. 나는 아직 내가 글쓰기에 시간을 얼마나 쓸지 짐작하지 못해서 긴 글을 쓸 때마다 오버해서 쓰곤 한다. 지금도 이렇게 글이 길어질지는 몰랐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았다면 어떻게 보낼지를 세심히 정해야 한다. 시간 관리의 초심자는 <딥 워크> 저자에 따르면 '일정표에 바라는 바의 실현, 하루를 보내는 최선의 가정을 담는 경향이 있다'라고 한다. 우리가 자주 그려봤던 어렸을 때 생활계획표가 그 살아있는 증거다.
그래서 저자는 '경험이 쌓일수록 과제에 필요한 시간을 정확하게(그렇지 않다면 다소 보수적으로) 예측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 한다.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 보통 30분 쓸 것 같으면 1시간 정도 여유를 생각해두는 방식으로. 그런 면에서 신 박사님의 제안처럼 어떤 일을 한 다음 적는 게 이상적으로 적는 함정을 피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시간을 쪼개서 적은 다음 실천해보고, 실제로 어떻게 보냈는지 시간마다 점검하자.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분석할 수 있어야 보낼지를 다시 정할 수 있다.
의지보다 환경
시간의 큰 틀을 어떻게 보낼지 정했다면 이제 방해 거리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피상적 작업을 없애는 것은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없애는 건 단순히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내게 가장 큰 방해 거리는 SNS였다. 내 의지로 폰에서 안 켜면 된다고, 안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무리였다.
의지보다 환경이다. <딥 워크> 저자도 강하게 SNS를 멀리하라고 한다(아예 안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폰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웠다. 집에 와서 로그인하지 않는 한 밖에서는 SNS를 일절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딱 정해진 시간만 하는 중이다.
방해 거리를 없앴다면 집중할 거리를 찾아서 정한 뒤 실행하면 된다. SNS 등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척 심심하다. 의지력이 약해질 때면 이 무료함이 굉장히 괴로울 때가 있다. SNS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무료함은 정신의 플랭크 운동과도 같다.
플랭크를 해보면 알겠지만, 별거 아닌 것 같은 동작인데도 운동하던 사람이 아니라면 1분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운동은 몸 전체를 지탱하는 코어 근육을 기르기 위한 최고의 운동이다. 몸의 기둥과도 같은 근육을 기르는 코어 운동처럼 '무료함'은 정신의 근육을 길러주는 훈련법이다. (개인적으로 무료함을 견디는 것보다 플랭크가 훨씬 쉽다. 역으로 플랭크를 해보면 무료함이 금방 사라질 것이다(?))
생활에서 산만한 요소를 없애는 일은 사람들의 일상을 갈수록 잠식해 가는 듯한 정서 불안에 따른 배경 소음을 줄여 준다. 나는 무료한 상태에 익숙하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유익한 능력이다.
21쪽
나도 저자처럼 무료함을 견디는 훈련을 통해 익숙해질 날을 바란다. 무료함을 견디는, 아니 잊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딥 워크 혹은 몰입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데에 3시간 정도 몰입해서 썼다. 이 글의 완성도를 떠나 이 글을 썼다는 자체, 몰입했던 시간 자체가 만족스럽다. 이래서 내가 글쓰기를 못 놓는 걸까. 역으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쓰면서 실력이 늘겠지.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목표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다. 그다음 거기에 골몰할 것이다.
요컨대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앞으로 더 책 읽는 데 몰입하고 쓰는 데에 집중해서 만족스러운 최선의 삶을 살고 싶다. 저자 분들이 말한 방식이 내 삶에 완전히 적용되지 않았다. 온전한 경험담이기 보단 방법의 공유에 가까운 글이다. 훗날엔 방법을 체득하여 경험한 글을 쓰고 싶다. 천천히 기록해서 돌아보고, 개선해서 다시 살아보는 것을 누적하는 것만이 해야 할 일이다. 오늘 주어진 5시간을 어떻게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쓸까?
* (책에선 왜 집중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전반부에 자세히 다룬다. 순서상 집중의 당위성을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이 글에선 어떻게 해야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해 쓰기로 했다. 왜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딥 워크>의 서평 혹은 따로 쓸 때 다루기로 한다. 이 글은 서평으로 쓰려고 한 게 아니다. <딥 워크>말미를 읽고 든 생각의 단상을 적다가 길어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최선의 삶으로 이끌어줄, 집중할 어떤 목표가 있으신가요? 생각해보셨거나 생각 안 해보셨다면 한 번 생각해보시고 댓글로 같이 나눠 주시면 글이 좀 더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